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많이 아팠을 때처럼,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염증 수치가 낮으니 금방 나을 수도 있을 거라 했지만, 이미 몇 주가 흐르며 통증이 심해지고 있다. 그때도 거의 반년을 앓았었다. 의사가 예고하지 않은 복통 골반통 다리 저림의 느낌이 또 예사롭지 않다. 항생제와 진통제가 별 효과가 없다.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실 나를 가장 크게 잠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 심하게 아파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어떤 그림자의 느낌을.
이런 시기를 버티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상상력"이다. 금방 나아질 거라는 달콤한 상상.
남도를 뛰어다니며 그득한 한상차림을 꿀꺽하는 상상. 파전골목에서 막걸리를 기울이고 크게 웃는 상상. 헬스장에서 땀을 마구 흩뿌리며 온몸을 움직이는 상상.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세곡천을 빠르게 뛰고 대모산을 오르는 상상.
불과 몇 주 전이, 모두 꿈같다.
힘들 때는 정말 상상이 최고의 묘약이다.
입원실의 기나긴 밤동안 수없이 많은 책을 보고
오색찬란한 많은 상상을 했다.
마음속으로 성냥을 얼마나 그었는지 모른다.
누워만 있을 때는 잠도 많이 잔다. 예쁜 꿈에서는 깨고 싶지 않았기에, 성냥 한 갑을 다 쓰려 노력했다.
성냥팔이 소녀를 상상했을 때,
처음에는 그녀의 입모양을 그릴 수가 없었다.
소녀처럼 우선 촛불 하나를 켜보았다.(그려보았다)
예쁜 트리가 그려졌다. 하트가 박힌 딸기 케이크와
겨울에 있을 리 없는 포도가 나왔다.
조금씩 마음에 훈기가 돌았다. 촛불에서 노란빛이 퍼져나가고 거리의 배경에도 조금씩 색채가 입혀졌다.
그녀의 머릿속을 상상했다.
골똘히 생각해보는 그녀의 얼굴 표정 안으로
다양한 감정의 얼굴들이 몽글몽글 올라와 떠다녔다.
웃는 표정, 멈춘 표정, 슬픈 표정, 뿌듯한 표정, 우울한 표정, 해처럼 빛나는 강렬한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