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모든 것, 영화와 소설 1. 캐리
이야기의 모든 것, 영화와 소설 1. 스티븐 킹의 '캐리', 드 팔마의 '캐리'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같은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지 알아봅니다.)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다른 것'을 '특별'하게 대한다.
이것은 '미지'라고도 부르는 데, 아직까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될 때까지 경계의 태세를 취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인류를 이롭게 하는 데 이용하기도 하고, 혐오와 배척을 통해 우리 사회 안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캐리 화이트'가 바로 그런 존재다. 텔레키네시스(염동력: 손을 대지 않고 물체를 움직이는 현상, 능력의 총칭. 이하 TK)라는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인데, 어린 시절부터 그녀 주위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1966년 8월 17일, 3살짜리 딸 '캐리'와 함께 살고 있는 마가렛 화이트 부인의 집에 지붕을 부숴버릴 정도의 우박 같은 돌덩이들이 쏟아졌다.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부인은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 지역 신문에서 발췌
특별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이들이 특별한 존재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몇 가지 소소한 이벤트만 발생할 뿐 그러한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른 채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일부 존재만이 특수한 환경 아래서 지속적인 사건들이 누적되다가 결정적인 순간, 능력을 발휘하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순백, 청순을 상징하는 '화이트'라는 성을 물려받은 캐리였지만 그녀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온통 붉은색 투성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나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순간 그녀의 능력이 발현되었다. 평범한 소녀를 '슈퍼 빌런'으로 만든 '3가지 붉은빛 트리거'가 있었던 것이다.
광적인 기독교 원리주의자였던 마가렛 화이트(캐리의 어머니)는 남녀 간의 성관계에 대한 지독한 혐오가 있었다. 구약성서 속 아담과 이브가 남녀관계에 눈을 뜬 게 인류가 죄악을 저지른 시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 랄프가 술이 취한 상태에서 반 강제적인 관계를 통해 아이를 잉태하게 된 마가렛은 육체관계에서 즐거움을 느낀 자신과 그 결과물인 캐리를 평생에 걸쳐 혐오하게 된다. 임신 과정 중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고 하혈 중 캐리를 출산하게 된다. 출산 직후에도 캐리를 살해하려 하지만 모성본능에 막혀 포기한다. 모든 아이가 핏덩이 속에서 태어난다지만 캐리는 저주와 혐오의 핏빛 속에서 나온 셈이다.
두 번째 극단적인 상황은 샤워실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체육시간 이후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려는 캐리의 두 다리 사이에게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어머니에게서 생리와 같이 여자 몸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배우지 못한 캐리는 자신의 몸에 큰 이상이 생겼다고 착각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평범한 상식조차 모르는' 캐리가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왕따를 주도한 크리스를 포함한 친구들은 캐리를 감싸 안기는커녕 생리대를 집어던지며 조롱하고 괴롭혔다. 그녀의 첫 생리에 대해 보인 다른 친구들의 반응과 그녀 자신의 느낀 충격은 TK 능력을 촉발시킨 2가지 심리적 요인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캐리가 가진 TK 능력의 존재를 몰랐겠지만 말이다.
끝으로, 프롬 나이트에서 세 번째 스트레스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이것이 최악의 사건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샤워실에서 방관자로 머물렀던 것에 죄책감에 느낀 수지는 캐리를 '엄친아' 남자 친구와 축제에 동행케 해 그녀의 치유를 돕고자 한다. 반면, 샤워실 사건으로 정학 및 축제 참여 금지 처분을 받은 크리스는 캐리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최악의 복수를 꾀한다. 선의와 악의는 서로 뒤엉켜 캐리 안에 감춰진 TK 능력을 완전히 방출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결국, 엄마가 옳았어.
그들은 날 데리고 실컷 가지고 놀다가 내팽개쳐 버렸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샤워실에서 했던 짓을 반복한거야.
쏟아져내린 돼지피가 최종 트리거가 되어 슈퍼 빌런이 탄생했고,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축제의 현장의 있던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었다. 날아온 물체에 부딪혀, 전기에 감전돼, 불에 타 죽기도 했다. 손을 대지 않고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TK 능력을 이용하면 죽이는 방법도 무궁무진했다.
돼지피를 준비한 크리스와 남자친구 빌리는 차에 탄 채 강제로 주유소를 들이받고 죽었고, 캐리를 이상한 외톨이 소녀로 키운 마가렛은 심장이 서서히 멈추며 죽었다.
과연 슈퍼 빌런 '캐리'는 빌런으로 태어난 걸까,
엄마의 뒤틀린 믿음과 친구들의 괴롭힘에 의해 만들어진 걸까?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공연한 혐오발언과 증오범죄는 전 세계적 현상이며, 우리 역시 ‘○○충’, ‘극혐(극도로 혐오함)’ 등의 유행어를 통해 혐오와 증오를 표출하는 '혐오를 권장하는 사회'가 되었다.
오늘날의 혐오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다.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를 멸시하고 적대하는 행위에서, 또 그러한 행위를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태도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공모되는 것이다. 혐오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계속 높아지면, 언제든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적 광기와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 -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
진짜 빌런은 누구일까? '남다른' 존재인가, 혐오를 통해 '남다르게' 만드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더 이상 혐오와 증오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욕과 폭력에 맞서는 일을 피해자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나’와 다른 목소리를 듣고,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암세포가 치명적인 이유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각기 다른 세포들을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비정상적 세포(암세포)로 똑같이 바꾸어 버리는 데 있다. 토끼의 생존에 진정한 위협은 1마리의 여우가 아니라 천적 없이 늘어나 버린 같은 종의 토끼 100마리가 먹이를 몽땅 먹어치우고, 똥을 싸서 사는 곳을 더럽힐 때이다. '동일화'는 붕괴의 지름길이다.
자연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캐리' 이야기의 3 가지 버전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1974)' - 텔레키네시스라는 초능력 유전자가 어떤 환경적 요인과 상황을 거치면서 발현되는지를 신문기사, 리포트 형식과 버무려서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소설이 영화화된 작가 일만큼 영화로 변환하기 적합한 알기 쉬운 스토리라인과 강렬한 사건들이 강점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 '캐리(1976)' -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 소설 속 가장 큰 사건인 '샤워실'과 '프롬 나이트'를 중심으로 왕따 소녀의 복수기를 연출하였다.
킴벌리 피어스의 리메이크 영화 '캐리(2013)' - 원작 소설과 영화를 현대에 맞게 각색.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 보면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76년 영화보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편. 샤워실 사건을 촬영한 동영상을 축제 현장에서 보여주는 장면이나 크리스 처리하는 씬 등 자극적인 묘사가 더 많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