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Jan 19. 2016

문학동네 소설상 이유 작가 "내게 소설은 인공호흡기"

       



사람을 만날 때면 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체로 첫 느낌에서 오는 직감을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를 넘기며 처음으로 마주했던 소설가 이유의 인상은 뭐랄까, 수줍어 하는 얼굴에서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열 마디 건네면 한두 마디 정도의 대답을 겨우 들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불길했다. 사실 이런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책도 더욱 꼼꼼하게 읽어야 하고, 질문은 많이 만들수록 좋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그녀는 이런저런 예상과 편견을 가볍게 뒤엎을 만한 사람이었다.

최근 소설가 이유는 한국 문단에 작은 소란을 일으키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지난 3년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어깨에 조금 힘이 들어가 있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좀 잘했지’라며 으스댄다 해도 맞장구를 쳐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것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당연히 안 됐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뽑혔다는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울었어요. 반찬거리를 사러 가던 길이었는데 제가 어찌나 울었던지 출판사 편집자 분도 같이 우시더라고요.(웃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소각의 여왕>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부녀의 이야기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고물상을 운영하며 아버지는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일에 빠져들고, 딸은 아버지의 고물상 일을 도우며 유품 정리사 일을 시작한다. 딸은 다양한 사연을 품고 죽어간 이들의 마지막 공간을 깨끗하게 치우고 유품을 정리해 소각한다. 쓸모없을 것 같은 쓰레기마저도 이들에게는 새로운 자원이고, 희망이고, 꿈이다. 고물상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버티는 이들에게 안쓰러운 눈빛이나 걱정스런 마음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경솔하게 느껴진다. 이들의 삶은 비참하지만 숭고하고, 슬프면서도 매순간 뜨겁다.





"가슴으로 미워한 아버지... 소설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화해"


소설의 주 무대가 되는 배경은 고물상. 이유 작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강남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Q 고물상과 강남이라, 언뜻 봐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지는데요. 


어릴 적에 저희 집이 논현동 영동시장이 있는 쪽에서 구멍가게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커서 가보니까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겉은 화려하게 변했는데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어린 시절의 골목도 그대로 있고 구멍가게를 했던 그 자리에는 여전히 작은 슈퍼가 있을 정도로요. 이곳이야말로 아주 오래된 서울인 거죠. 진짜 잘사는 사람들은 압구정이나 신사동으로 빠지고 여기는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화려하게 변한 것 같지만 실은 달라지지 않고 조금씩 무너져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함께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딸은 살갑게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사이도 아닌 관계에 놓여 있다. 이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지만 큰 싸움이나 불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녀가 소설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바로 아버지와 딸의 관계다.


Q 딸 해미가 아버지를 ‘지창씨’라고 부르잖아요. 그래서인지 이들 사이가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해미가 아버지를 이름으로 부르게 한 것은 거리감을 주고 싶어서였어요.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저는 이런 관계가 좋더라고요. 서로를 100%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견제하면서 내버려두기도 하고 힘이 되는 그런 관계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감적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부녀지간은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조금 더 깊은 질문들을 이어가 보기로 했다. 


Q 언제쯤 아버지를 부모님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 혹은 한 남자로 느꼈나요. 


어린 시절 내내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프셨는데 아버지는 보호자 역할을 거의 안 하셨거든요. ‘한 인간으로 힘들겠구나’ 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물론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아버지를 미워했어요. 애증의 감정이 컸죠. 

Q 그럼 이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게 된 건가요. 

용서랄 건 없고요. 그냥 이 소설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화해를 하게 됐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 객관화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요. 제 기억도 실은 편집된 거여서 제 식대로 왜곡한 게 많았더라고요. 


과거의 아픈 상처를 다시 꺼내어 눈앞에 직면해야 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들은 꽤나 덤덤한 듯한 느낌이었다. 


Q 철이 일찍 들었나봐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부모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순간, 철이 드는 때라고 하던데요. 저는 2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느꼈거든요.


부모 중에 누가 아프면 철이 안 들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남들이 철들 때 같이 들어야 하는데 미리 들었다는 건 영원히 안 들었다고 볼 수 있겠죠. 제게는 사춘기랄까, 성장통 자체가 없었어요. 어리광을 부리거나 떼를 쓸 여유가 없었죠. 


Q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일탈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부와 멀어진다든지, 친구들과 어울려 밖으로 도는 식으로요. 그런데 스스로를 굉장히 잘 추슬렀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설의 힘이었죠. 제게는 소설이 인공호흡기 같은 역할이었어요. 


스스로를 잘 추스르기 위해서는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다. <소각의 여왕>은 감정으로부터 멀어져 절제된 듯한 시선이 강점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공중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긴장감을 지녀야 한다. 많은 작가들이 공을 들이면서도 성취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Q 인물로부터 거리 두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소설 속 인물로부터 동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이 소설은 3인칭으로 썼는데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만약 1인칭으로 썼다면 아버지를 미워하는 감정을 더 썼을 거예요. 





"수영장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푹 빠지게 되는 소설 쓰고 싶어"


이유 작가는 주인공 해미의 이야기를 쓰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상처가 있어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했다. 사실 독자 입장에서도 그랬다. 필자도 과거의 일을 무시하지 못하고 자꾸만 곱씹어보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해미 같은 인물을 만나면 부러운 감정부터 앞선다. 이유 작가는 ‘상처는 자기 자신밖에 줄 수 없다’는 말을 꺼내며 필자를 다독였다. 무라카미 류의 책에서 읽은 문장이라고 했다. 그녀 역시 늘 가슴속에 상처를 두고 가는 편이어서 한동안 새겨두었던 말이란다. 상처는 남으로부터 받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 소각의 여왕>에 수록된 심사평을 면밀히 살펴보니 심사위원의 목소리가 저마다 달랐다. 한 작품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꽤 좋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이 소설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한 느낌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소설의 플롯이 단순하다 보니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사건 위주로 흘러가는 탓인지 인물들의 생동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이 무채색으로 흘러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지옥’, 천국’, ‘비극’ 등의 관념어로 인해 작가가 인물들의 세계를 단정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주요 무대가 되는 고물상이 조금 더 선명하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Q 에피소드의 배치가 뛰어나다는 평이 있던데요. 개인적으로는 파편처럼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맞아요.(웃음) 


Q 아니 이렇게 곧바로 인정을 하시면 어떡해요.(웃음) 좀 더 해명을 해주신다면?  


굳이 해명을 하자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파편화되어 있어서라고 할까요. 일상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소설 속에서 의도적으로 끼워 맞추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럼 거기에는 분명히 강압적으로 의도된 듯한 느낌이 있거든요. 저는 에피소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해미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예요. 그 사이에는 분명 틈이 있을 것이고 연결이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저는 드라마보다 시트콤이 더 좋아요. 이야기들이 파편화돼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이어져 있잖아요. 


Q 정말 그러네요. 완전 설득됐어요. 


그래요? 뿌듯하네요.(웃음) 


소설가 이유는 꽤 솔직한 사람이었다. 상대가 내민 날카로운 창에 솔직함이라는 방패를 우직하게 들이밀었다. 멋 내지 않은 솔직함에는 무장해제 되기가 쉽다. 그녀는 종종 소녀 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차분하게 늘어놓는가 하면 필자가 던지는 시시한 농담에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Q 어떤 작가는 장편을 쓰고 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하던데요. 어떠셨어요?  


그렇죠. 저 역시 이 소설을 쓰면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그런데 환각일 수도 있어요. 잠깐의 마취효과 같은 거죠.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아요. 


Q 그래도 정신적인 성숙함 같은 건 생기지 않을까요? 


정말 그럴까요?(웃음) 인간은 결국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변하지 않으니까 쓰는 것이고요. 저는 이 소설을 끝내고 부족한 게 느껴지면서 앞으로 더 해야 할 게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어요. 또 다시 몰입할 무언가가 생긴 거니까요. 만약 소설을 쓰고 나서 정말 성숙해진다면, 작가로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세요? 


수영장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푹 빠지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쉽게 접근하지만 깊이가 있어서 사로잡히는 소설을요. 어깨가 무겁지만 크게 겁이 나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계속 해왔던 일이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돌아가는 길, 우리는 함께 역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코트 주머니 속에 양 팔을 깊숙이 찔러넣었고 필자는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조심스레 팔짱을 꼈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걷는 내내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들뜨기도 했고 흥분이 되기도 했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은 아닌지, 괜스레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던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대체 인터뷰 내내 왜 그렇게 상기되어 있었던 걸까. 스스로에게 몇 번을 되물었지만 잘 설명되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사람으로서 그녀가 참 좋았다는 것이다.




취재: 윤효정(북DB 기자)  ㅣ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감성 이야기꾼' 황경신이 책과 음악에 보내는 러브레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