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사고 파는 사람들

시간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by 북블레이더

서울 강남, 번화가 뒷골목 어딘가에 숨겨진 작은 가게가 있었다. 간판도 없고, 창문도 없는 이 가게의 문을 열면 묘한 향기와 함께 시계 초침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어서 오세요, 시간 은행입니다."


카운터 뒤에 서 있는 중년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이름표에는 '김시계'라고 적혀있었다.


"시, 시간 은행이요?"


처음 이곳을 방문한 20대 후반의 여성, 윤하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면을 가득 메운 시계들은 제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모래시계가 천천히 모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사고팔 수 있죠."


김시계의 설명에 윤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간단합니다. 당신의 시간이 부족하다면 살 수 있고, 돈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팔 수 있어요."


윤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 늘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마감에 늘 쫓기고, 개인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럼... 제가 시간을 산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김시계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간단해요.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구매하면, 그 시간만큼 현실 세계가 멈추게 됩니다. 당신만을 위한 시간이 생기는 거죠."


윤하의 눈이 커졌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래 같았다.


"그럼 얼마인가요?"


"시간당 10만 원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셔야 할 점이 있어요. 한 번 산 시간은 반드시 써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당신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그만큼 나이를 한꺼번에 먹게 되죠."


윤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카드를 꺼냈다.


"5시간 주세요."


김시계는 고개를 끄덕이고 거래를 진행했다. 그리고 윤하에게 작은 모래시계를 건넸다.


"이걸 뒤집으면 당신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윤하는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깊은 숨을 내쉬고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순간, 세상이 멈췄다.


창밖의 새들은 허공에 멈춰있었고, 거리의 차들도 움직임을 멈췄다. 윤하는 흥분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들어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한강공원을 산책하며 조용히 명상을 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윤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멈춰있는 세상 속에서 그녀 혼자만 움직이는 것이 점점 외롭게 느껴졌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요리사가 움직이지 않아 불가능했다.


5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윤하는 시간 은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모래알이 떨어지는 순간,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떠셨나요?" 김시계가 물었다.


윤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좋았어요. 하지만...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시간을 샀지만, 정작 그 시간 동안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김시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시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 양이 아니라 질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웠느냐가 중요하죠."


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제가 산 시간 동안 세상은 멈춰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었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없었어요. 마치... 살아있는 시간이 아닌 것 같았어요."


김시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겁니다. 시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 시간 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관계, 성장, 그리고 의미 있는 순간들에 있어요.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윤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시간을 팔러 왔습니다."


남자의 얼굴은 핼쑥했고,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김시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그러시겠습니까? 한 번 판 시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요. 아이의 수술비를..."


윤하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김시계에게 다가갔다.


"저... 죄송하지만, 이 분의 시간을 제가 사고 싶어요."


김시계와 남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이신가요?" 김시계가 물었다.


윤하는 결연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 분이 파시려는 시간만큼 제가 돈을 지불할게요. 그리고 그 시간은 다시 이 분에게 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이 분은 돈도 얻고 시간도 잃지 않을 수 있잖아요."


남자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왜 그러시는 거죠?"


윤하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방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시간의 소중함이에요.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팔아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해요. 제가 조금 도와드리면, 당신은 돈도 얻고 소중한 시간도 지킬 수 있잖아요."


김시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특별한 제안이군요. 우리 가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윤하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답은 필요 없어요. 대신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의미 있게 사용해주세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꿈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 다른 이들을 돕는 시간... 그런 순간들이 우리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요."


김시계는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윤하 씨, 당신은 오늘 시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것 같군요.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결정되죠."


윤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이제야 진정한 시간의 의미를 이해한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윤하는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그녀는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오랫동안 미뤄왔던 그림 그리기 취미도 다시 시작했다. 가끔 시간 은행을 찾아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시간을 나누어주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시간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삶의 경험을 나누었다.


윤하는 깨달았다. 시간의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셀 수 있는 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경험의 깊이와 폭이라는 것을. 매 순간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의미는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채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시간은 살 수도, 팔 수도 있었지만, 가장 값진 것은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었다. 윤하는 이제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전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해졌다.


시계 초침 소리가 멀어져 가며, 이야기는 끝이 났다. 하지만 윤하의 새로운 시간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시간을 사고 파는 게 말이 안 되는 설정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을 낭비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마치 소비재처럼 여깁니다. 시간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시간 은행'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우리는 시간이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봤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시간과 돈은 이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씁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시간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윤하가 처음에 시간을 샀을 때 느낀 공허함, 그리고 나중에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사서 돌려줌으로써 얻은 만족감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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