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마라.”
“오늘에 충실하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마음에 닿지 않는 말들이다.
좋은 말이라는 건 알지만, 막상 힘들 때는 그 말들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상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어도 이 말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 교실에서, 자기계발서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 속에서 끈질기게 반복된다.
왜일까?
그것은 이 말들이 ‘옳아서’가 아니다.
‘끝내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실패해서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전에 흔들린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이 먼저 내려진다.
그 순간을 붙잡아주는 것이 바로 한 문장이다.
억만장자들의 수첩에 적힌 문장들은
의욕을 끌어올리는 구호가 아니다.
스스로를 다그치기 위한 주문도 아니다.
그 문장들은 감정이 판단을 대신하지 못하게 막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이 말은 무조건 버티라는 명령이 아니다.
지금 느끼는 피로가 정말 끝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지나가는 과정인지 섣불리 결론 내리지 말라는 경고에 가깝다.
“오늘에 충실하라.”
이 말 역시 더 열심히 살라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핑계로 오늘을 대충 흘려보내지 말라는 판단의 기준이다.
중요한 건 이 문장들이 새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몰라서가 아니라, 그 말을 기준으로 써본 적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은 놀라울 만큼 쉽게 자신을 설득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
“다들 이 정도에서 멈추잖아.”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그럴듯한 말들이 결정을 대신하는 순간, 기준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감정과 두려움이 들어선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중요한 문장을 수첩에 적어 둔다.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준이 가장 먼저 흔들린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 한 줄이 인생을 단번에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문장을 선택의 순간마다 꺼내 쓴다면,
그 말은 습관이 된다.
그리고 습관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삶의 방향을 바꾼다.
어쩌면 당신도 이미 알고 있는 말일지 모른다.
다만 아직, 당신의 수첩에 ‘기준’으로 적히지 않았을 뿐이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갈 문장 하나.
그 한 줄이 적히는 순간,
인생은 아주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