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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쓰 Jan 24. 2020

다마스에 '담을' 것들

"5살 여자 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책에 관한 기억
 책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기억이 뭘까 돌이켜보면 5살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길을 잃었던 날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리모델링 후 많이 달라졌는데 당시 광화문 교보문고 천장은 온통 거울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들어갈 때마다 고개를 들어 천장에 비친 수많은 책과 사람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함께 교보문고에서 여러 책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랬는지, 나는 길을 잃었고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상황을 파악한 후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보문고 직원분이 다가와 울고 있는 나를 진정시키며 이름과 나이 등을 물었다. 그리고 나는 생애 첫 방송을 타게 되는데, 바로 ‘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였다.

 

“5살 여자 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보호자분께서는 안내 데스크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나는 엄마와 다시 상봉했고, 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내가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당시 내 나이가 5살이라는 점이다.


 책은 아마도 내가 가장 어릴 때부터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한 물건이었던 것 같다. 막내이다 보니 옷은 대부분 물려받아 입었고 그 외 물건도 부모님께서 사주시는 대로 받았지, 내 의지가 개입될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책은 달랐다. 서점에 가는 날이 신났던 이유는 아무런 간섭 없이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계산대로 가져가면 엄마는 별말 없이 원하는 책을 사주셨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책에 점점 정을 붙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인간은 아니었어도, 옆에는 항상 책을 끼고 살았거나, 살기를 갈망했다. 본능이거나, 치밀한 조기교육이거나, 그 원인은 모를 노릇이지만.


 : 독립출판물 +a
 그리고 좀 더 커서 본격적으로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동네 책방에서 진행된 독립출판 워크숍, ‘리틀프레스’를 만나서부터다.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기성출판물을 보면서는 책의 탄생(?)에 관해서 까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독립출판물을 만나고부터는 책에 기록된 모든 글자들은 다 한 땀 한 땀 사람이 적어 내려간 것이라는 게 새삼 와 닿기 시작했다. 꼭 ‘작가’라는 자격을 부여받지 않고서도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꺼이 읽어 내려가는 독자들이 있다는 게 뭔가 멋지게 느껴졌다.

*독립출판물 :  독립출판물은 보통 1인 혹은 1팀의 제작자가 기획부터 제작, 디자인, 인쇄까지 모두 담당하며 출판하는 출판물을 말한다.

6년 전,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진행된 책 만들기 원데이 워크숍에서의 책들


 그래서 입고 도서는 주로 독립출판물이 될 것이다. 기성출판물도 함께 판매할까 고민했는데 우선은 독립출판물, 혹은 독립출판물로 시작해 기성출판물로 확장한 책을 먼저 입고하려고 한다. 온라인으로 모두가 연결되어있고 모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이동책방이 뭐 얼마나 책 접근성을 높이겠나 싶겠냐만은, 이동책방이 조금이라도 ‘물리적인’ 책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면 택해야 하는 출판물은 기성출판물보다는 독립출판물이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다. 그렇다고 기성출판물을 아주 배제하려는 건 아니고, 중고 판매 쪽으로 고려하고 있다. 점차 구체화해가야겠지만, 일단 지금의 계획은 그렇다.


입고-출점 : 닭이 먼저, 알이 먼저?
 이제 입고 요청을 해야 하는데, ‘입고 요청을 해야 된다’는 말을 백 번째 하면서 망설이고 있다. 이동책방은 아무래도 새로운 시도이다 보니 제작자분들께 괜스레 송구스러운 마음도 들거니와 거절 당하진 않을까 두려워서다. 꼭 대관을 하지 않고서도 돌아다닐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장소가 한 두 군데라도 정해졌을 때 요청드리고 싶은 마음에 자꾸 미게 되는데, 그러려면  먼저 확실해져야 하는 우도 있어서 아주 갈팡질팡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리마켓에 참여 신청을 할 때 입고 도서 리스트를 사전에 신청서에 작성해야 한다면 입고 도서가 먼저 정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마다 완벽한 시작은 없으니 일단 시도해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그 말은 이미 출발선을 지나온 연륜을 가진 사람들이니 할 수 있는 대사인 것만 같고.. 출발선에 이제 막 들어온 나로서는 모든 게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책과 관련된 이야기 : 콘텐츠

책을 단순히 ‘판매’하기만 하는 책방의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다마스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공간에 사람들을 모아 이런저런 일을 하는 일은 항상 재밌었다. 학창 시절엔 학급에서, 대학교 땐 동아리에서, 문화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과정은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그걸 뭐라 지칭하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콘텐츠’라고 많이들 부르는 것 같다. 북다마스는 그 자체로 안락한 ‘공간’이 되어주지는 못할지라도 ‘책’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한다.(뭔가 거창하다.)  

 간단하게는 책 소개와 리뷰, 작가 인터뷰, 독자 이벤트 등을 고려 중이고, 나아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예정이다. 아직 초기 기획 단계이지만, 매년 존폐위기에 놓이면서도 꽤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책모임 ‘성인챇방’의 일원들과 책에 관한 대화록을 만들 수도, 북다마스 유튜브 팀의 재치 넘치는 영상을 보여드릴 수도 있다. 라이브나 커뮤니티 등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은 이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고 있으니, 그 지점도 잘 활용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책, 물음표
 책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왜 사람들이 언뜻 보기에 무용한 책을 만들고 읽는 것일까?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북토크 등 책에 대해 곱씹는 자리들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일까?

'노들서가' 한편에 자리한 시민들의 2쪽 책 / UE11 풍경
이장욱 작가님 북토크 / 작은도서관 콘퍼런스


 이에 대한 작은 답이라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공부해봤지만, 아직도 확실한 답은 모르겠다. 다만, 책은 그 크기와 질량과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의 다양한 세상을 담아낼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스스로를 탐구하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는 것, 그런 사람들에게 책이라는 물건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정도만 어렴풋하게 들뿐이다.  


무용(無用)을 넘어

 한동안 '책의 무용함'이라는 단어가 나를 괴롭혔다. 어떤 사물을 계속해서 뚫어져라 쳐다보면 오히려 초점을 잃게 되고, 어떤 단어에 골몰면 그 단어가 아주 낯설게 느껴지듯, 혹시 책을 권하는 일이 내가 여태 생각해온 것보다 쓸데없는 짓인 건 아닐까 회의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따지면 유용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지 배고프기 때문에만 음식을 먹는 게 아니고, 매년 새로운 계획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일차적인' 유용성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어서 행복하다가도 불행하고, 즐겁다가도 번뇌한다. 그렇다면 사실 유용함이니 무용함이니 하는 정의는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런 정의는 누군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각자 고유한 방법으로 세워나가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조금 부담을 덜어 내며 차라리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책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때로는 바쁜 일상 틈새에 자리한 꿀 같은 휴식으로, 낯선 세상을 접하며 사유함을 잃지 않으려는 행위로, 자신을 돌아보며 산란한 마음을 정리하는 사색으로 발현된다. 북다마스는 그런 사람들 틈에서 책이 더 잘 소화되기를 돕는 재기 발랄한 조력자가 되길 꿈꾸고 있다.



(다음 글 예고)

어디서든 책을 살 수 있는 자동차가 있다?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 사업자등록, 마켓, 대관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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