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런 사장도 있겠지만...”
이라는 단서는 달지 않겠다. 내가 만난 사장들은 다 그랬으니까. 하나 같이 어렵다고들 말했다. 알바를 하며 만난 자영업 사장이든, 회사를 다니며 만난 기업체 사장이든 마치 유행어처럼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리 같은 말을 하는 건지 정말 신기했다. 내가 봤을 때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내가 봤을 때”라는 말에 사장들은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싶다.
“네가 사업을 몰라서 그래.”
그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근데 이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사장님들의 말과 현실 상황이 다르니까.
사례 1)
내가 다닌 첫 직장은 직원이 스무 명가량 되는 중소기업이었다. 그때 당시 과장, 부장 등 관리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직원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과장이나 부장 월급이 월등히 높았던 것도 아니다. 어쨌든 연장근무를 하고, 휴일 근무도 해야 조금 만족할 만했다. 그때 당시 사장이 매일 같이 하던 말이 있다. 사장들의 유행어인 "어렵다"였다. 그런데 참 웃긴 게 있다. 어렵다던 사장의 차가 뭐였는 줄 아는가? 랜드로버였다. 지금이야 랜드로버를 길거리에서 이따금 보지만, 당시에는 결코 흔한 차가 아니었다. 랜드로버뿐만 아니라 도로에서 수입차를 거의 볼 수 없던 시대였다. 심지어 강남에도 수입차가 별로 다니지 않았다. 사장차만 봐도 황당한데 회사에서 재무 관리를 하던 사장 아내의 차는 폭스바겐이었다. 어렵다면서 수입차를 두 대나 몰고, 게다가 자가로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당시 30평대 아파트를 자가로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런 데도 어렵다는 말을 믿으라고?
사례 2)
아주 가까운 지인 중에 회사 사장이 있다. 만나기만 하면 회사가 어렵다고 난리다. 그는 자녀가 둘이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식비와 양육비만 한 달에 600만 원을 쓴다고 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고, 작은 아이가 유치원생이다. 조그만 아이들이 뭘 그리 많이 먹는지, 뭘 하기에 그리 많이 쓰는지 궁금하다. 한 달 월급 1억이면 근로 소득 상위 4% 정도 된다. 세후 실수령은 540만 원에서 660만 원 사이이다. 아이들 둘이서 상위 4%의 월급을 쓰니 지출이 엄청나다. 한 달 전체 생활비는 1천만 원이라고 한다. 한 달에 600만 원 벌기도 힘든데, 생활비만 1천만 원이니 규모가 엄청나다.
그는 몇 년 전에 가족이 살 2층 주택을 지었다. 대지 구입비와 건축비를 합쳐서 10억 넘게 들었다고 한다. 주택을 지을 때 어디에 어떻게 짓는지에 따라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금액이다. 40살도 안 된 나이에 자기 돈으로 10억을 썼으니 능력이 좋다는 감탄은 둘째 치고, 도대체 어려운 게 맞나 싶다.
사례 3)
내가 아는 어떤 사장님은 회사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회사가 어렵다면서 몇 년 전에 40억짜리 건물을 사서 입주했다. 물론 대출을 받고 산 거긴 하지만. 매출이 떨어져서 걱정이라며 아파트를 이사했다. 40평 아파트에서 자식들과 함께 살다가 2년 전에 막내까지 모두 분가하니 50평대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갔다. 고양시에서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막내 자식에게 30평대 아파트를 사줬다. 도대체 어려운 게 맞나 싶다.
사장들은 엄살이 심하다. 매출이 조금만 떨어져도 회사가 당장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끙끙댄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회사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프로 엄살러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싶다.
회사가 어렵다면서 가져가는 돈이 그리 많고, 어떻게 가정 지출 규모가 그리 클 수 있을까? 남이사 생활비를 얼마나 쓰든 상관은 없다만, 문제는 어렵다면서 돈을 그리 쓸 수 있냐는 말이다. 그건 어렵지 않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진짜 어려우면 지출을 줄이게 되어 있으니까. 지출이 유지된다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진짜 어려운 건 자기 급여도 못 가져가고,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거다. 직원들 월급 다 주고 자기 급여도 제대로 가져간다면 그건 어려운 게 아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 거래처 사장님은 코로나 시기에 직원들 월급 안 밀리게 하려고 본인 급여를 6개월 동안 한 푼도 가지가지 못했다. 회사가 너무 어려워지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 다소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어렵다는 말은 그럴 때 하는 거다. 어렵지도 않으면서 직원들 월급 올려주기 싫어서 거짓말하지 마라. 속내가 뻔히 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