산책자의 내면소통

호수가 차오르는 봄밤에

by 붉나무


저녁을 먹고 잔뜩 부풀어 오른 뱃살을 부여잡고 소파에 앉아 졸다가, 몸이 옆으로 쓰러지는 반동에 번쩍 눈이 떠졌다. 이대로 아침까지 자버린다면 필시 뱃속은 가스로 가득 찰 것이고 몸은 부어오를 테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짜증이 밀려올 것이다.

잠으로 향하는 과정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으로 가득하다. 그 유혹을 뿌리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나마 꽤 오랜 시간 습관처럼 이어온 '걷기'가 몸에 배어 있었기에, 나는 벌떡 일어나 양말을 신고 눈에 보이는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은 채 밖으로 나갔다.


밤 9시, 꽤 늦은 시간이지만 호수공원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살을 에던 매서운 겨울바람 대신 시원한 봄바람이 뺨을 스친다. 내가 걷는 방향은 거의 정해져 있다. 야산을 거쳐 호수 둘레를 따라 걷다가 운동기구에서 몸을 풀고 돌아오는 코스. 호수 둘레를 고집하는 이유는 순전히 새를 보기 위함이다.

호수에는 늘 자리를 지키는 오리들이 있고, 겨울이면 찾아오는 큰기러기와 물닭이 있다. 운이 좋으면 왜가리나 백로를 마주치기도 한다. 특히 앙증맞은 몸짓으로 자맥질하는 새끼 오리들을 발견하는 날이면, 대견한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한겨울에 호수에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날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한파가 길어 호수가 꽁꽁 얼어붙었던 지난겨울에 그런 날이 유독 많았다.

그럼에도 다리 아래,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머무는 교각 옆에는 얼지 않은 물구멍이 작게나마 있었다. 그곳은 오리들과 물닭이 목을 축이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누군가 지푸라기로 만들어준 바람막이 덕분에 머스코비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리라.


2주전까지만해도 산책로 따라 여기저기 무리지어 먹이를 찾아 먹거나 얕은 지류에서 잠을 자던 기러기들이 이젠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발걸음 앞에서 문득 마주치던 기러기들이 보이지 않으면, 한겨울이 가버렸음이 아쉽고 때로는 이유 없이 서러워진다. 또 한 계절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맘때면 산책을 하다가도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곤 하는데, 계절을 따라잡지 못하고 늘 떠밀리듯 가고 있다는 기분 탓이다. 그것은 내가 어느 한 시기를 온전히 잘 살아내지 못했다는 자책, 혹은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가까운 감정임을 안다. 그럴 때면 나는 얼른 눈물을 삼키고 당장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내려가며 다시 부지런히 걷는다.


버드나무는 어느새 물을 한껏 올려 연둣빛 가지를 하늘거리고, 낙엽 아래로는 쑥과 개별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가로등 옆 산수유나무는 언제 꽃망울을 터뜨렸는지 어둠과 어우러져 밤의 풍경을 오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호수는 깊어지고 풍부해진다. 물속의 물고기들조차 봄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세찬 바람 한 번이면 쓰러질 것 같은 고목조차 생명력을 머금은 듯 보일 만큼, 호수는 그윽하게 봄기운을 품고 있었다. 밤의 정적을 깨는 길고양이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도,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암시하는 신호이기에 굳이 피해 가려 하지 않는다.


호수의 봄기운에 취해 흔들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호수 위로 일렁이는 고층 아파트의 불빛과 따스한 조명의 건물들을 감상한다. 직접 내리쬐는 빛은 눈부심을 주지만, 물에 투영되어 번지는 빛은 말할 수 없는 따스함을 준다.


봄밤의 기운을 잔뜩 안고 돌아오는 길,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주먹만 한 새끼 오리 떼가 풀숲에서 자다가 사람들 소리에 깼는지 뒤뚱거리며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앙증맞은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계절이 바뀌는 요맘때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내게 이 시기는 늘 가장 바쁜 계절이었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살다 보면 자신의 소망은 감추고 합리화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여기'를 받아들이는 법 또한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다. 떠나지 않고도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법,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기보다 익숙하고 낡은 것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법을 터득하는 시점이 오는 것이다. 그런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내 몸을 빌어 세상에 나온 존재들. 처음에는 그저 사람 하나 키워낸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돌이켜보니 결국 아이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인생에서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수많은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지만, 내 생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줄 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새 직장으로 옮겨 몸도 마음도 고단했던 요즘, 호수가 풍부해진 것만큼이나 내 마음이 꽉 차오르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집 현관문 앞에 도착해서야 그 답을 깨달았다.


오늘 아침, 고3인 둘째가 차 안에서 느닷없이 던진 말. "엄마, 엄마도 이제 엄마의 인생을 사세요!"

그리고 군대에 간 첫째가 카톡으로 보내온 안부. "다음 주까지 훈련이에요. 저도 잘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엄마는 새 직장 괜찮아요? 4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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