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내면소통

염소에 대한 기억

by 붉나무

"이 동물은 사슴인가요? 염소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머… 맞아요. 이 그림은 상상의 동물이에요. 염소일 수도 있고 사슴일 수도 있어요."

"음… 제가 보기엔 뿔을 잃은 염소처럼 보여요. 아니면…."

"어릴 때 염소를 키웠어요. 사슴도요. 저는 염소의 자유분방함을 닮았는데 늘 갇혀 살았어요.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만 들으며 살았거든요."

"아… 그래서 이렇게 자유로운 염소 같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한 동물을 그린 건가요?"

"굉장히 독특해요. 이 부서지는 보석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가난했어요. 언제나 하늘에서 금이나 보석이 쏟아졌으면 하는 꿈을 꾸었거든요. 그럼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까요. 십대의 소망을 여기에 담은 거죠. 그리다 보니 이렇게 그려진 그림이에요. 눈이 오던 날, 눈이 보석처럼 보인 적이 있었거든요."

"아… 그랬군요. 고단했던 어린 날을 이렇게 멋진 그림으로 승화해 내셨으니 성공한 삶이에요. 정말 멋지세요."

"그림을 그려야 살 수 있었으니까요."

어느 화가의 전시회에서 작가와 나눈 대화다.



염소를 먹은 적이 있다.

코로나 때 업무가 고돼 체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지인이 흙염소를 추천해 주어서였다. 그분이 지쳤을 때 염소탕을 먹고 회복했다는 말을 듣고, 먹지 않기로 했던 염소 진액을 먹게 되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후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사람은 위기에서 살아나려면 없던 용기를 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자신의 신념조차 한순간 내려놓는다. 그러니 누가 무엇을 먹는다고 해서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볼 일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비탈밭과 산에서 흙염소를 키웠다. 그런데 흑염소들은 어찌나 야생성이 강한지 나무 울타리며 밭을 망가뜨리고 다녀 동네에 민폐가 되었다. 결국 몇 해 지나 농장을 접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먼발치에서 강 건너 구름밭의 까만 점들을 세어 보곤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수를 맞힌 적이 없다. 흑염소는 시시각각 늘어나기도 했고, 농장을 벗어나 덤불 속에 들어가 버리기도 했다. 제대로 센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흑염소의 주인인 아버지도 숫자를 매일 다르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심심할 때면 내게 염소가 몇 마리인지 세어 보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대충 숫자를 세어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리고 늘 단서를 하나 붙였다.

"근데 제가 다 세고 나자 산에서 한 마리가 내려왔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얼마 전, 고등학생인 아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여 흙염소 진액을 주문했다. 그리고 나는 아침마다 아이에게 말한다.

"염소 먹고 가자."

그러면 아이는 말한다.

"엄마? 저한테 지금 염소를 먹으라는 말이에요?"

"응. 이걸 먹고 네 체력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좋겠구나."

"동물들을 희생해서까지 체력이 좋아져야 할까요?"

"괜히 먹기 싫으니까 동물권 운운하는구나."

"그게 아니라, 생활과 윤리 공부를 하다 보니까 굳이 동물을 희생해서 먹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출근하면서 어느 해 여름을 떠올렸다.

염소 고기를 먹지 않는 내가 친척 모임에서 억지로 먹어야 했던 기억이다. 염소고기는 냄새부터 거부감이 들었지만 친척들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내가 먹으려고 하지 않자 남편은 맛있다며 계속 권했다. 예전엔 보신탕도 먹었는데 이제 그런 사람도 없지 않느냐며 종용했다. 염소는 그냥 소고기나 다름없이 먹는 것이라고.

결국 나는 그날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염소고기를 몇 점 먹었다. 그리고 역시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염소고기는 냄새 때문에 먹지 못하지만, 염소 엑기스는 보신을 위해 먹고 아이에게까지 먹이는 나. 먹는 방식만 다를 뿐, 염소를 먹는 건 마찬가지다.


얼마 전 어느 시인의 에세이를 읽다가 어린 시절 염소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시인의 아버지도 염소를 키웠는데, 시인이 아버지와 함께 농장에 가면 염소들이 아버지 주위로만 몰려들었다고 했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 주인을 알아보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반려동물과 다르지 않다. 주인이 특별한 것을 주지 않아도 그저 따라다니는 강아지처럼.


"아들아, 흑염소즙은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 네 마음에서 거부감이 드는 것이 네 몸에 보약이 될 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다시 홍삼으로 가자."

"예, 어머니! 잘 생각하셨습니다!"

고등학생 아들은 홍삼액을 마셔도 겨우 일어나 겨우 학교에 간다.

방학에도 매일 학교에 가고 독서실에 간다.

방학만 되면 학원은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아이들을 돈벌이로 삼는다. 방학때 아이들이 더 바쁜 이유다. 학부모는 이 수험생이라는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밤이면 나는 종종 꿈을 꾸는데 언젠가 아들이 집을 나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내가 공부로 압박하는 엄마는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이런 꿈을 꾸다니...
농장을 탈출하던 염소처럼 집을 뛰쳐나가는 아들의 꿈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야생의 염소를 우리에 가둬 놓은 것 같다. 풀 한 포기도 없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치고받으며 탈출구를 찾는 감옥의 염소처럼.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가도 많은 아이들이 또 다른 무력감을 겪는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졸업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하는 곳에 딱 취직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테니까.


지금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풀을 먹는 일이 아니라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