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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20. 2016

'대만 문화장관' 룽잉타이가 아들과 주고받은 공개편지



부모가 자신이 낳아 키운 아이를 자신과 분리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온갖 애정으로 키워낸 아이가 훌쩍 자라서 이제 내 맘 같지 않은 순간이 왔을 때, 결국 아이는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식 또한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다른 세상과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부모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은 긴밀하게 연결되었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아이는 부모보다 그들 시대를 더 닮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시간차로 인해서 부모와 자식은 결코 만날 수 없는 선을 그으면서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많은 경우 소통을 포기하기 마련이지만 <사랑하는 안드레아>의 어머니 룽잉타이와 아들 안드레아는 정반대의 시도를 감행한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룽잉타이는 중화권 사회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며, 대만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녀가 작가로서 문화부 장관으로서 사회적인 일을 하는 동안 그의 아들 안드레아는 훌쩍 커버렸다. 그녀는 안드레아가 열여덟 살이 됐을 때 이미 품 안의 자식이 아닌 ‘열여덟 사람-아들’이 됐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나는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열여덟 살의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열여덟 살 사람을 알려면, 처음부터 배워야 하고 자신을 온전히 비워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편지 형식의 공개 칼럼을 제안한다. 엄마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인 안드레아는 이 책의 또 다른 저자로서 훌륭하게 룽잉타이에게 응대한다. 3년간 한 잡지의 칼럼에서 이어진 두 사람의 편지는 국가와 세대를 넘어 여러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만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지만, 대만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룽잉타이의 특별한 행보로 인해 아들 안드레아는 대만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독일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독특한 조건을 갖춘 두 사람의 편지는 일상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문화 전반을 아우르면서 서로의 관점 차이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룽잉타이가 주도적으로 던지는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안드레아의 성실한 답변은 서로의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풍부한 대화의 장을 만들어 독자들이 ‘두 세대의 대화’를 경험하게 한다. 또한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긍정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아들 간의 깊은 사랑과 믿음도 전해준다.



"젊은 시절 동료를 대하듯 자식과 놀고 이야기하고 토론해라"


Q 사적인 편지로 소통할 수 있었을 텐데, 처음부터 공개편지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먼저 월 주기의 칼럼은 시간적인 압박이 있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규율을 가지고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에 압박이 없다면 한 사람은 바쁘고 또 한 사람은 게을러서 틀림없이 미뤄졌을 거예요. 그러면 십중팔구 편지가 계속 이어질 수도 없었을 테고요. 그리고 다른 이유는 저는 제 나이의 수많은 부모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를테면,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와 소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안드레아와의 편지를 처음부터 공개한 것은 칼럼 공간을 통해서 독자들과 이런 고민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Q 공개 서신을 통해서 선생님이 바란 것은 무엇인가요? 


편지가 공개되면 한 글자 한 글자를 심사숙고할 테고, 한 주제 한 주제를 신중하게 고민할 테고, 작고 사소한 것까지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모자간의 대화가 주방 냉장고에 붙여 놓은 메모지와 같다면 그것은 문학이라기보다는 메모에 불과할 거예요. 제가 우리 두 사람의 편지를 칼럼에 게재하자고 제안한 것은 우리의 소통이 진지해지기를, 공을 들이기를, 깊이 사유하기를, 나아가 진실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안드레아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아가 일단 동의하자 이 일은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 되었어요.


Q “아이는 그들의 부모보다 그들 시대를 더 닮는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가장 가깝게 연결돼 있지만, 결국 다른 시대와 삶을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안드레아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느끼셨던 간극이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두 사람은 시대에 대한 인식이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편지를 쓰기 시작한 근본적인 동기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간극은 전혀 없었습니다. 편지에서 우리 두 사람이 많은 의제에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경험에서는 더더욱 세대 차가 나고요. 관점이 다르기에 우리는 어떻게 다른지 토론했고,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 시도했고, 개별적 경험을 세세하게 말해줌으로써 서로를 이해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서로 경청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전체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Q 자식이 살아나갈 삶의 토대나 여건을 마련하는 데 부모의 경제적인 여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이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선생님께서 꼽을 만한 부모의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이 책 전체가 바로 부모와 자식 간의 쌍방향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자질을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네요. 그렇지만 꼭 간단하게라도 말해야 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눈을 아이의 눈과 평등한 높이에 맞추고 열여덟 살 아이를 어린아이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요. 그리고 자신이 젊었을 때의 동료를 대하듯 그와 놀고, 그와 이야기하고, 그와 토론하고, 그와 같이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그가 듣는 노래를 들어보라고요. 이는 부모로서 괜찮은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Q 이 책은 선생님과 안드레아 공동의 결과물이었지만, 세대, 지역, 국가, 문화, 계급, 역사 등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시각이 잘 드러났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로서 발화한 것이었지만 지식인으로서 선생님의 여러 사상과 태도도 잘 보여줬다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열여덟 살 안드레아입니다. 저라는 ‘지식인’에 대한 안드레아의 조소와 비판이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고 의미 있는 부분이죠!


"젊은이를 존중할수록 그는 개성과 생각을 가진 성인이 된다"


Q 이 공개편지로 안드레아도 성숙했겠지만, 오히려 선생님의 생각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편지들이 책으로 엮이고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게 됐고, 이렇게 또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성인이라고 반드시 올바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젊은이라고 반드시 얄팍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또 젊은이를 존중하고 경청해야 할 성인으로 대할수록 그 젊은이가 개성과 생각을 가진 성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이 편지를 주고받은 이후 선생님과 안드레아,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는 매우 친해졌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요. 하지만 역시 각자 독립적이죠. 안드레아의 생각과 관점을 듣고 저와 다른 세대의 목소리를 깨닫게 됐습니다.


Q 안드레아는 지금 서른 살의 성인이 됐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지금의 안드레아는 어떤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선생님께서 조언한 수많은 말을 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게 가능할까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전부 안드레아 스스로 내립니다. 저의 조언은 그저 조언일 뿐이죠. 물론 안드레아가 힘들 때 스스로 찾아와서 제 생각을 묻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시 안드레아 자신의 가치 좌표 안에서 재단되고 판단됩니다. 안드레아는 성인입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죠. 예를 들면, 안드레아는 직업을 선택할 때 저와 상의할 수 있지만 여자 친구 문제에서는 오롯이 자기의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Q 마지막으로 특히 이 책을 읽은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사랑은 좋아하는 것과 다릅니다. 현대를 사는 부모로서 가장 큰 도전은 어떻게 사랑하면서 동시에 다 큰 자녀들과 서로 ‘좋아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느냐인 것 같습니다. 이는 참 쉽지 않습니다. 아시아 문화 속에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아이를 ‘어린아이’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를 ‘어른으로’ 보는 연습을 해보십시오. 자신과 평등한 ‘어른’으로 보세요.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관계가 예전과 달라질 것입니다. 한번 시도해보십시오.



취재: 신양희(북DB 객원기자)

번역 : 강영희

사진 : 양철북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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