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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rce Feb 10. 2021

책 <빈 옷장>


'언제부터 나는 그들을, 부모님을 닮아가는 것에 끔찍한 두려움을 느끼게  것인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것은 아니다.  상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눈을  것이다.. 바보 같은 소리. 세상이 하루아침에  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더는 그들을   없다로 말하기까지 몇년이 걸렸다... 누구의 잘못인가. 모든 것이 그리 어둡기만  것은 아니었는데.  즐거움이 있었고, 그것이 나를 살렸다. 더러운 .'

 글의 주인공, 드니즈 르쉬르는 시골에서 공장 일꾼들을 대상으로 식료품점  카페를 하는 부모밑에서 자랐다. 부모의 지원 덕에 사립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진학한다. 이제  불법낙태수술을 받고 기숙사에 누워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

어떻게 이렇게 솔직한 글쓰기가 가능한 것일까 글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책을  읽고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가 신유진 님이 나의 궁금증을 이해한다는  답했다. 작가 본인인 '아니 에르노' 아닌 '드니즈 르쉬르' 내세워 자기 검열이라는 고리를 끊을  있었고 소설이라는 형식의 보호 아래 '조금  멀리' 나아가는 글쓰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 번역가의 말대로 우리는 드니즈 르쉬르는 아니 에르노다, 라고 말할  없다.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독백, 대화가 섞이는 속에, 교육받지 못한 부모를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자 아이가 느끼는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난다. '어린 시절의 추억, 가장 아름다웠던 방학에 대한 글을 써보세요. 주방을, 백부님을 묘사해보세요.', '다른 여자애들도 부모와 영화, 외출, 원피스 때문에 다투기 시작한다.  애들은 다툼을,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무척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시시한 일들, 염병할 년들의 하찮은 이야기들, 내가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태어날때 부터 깨끗한 주방을, 화장실이 딸린 집에서 자랐고, 의사이거나 크고 세련된 안경점을 하는 아버지, 백부를  아이들 사이에서 갈곳을 잃은 분노한 10 아이가 느끼는 절망감과 분노를 눈에 보이듯 글로 써낸다. 그들의 세계가 달랐음을 미처 깨닫기  드니즈가 무심코 내뱉는 말은 그의 가족을 배경을 여과없이 드러냈고, 그건 상스러운 말이잖아, 꾸지람을 받을때마다 배워갔다. '진짜'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된 다는 . 학교를 가면, 가난한 식료품점  카페의 딸인 드니즈는 두고 와야 한다는 것을. 드니즈에게 선생님의 숙제는 폭력이었고, 문학은 도피처이자 올바른 태도, 갖추어야  교양에 대한 정답을 제공해주었다. 드니즈가 문학으로 빠진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었으리라.

아니 에르노의 글의 무엇에 그렇게 끌렸는지 아직 확실히 잘은 모르겠다. 솔직함, 유려함, 문장의 다름다움, 아니다 안다.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만 읽을  있는 이야기, 그것이다. 그가 이미 처음 책에서 밝혔듯이 '빅토르 위고나 페기처럼 교과 과정에 있는 작가를 공부해볼까. 구역질이 난다.  안에는 나를 위한 ,  상황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묘사하거나  끔찍한 순간이 지나가게끔 도와주는 대목은  구절도 없다. 탄생,, 결혼, 임종, 모든 상황마다 그에 따른 기도가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상황에 맞는 구절을 찾을  잇어야 한다. 낙태 전문 산파의 집에 갔다가 나온 스무 살의 여자아이를 위한,  여자아이가 걸으면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지면서 생각하는 것에 관해  구절. 그렇다면 읽고  읽을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는 일이지만, 나는 아니 에르노처럼 낙태를 하거나 신분을 전향한적은 없지만, 그의 모든 이야기에 문장에 공감할  있었다.  아니 에르노 전에는 우린 이런 이야기를 읽을  없었던 걸까. 인지조차 하지 못햇던 걸까. 아니 에르노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녀의 글을 읽을  있어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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