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제 반려질환인데요?
ADHD 진단을 받고 약(콘서타)을 복용한지 만 2년이 되었다. 그 사이 18mg이었던 초기용량이 27mg으로 증량되었고, 대학원을 그만두었고, 회사에 입사했다가 퇴사했다.
최근 ADHD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관련 콘텐츠가 많이 제작되면서, '나도 혹시 ADHD 아니야?'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중이 잘 안되는 날이며 "나 ADHD인가봐" 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면 정작 진짜 ADHD인인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겉보기엔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울면서도 할 일을 꾸역꾸역 해내는 내가 ADHD라고 하면, 다들 손사레를 치며 말한다.
에이, 너 정도는 ADHD 아니야.
근데 나는 ADHD가 맞는데...? 나는 그렇게 나의 ADHD를 빼앗기곤 했다. 그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짜 ADHD인은 어떤 사람인 걸까? 어느 정도로 정신 머리가 없어 보여야 그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일까?
나의 첫 정신과 선생님은 나에게 ADHD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는 우울증이 너무 심했고 정신활동도 신체활력도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기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의사는 우울증 때문에 집중력이 저하된 것이라고 했고, 나는 전문가의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다. 그렇게 2~3개월 치료를 받는 동안 우울증과 난독과 수면 문제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으므로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두 번째 정신과 선생님을 찾아간 이유는 소화불량이었다. 특별히 우울한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되었다. 세 달 만에 6kg이 빠지고 죽을 먹어도 체했다. 여러 과의 병원을 전전하고 위 내시경 결과 '아주 깨끗하다'라는 진단까지 받은 날, 다시 정신과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두 번째 의사는 처음부터 나의 ADHD를 의심했다. 그러나 주 호소 증상은 우울감과 무기력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뒷전으로 미뤄졌다. 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의사는 다시 CAT 검사*를 권했다.
(*CAT 검사 : 만4세~만 49세까지의 아동및 청소년 그리고 성인의 주의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검사)
CAT 검사는 나를 기분 나쁘게했다. 무슨 도형 같은 것을 맞추라거나 색을 맞추라거나 따위로 30분을 소비했던 것 같다. 지루하고 졸렸다. "자라님, 주무시면 안 돼요!"라는 소리에 퍼뜩 잠을 깼다. 그런데 첫 결과가 이상하리만치 나쁘게 나왔다고 재검사를 해야했다. 두 번째 검사도 매한가지였다.
나는 국가 공인(국가 공인 아님) 멍청이가 된 기념으로 대학원 동기들에게 내 처참한 시험 점수를 자랑했다. 심지어 상위 99%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하위 1%에 해당하는) 항목도 있었다. 나와 유머 코드가 잘 맞던 동기 오빠는 새로운 업적을 달성했다고 박수를 쳐줬다.
그렇게 나는 내 반려질환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사실 ADHD를 빼앗기게 된 게 기분 나쁠 일인지는 모르겠다. ADHD는 다지증이나 구순구개열처럼 선천적으로 전두엽에 나타나는 이상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두렵지 않은가. 알고보니 나에게 선천적인 심장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끔찍한 일인 것처럼, 알고보니 남들보다 조금 덜 효율적으로 살게 프로그래밍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오히려 ADHD를 선망하는 우리가 있다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는 약간의 여유와 게으름도 '나쁜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 나쁜 것의 기원이 불가항력이었으면 한다.
그러기에 ADHD는 적당히 불행한 변명이다. 지금도 나는 쓰던 브런치북을 내팽겨 두고 새로운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낮에는 글을 쓰다가 빨래를 널고, 샐러드를 만들어서 먹는 도중에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밥을 먹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게으르거나 끈기가 없거나 집중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ADHD 때문이라면?
변명과 회피는 너무 쉽다. 그런데 그런 변명은 너무 나라는 사람을 재미없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럴수록 더더욱 변명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내 반려질환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얼레벌레' 살아간다는 말이 나한테는 참 잘 어울린다. 벌레 같아서 조금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거니까.
당신 옆의 또 다른 ADHD인, 김자라 등장.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