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주부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주부라는 역할은 집에서 놀고먹는 게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직장 생활 못지않게 할 일 많고, 스트레스받는 게 주부니까요. 단, 주부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말이죠.
자녀가 있는 주부들의 하루 루틴은 큰 틀에서 다들 비슷할 거예요.
가족들 아침 챙기기 -> (연령에 따라) 아이 씻기기 -> 등원/등교 시키기 -> 설거지 > 집 정리 -> 점심 식사 -> 청소/빨래 -> (하원/하교 후) 아이 챙기기 -> 저녁 먹이기 -> 설거지 -> 재우기 -> 개인 시간 -> 수면
순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주부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어요. 여기에 추가로 빨래 개야죠. 반찬 해야죠. 때론 반찬 말고 요리도 하죠. 자녀의 연령에 따라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상담 가거나 행사 챙겨야죠. 아이 친구들 엄마들과 교류하며 정치도 해야죠. 할 일이 태산이에요! 이런 데도 주부들이 놀고먹는다고 생각하면 서운하죠.
물론 어떤 주부들은 실제로 놀고먹기도 해요. 가정의 질서가 흐트러지고, 역할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가정은 주부들이 제 역할을 책임감 있게 맡지 않아요. 위에 루틴 중에 상당수를 하지 않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남편 혹은 아내에게 떠넘기죠. 자신은 집에서 놀기만 하고요.
“쉬지 않고 저 일들을 하는 게 아니잖아!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꽤 많잖아!”
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맞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건 아니죠. 빨래, 설거지, 반찬 준비 등은 상황에 따라 몰아서 하기도 해요. 중간중간 쉴 틈이 있어요. 근데 그렇게 치면 회사에서도 일하는 8시간 동안 전혀 한눈팔지 않고 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바쁠 때는 쉬지 못한 채 일하기도 하지만, 덜 바쁘면 쉬엄쉬엄 일하잖아요. 멍 때리거나 딴짓할 때도 있고요.
“주부들은 사람 스트레스는 안 받잖아!”
전반적으로는 그렇지만, 상황과 성향에 따라 달라요. 친구 부모들과의 교류, 아이의 관계 문제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받아요. 얼마나 신경 쓰이는데요. 내 문제면 어떻게든 감당하거나 풀어나가겠죠. 하지만 아이 문제는 내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때도 있어요. 내 문제가 될 때는 두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참 골치가 아프죠. 이것뿐만인가요. 오늘은 반찬을 뭐 해 줄까 고민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예요.
저는 요리를 전혀 못해요. 요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 제가 할 줄 아는 요리는 계란 프라이와 밥 짓기, 라면 끓이기 뿐이에요. 요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요.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간은 어떻게 맞추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결혼할 때 아내에게 못 박아 두었죠. 다른 집안일은 내가 다 하겠지만, 요리는 하지 않겠다고요.
그렇지만 이제 요리도 해요. 육아 휴직을 시작하고 요리도 하기 시작했죠. 아내는 바깥일을 하느라 요리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저야 흰쌀밥에 김만 싸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365일 말이죠. 식사는 그저 배 채우는 용도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아들은 그렇게 먹일 수 없잖아요. 저처럼 먹이면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식욕이 왕성하고, 엄청 먹는 아들 녀석이 저 때문에 식욕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고,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이제 6살이라 한창 커야 하는데 이러다가는 저 때문에 제대로 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할 줄도 모르는 요리를 시작했어요.
아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찾아 만들어줘요. 맛이요? 당연히 없죠. 간 맞출 줄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아들이 정말 맛있다며 잘 먹더라고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게 주부들이 요리를 해주는 맛인가 봐요. 남편과 토끼 같은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거요.
저는 그동안 아내에게 아들과 같은 반응을 해주지 못했어요. 음식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줘도 맛있다는 말 한마디 해준 적이 없죠. 정말 감흥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알겠더라고요. 아내가 왜 그토록 저의 반응을 원했는지 말이죠. 그게 주부의 낙이었어요.
무조건 직장생활만 힘들고, 주부는 쉽다는 생각은 옳지 않아요. 가정 상황과 부부 각자 성향에 따라 바깥일을 하는 남편 혹은 아내가 더 힘들 수도 있고요. 반대일 수도 있죠. 그러니 색안경을 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색안경을 끼면 상대를 이해할 수 없고, 각자 서운한 마음만 드니까요.
부부는 서로 도와가며 가정을 세워나갈 책임이 있어요. 책임을 갖고 각자 역할을 감당해 나가는 거죠. 역할만 성실히 감당한다면, 서로에게 고마워하기만 하면 되죠. 나만 힘드네, 너는 편하네 하지 말고요. 내가 질 수 없는 다른 짐을 지어주는 게 부부잖아요. 그러니 상대의 역할을 인정해 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