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최적 온도를 찾아서
한여름 열대야,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 저는 늘 같은 생각에 빠집니다.
에어컨을 끄면 금세 덥고, 조금만 켜도 곧 차가워집니다. 적당히 맞춰둔 온도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또 불편해져서, 수면모드를 바꾸고 가끔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 합니다. 리모컨을 붙잡고 온도를 1도씩 조절하는 저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행동이 결국 '적당함'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요.
그리고 깨닫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최적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를.
우주는 영하 200도의 냉기와 수천 도의 불길 속에서도 움직입니다. 별들은 핵융합의 열기로 타오르고, 우주 공간은 절대영도에 가까운 차가움으로 가득합니다. 그 광활한 온도의 스펙트럼 안에서 저희는 겨우 16도에서 26도 사이, 그 작은 틈새에서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 좁디좁은 범위를 벗어나면 저희는 금세 움츠러들거나 헐떡입니다. 몇 도만 올라가도 "죽겠어요"라고 아우성치고, 몇 도만 내려가도 "얼어 죽겠어요"라며 난리를 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곤 하죠. 실은, 누구보다 연약한 생물일 뿐인데 말입니다.
인간의 오만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저희의 존재 조건이 얼마나 섬세하고 취약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바로 이 여름밤의 에어컨 리모컨입니다. 한 손에 쥔 작은 기계가 우리의 나약함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인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너무 차가워도, 너무 뜨거워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우리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차갑게 살면 메마르고, 확 뜨겁게 살면 타버립니다. 사랑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에는 적정 온도가 있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살아가라는 유명한 말처럼 저희는 늘 균형의 온도를 찾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냉정해지고, 열정적으로 살려 하다 보면 판단력을 잃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열심히 하면 "워커홀릭" 소리를 듣고, 적당히 하면 "성의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친구들 관계에서도,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럽고, 멀어지면 소원해집니다. 연인 사이에서도 항상 다정하면 식상해하고, 쿨하면 차갑다고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온도를 찾아 헤맵니다. 마치 여름밤 에어컨 온도를 맞추듯이 말이죠.
적당함은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중도(中道)라는 길은 늘 눈앞에 있지만, 끝내 붙잡기 힘든 한여름 밤의 바람처럼 우리 손가락 사이로 흘러갑니다. 부처님이 중도를 강조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용을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겠지요. 극과 극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해결해야 할 영원한 숙제라는 것을.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완벽한 온도란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끊임없이 조절하며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의 본질일까요?
어쩌면 적당함이란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는 목표점일지도 모릅니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마음도 바뀌고, 상황도 바뀌고, 그에 따라 '적당한' 온도도 달라집니다. 20대의 적당함과 30대의 적당함이 다르고, 혼자일 때의 적당함과 누군가와 함께일 때의 적당함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중도란, 한 번 찾으면 끝나는 목적지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 걸어가야 하는 여정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끝없는 조절과 균형 찾기가 괴로운 일일까요?
오히려 저는 이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온도에서 아무 조절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추위와 더위를 느끼고, 그것을 조절하려 노력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실감합니다.
리모컨을 잡고 온도를 맞추는 저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섬세함이고, 예민함이며, 인간다움입니다. 완벽한 적응력을 가진 존재라면 이런 고민도, 조절도 필요 없을 테니까요.
우리의 연약함이 때로는 불편하지만, 그 섬세함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온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들이기에, 서로의 불편함을 알아차릴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도 저는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 좁디좁은 범위 속에서 몸과 마음의 온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자체,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섬세해지고, 인간다워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그것은 우리의 가장 진실된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라고. 적당함을 찾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완벽한 균형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내일 밤에도 저는 또 같은 고민을 하겠지만, 그것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적당함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길을 잃더라도,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들이 우리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테니까요.
멈춤은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재정비의 시간이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입니다. 에어컨을 끄고 잠시 자연의 온도를 느끼는 것처럼, 때로는 인위적인 조절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에어컨을 끄고 자연의 온도를 그대로 느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불편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작은 깨달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