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이 Mar 20. 2023

니꺼내꺼가 어딨어!

결혼은 처음이라, 결혼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스스로에게 가장 놀랐던 건, 생각보다 내가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제도 이런 말을 했다.


"비행기 티켓은 자기가 했으니까, 비슷한 금액대인 예물반지는 내가 할게."


사회생활 7년 차인 나와 겨우 6개월 차인 남자친구가 결혼을 준비하다 보니 금액적으로 내가 많이 넉넉한 편이다. 당연한 순리였다. 왜 그런 결혼을 하냐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남들은 남자가 집을 해오고, 남자 집에서 얼마를 해줘서 몸만 가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그럴 때면 흔들릴 때도, 반박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남자를 만나온 나의 과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심해 보면, 언제나 '지금의 내 남자친구가 최고'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성격적으로나 가치관 쪽으로나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남자친구이다. 그만큼 그를 사랑하는데, 어쩐지 준비과정은 반반씩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결혼하려고 아침에 마시고 싶은 커피까지 참아가며 모은 돈은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한 번은 남자친구와 여행을 갔다. 치앙마이라는 햇볕이 뜨거운 나라라 각자 집에서 쓰던 선크림을 가져왔다. 내 선크림은 오래전부터 쓰던 거라 얼마 남지 않았을뿐더러 때가 타 곳곳이 더러웠다. 남자친구의 선크림은 내가 쓰던 선크림이 좋다고 추천해 주니 똑같은 제품으로 구입해, 똑같았지만 막 새로 뜯은 선크림이었다. 그런데 자꾸 본인 앞에 있는 새 선크림이 아닌, 내 거를 열어 온몸에 듬뿍 짜서 바르는 게 아닌가. 얼굴만 바르는 게 아니고 온몸에! 나보다 몸무게가 2배나 더 나가는 그 덩치에!


내 거 쓰지 말라기엔 좀생이가 되는 기분이라, 말없이 남자친구를 바라봤다. 왜? 하는 표정으로 계속 선크림을 발랐다. 내거는 가운데 튜브가 움푹 들어갈 만큼 꽤나 많이 쓴 선크림이라 곧 새로 사야 하는데, 왜 본인 새 거는 안 쓰고 내 거를 쓰는지 어이가 없었다. 하루이틀은 참았지만, 삼일째 되는 날엔 짜증이 났다.


"아니, 왜 자기 거 안 쓰고 내 거 써? 자기께 더 많아!"


돌아오는 대답은 웃으면서 몰랐다는 거였다. 남자들이 아무리 무심하고 대충 산다 해도 이 정도일 줄이야. 아니면, 내가 쓰는 게 더 좋은 건가? 나랑 뭐든 함께하고 싶은 건가? 하고 운을 띄우니, '맞아! 난 모든 걸 자기랑 함께하고 싶어!'하고 애교를 부리는 게 아닌가. 그래, 나는 녹아버렸다. 


선크림하나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당연히 아니다. 평생을 쫌생이로, 100원도 아끼는 짠순이로 살아온 내가 빚지기는 또 꽤나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사진첩을 봤는데, 남자친구와 맛있게 먹은 음식 기록을 보며 깜짝 놀랐다. 남자친구의 취직으로 장거리가 될 예정이었던 우리는 그전까지 일주일에 4,5번은 데이트를 했고 맛집을 활보했다. 그런데 그 음식들을, 데이트할 때마다 식사는, 내가 다 사준게 아닌가. 기겁했다. 내 텅장! 


그럴 수 있다고 마음을 진정시켜 보았다. 그런데 어딜 가든 내가 운전해서 그를 데리러 가서 근교로 놀러 갔다가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기까지 하는데, 겨우 세 달 만났고 곧 장거리가 될 남자친구와 계속 만나야 되는 이유가 좋아하는 감정 빼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번 이별을 결심했었더랬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이런 여자는 처음이야!'같은 명대사로 결혼하자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투박한 손등으로 소리 나지 않는 눈물을 훔쳤지만, 수도꼭지를 틀은 듯 그의 눈물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펑펑 우는 남자를 보니 내 마음의 갈대가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 1년을 채워 만나고 우리는 현재 결혼 준비 중이다.


30년 가까이 남으로 살아온 우리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다 보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남자친구는 남동생, 나는 여동생을 둔 장남과 장녀로 느끼는 책임감은 비슷하다만, 서로 다른 성별과 같이 지내려니 경악스러울 때가 꽤나 있었다. 남자친구는 내 긴 머리카락이 바닥에 마구 쌓이는 걸 보고, 나는 남자친구가 땀냄새가 나는 옷을 또 입는 걸 보고, 그럴 때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내 인생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돈, 나의 생활'에 누군가 들어온다는 게 경계심이 그렇게나 든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처음엔 그랬지만, 같이 살면서 매일매일 얼굴을 보고, 어떤 큰일이 일어나 둘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아이가 생기면서, 그전보다 훨씬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도 그 과정일까.


나는 누군가를 나의 삶으로 들이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니꺼내꺼가 어딨어!'라고 해맑게 외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다. 강아지처럼 나만 바라보고,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드는 그런 남자친구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해 본다. 어색하지만, 나의 반려인과 계속 가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