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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조직에서 너무나도 힘들 때 이겨내는 방법

군대에서 터득한 힘든 일을 이겨내는 방법

 2014년 10월부터 2016년까지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지켜야 하는 국방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입대를 한다. 하지만 누구도 선 듯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곳이다. 나도 2014년 초부터 꼭 가야 하는 군대였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진 않았지만…… 군 입대를 신청해서 입대 날짜를 신청했었는데, 입대가 확정이 났을 때는 희비가 엇갈렸다. 이제 갈 날만 기다리며 쉬면 되겠다는 기쁨과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마음속에서 뒤엉켰다. 주변 친구들, 가족들은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만, 솔직히 ‘감사합니다'라는 말 이외의 말을 할 수 없다.


 그렇게 2014녀 10월 말 입대를 위해 논산훈련소에 입소를 했다. 이제 대학생 신분이 아닌 군인의 신분으로 1년 9개월을 살아야 했다. 입대 후 첫 5주는 훈련을 받는 기간이었다. 어쩌면 가장 군기가 바짝 들었을 때일 것이다. 솔직히 훈련소는 심리적인 힘듦보다 육체적인 힘듦이 가장 힘들었다. 이걸 600일 이상을 더 해야 한다니 당시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의 전우애라고 생각했다. 다 같이 힘들기 때문에 나만 힘들지 않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훈련 5주를 그렇게 버텼다고 생각했다. 


 훈련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은 후, 행정반에서 대기할 때는 훈련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훈련소는 같은 훈련병들만 생활을 했기 때문에 눈치를 많이 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자대는 달랐다. 전역이 일주일 남은 병장부터 나와 한 달 차이나는 선임병까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과 지내야 했다. 다행히도 동기 생활관을 사용했던 나는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자대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자대에서의 생활은 훈련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생활은 동기들과 했지만, 모든 일에서 막내들이 나서서 해야 했다. 나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던 것이 나는 집에서도 막내였고 어디에서나 막내였다.(당시에는 나이도 21살이었기에 어딜 가든 막내 포지션인 것도 사실이다.) 2014년은 그리고 부조리라 할 수 있는 군대의 악습도 많이 사라지고 있던 추세였기 때문에 심적으로는 많이 힘든 일은 없었다. 군대 내 인간관계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자대에서는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가장 힘든 때라고 하면 일병에서 상병 4호봉까지라고 생각한다. 일을 제일 많이 하면서 제일 잘해야 하는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것을 배워야 했고,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하면 혼나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아 하기 싫다. 이걸 왜 내가 해야 하는 거지?’ 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작업 집합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하기도 싫었다. 훈련소부터 자대배치받기 전까지 군대에서의 힘듦을 이겨냈던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하는 동기들도 ‘하기 싫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 이겨내기보단 힘들이 배가 되었다. 그래도 버티고 했던 이유는 휴가라는 달콤한 간식이 있었기에 버텼다. 휴가를 보면서 진짜 버티기를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했다. 휴가에서 아버지께 한 마디를 듣기 전에는 말이다. 


 2015년 초 상병이 되고 길게 휴가를 나갔다. 명절을 집에서 보내고 싶어서 설날에 맞춰서 휴가를 나갔는데, 그때 가족들과 술을 거하게 마셨었다. 이전에 나왔던 휴가 이후 3개월 만에 음주였기에 나는 만취를 했고, 가족들과 이야기하던 중 울음을 터뜨렸다. 중간 위치에 있었던 나는 알게 모르게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취기에 진심으로 힘들었던 것이 터진 것이었다. 가족들이 나를 달래주고, 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정말 창피했다. 군대에서 힘든걸 가족에게 보여준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한 마디를 해주셨다. 


 ‘괜찮아 힘들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안 힘든 일은 없다.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면 건강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 해라.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든 법이야.’


(항상 해주시는 말씀이기에 저 당시에 이렇게 길게 말씀해 주시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서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내가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는지 뒤돌아봤다. 훈련소 시절에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었다. 훈련에서도 최선을 다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같이 생활하던 동기들도 모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자대 배치를 받고 난 후 나는 항상 ‘왜 우리가(군대동기들) 이걸 다해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고, 계급이 올라가면서는 더더욱 왜 해야 하는지 불평불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글을 읽으면서 미친놈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군대는 누구도 열심히 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적당히 하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휴가 복귀 후 나는 계급이 올라갔지만 오히려 나서서 열심히 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힘들다고 느끼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고 일에 임하니, 많은 것들을 얻었다. 일의 능률이 올랐고, 포상휴가도 받았고, 무엇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국방부 시계는 느리게 간다지만, 나는 300일 정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물론 느리게 간단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니, 전역이 얼마 안 남았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군대에서도 이렇게 해서 일이 힘들지 않았는데, 사회에서도 이렇게 하면 뭐든 할 수 있겠는데.”


 전역한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대학교를 복학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졸업 후에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전역 후 복학한 순간부터 현재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 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다. 물론 힘든 순간이 없지 않았다. 몇 번의 번 아웃도 찾아왔고,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직무공부, 독서, 운동 등)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며 이겨냈다. 그리고 한 계단씩 성장했다.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고, 무엇도 하기 싫은 감정이 드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해 주고 싶다.

1. 지금 하고 있는 일 이외에 다른 일들도 똑같이 힘들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해왔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힘든 일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라.

2. 하기 싫은 순간이 분명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해라. 그 일과 연관이 되어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었던 것들을 열심히 하면서 환기를 시켜라.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잘 될 수도 있다.


 나는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터득한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이 방법이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실천하고 하지 않는 것은 글을 읽는 사람들의 자유이다. 나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여,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 경험한 방법을 실천했을 때, 자신의 방식을 터득하는 건 쉽다. 그렇게 터득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나도 힘들 때 언제든지 이겨내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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