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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Apr 15. 2019

직급 없는 수평적 호칭 체계가 가능할까?

회사마다 직급이 있다. 회사 직급은 보통

인턴 -> 사원 -> 주임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 -> 이사 -> 상무 -> 전무 -> 부사장 -> 사장 -> 회장

순서로 구성된다. 이러한 직급 순서는 대기업에 해당하고, 중소기업은 ‘주임’, ‘차장’,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회장’ 직급이 없고,

사원 -> 대리 -> 과장 -> 부장 -> 사장

이렇게 다섯 가지로 - 혹은 몇 가지가 더 추가되거나 - 간소화되기도 한다.

회사에 직급이 있는 이유는 직급에 따라 역할을 나누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또한 직원 관리 및 업무 처리의 효율성 등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회사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직급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직급 체계는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의 특성과 맞물려 상위 직급의 권력화라는 부작용을 만들어 냈다. 그 권력화로 하위 직급은 공사 구분 안 되는 업무를 억지로 맡기도 하고, 상위 직급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자주 빠진다.




지난 2017년, SK네트웍스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구성된 5단계 직급을 없애고, 팀원은 서로 ‘매니저’로 부르는 수평 호칭 체계를 도입했다(관련 기사 - SK네트웍스, 수평적 호칭제 도입…"조직문화 싹 바꾼다"​). 당시 SK네트웍스를 새로 맡게 된 박상규 사장은 “직급의 높이가 의견의 높이가 되어서는 안 되며 더 좋은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돼 최선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호칭제가 잘 정착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보다 앞선 16년 7월에 D 제약 회사가 제약업계 최초로 호칭제를 도입했다가 진통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관련 기사 - 직급 체계 없는 조직운영 “시기상조”​). 역시 지금은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한국 문화에서 호칭제는 당분간 힘들어 보인다. 물론 같은 기사에서 CJ헬스케어는 호칭제와 직급제를 적절히 배합해서 안착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앞으로도 많지 않을 듯하다.




회사 규모가 작으면 호칭제 도입이 비교적 순조로울 수는 있다. 내가 전에 다니던 회사도 호칭제를 도입했다. SK를 따라하겠다고 말이다. 그 회사는 가족 회사였는데, 가족 외에 직원을 충원하면서 호칭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는?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퇴사를 했는데, 그때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듯 보였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문제가 생겼다. 가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나이가 어리고 사회생활도 처음인 직원이 입사 초기에는 얌전히 지내다가 몇 달 지나자 분위기에 적응했는지 사람들을 막 대하기 시작했다. 업무 시간이든 업무 외 시간이든 직원들에게 도를 넘어서는 장난을 치고, 사장님께도 지나친 농담을 했다.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눌 때는 말대꾸를 하며 자기주장만 계속 내세웠다. 직급이 없고, 서로 ‘~님’이라고 부르니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 나를 포함해서 다른 직원들은 그 직원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상사가 아니라 직급상 동등한 입장이니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그 직원과 친한 다른 직원이 가끔 더 세게 말해야 겨우 잠깐 조용한 척했을 뿐이다. 수평적 조직 체계를 악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수평적 호칭제, 취지는 좋다. 상호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직문화를 만들려는 방안이니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고 본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이유만 들겠다.

첫째, 한국 문화는 아직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문화는 상명하복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수평적 위계보다는 수직적 위계에 익숙하다. 아직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유교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또한 남성들은 군대를 다녀온 탓에 상명하복, 수직적 위계가 몸에 배어 있다. 상황이 이러니 수평적 체계는 낯설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에 민감하다. 우리나라는 나이가 계급이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나면 처음에는 싸움의 원인으로 말다툼을 하다가 “너 몇 살이나 먹었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 왜 싸우게 됐는지 근본 원인은 사라지고, 나이 싸움으로 번진다. 이러한 우리 문화의 특성상 호칭제는 나이를 기준으로 한 위아래를 깨버린다. 어린 직원이 나이 든 직원을 어떤 호칭으로 부르든 손해 볼 게 없다. 하지만 그 반대는 손해처럼 느껴진다. 나이 든 직원은 왠지 하대당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수평적 호칭제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회사에서 직급 없이 동일한 호칭을 사용하면 수평적 조직 문화가 만들어질까? 수평적 조직 문화가 유지될까? 글쎄, 그것이 가능한 회사가 있고, 불가능한 회사가 있을 것이다. 인용한 기사에서처럼 하다가 실패하는 회사도 있을 것이고, 비록 진통은 겪겠지만 결국 안착하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결과는 제각각일 것이다.


결과는 다양할 것이 분명하지만, 수직적 직급 체계를 수평적 호칭제로 바꾸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착하면 다행이지만, 괜히 시행했다가 실패하면 시도를 안 한 것만 못하니까. 그리고 아직 우리 세대는 수직적 위계가 더 익숙하니까. 십 년이나 이십 년 뒤 혹은 다음 세대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둘 다 장단이 있지만, 수평적 호칭제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여러모로 수직적 계급제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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