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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21. 2016

'아재개그' 심리학자 김정운, 그가 파마를 하는 까닭



평균수명 100세 시대. ‘인간 수명 연장’은 인류가 추구해온 달콤한 꿈이기도 하지만, 은퇴 이후를 생각하면 달콤하지만은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실존의 문제로, 또 사회문제로 확장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상식과 가치는 깨지기 시작했고, 좋은 직장도 행복의 조건도 전과 같을 수만은 없게 됐다.

불안한 개인들의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이냐는 질문에,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의 작가 김정운은 ‘공부’를 우선으로 꼽았다. 평생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공부가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삶의 불안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외로움’을 담보로 해야만 가능하다. ‘공부’와 ‘외로움’이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니, 작가의 노후대책이 공부인 이유가 궁금하다.

예상대로 유쾌하고 즐거운 인터뷰였다. 누군가는 작가의 유머코드를 ‘올드한 아저씨유머’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을 ‘실력 없이 가볍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 가벼움과 유쾌함이 김정운의 매력이다. 책이 쉽게 읽히는 건 작가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노력’을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킥킥거리며 책을 읽다보면, 쓸데없이 바쁜 척 살아왔던 삶의 리듬을 깨고 오롯이 나와 대화하는 시간, 고독해질 수 있는 공간이 그리워진다.

Q 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엮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책으로 나오게 됐나요? ‘책을 끌어안고 잘 만큼’ 이 책이 스스로 마음에 든 이유도 궁금하고요.

처음 칼럼 쓸 때 심리학적, 철학적 이론과 내 일상을 연결시키는 게 목적이었어요. 심리학 이론을 쉽게 설명해주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고, 또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소한 경험에서 시작해서 인문학적 사유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쓴 거죠. 칼럼에 제가 그린 그림도 넣었는데, 끝나고 나니까 아쉽더라고요. 책을 정리하면서 일본생활을 마무리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특히 책에 제 그림이 들어가서 애정이 갔어요. 문장만 쓸 때는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데, 그림과 사진이 있으니까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Q 그림마다 낙관에 ‘오리가슴’이라고 찍혀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

모르겠어요? 알잖아요!(웃음) 오르가즘이에요. 지적인 오르가즘이죠. 공부하는 즐거움이 성적인 오르가즘보다 더 즐거운 거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릴 때 느끼는 지적인 오르가즘은 즐거움이 오래가요. 인간이 경험하는 최고의 기쁨을 오르가즘이라고 한다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지적, 예술적 오르가즘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썼죠.

Q 글과 그림에 외로움과 그리움에 대한 단상이 많이 나와요, 예술적 영감, 혹은 창작의 원천이 거기에서 비롯되나요?

외로운 게 전제조건이에요. 모든 창조적인 작업은 전적으로 나 혼자 해야 되는 작업이에요. 지적, 창조적 작업들은 외롭지 않고 될 수가 없어요. 정말 행복한 일은 내면의 것을 외화하고 생산해내는 경험인데, 그런 작업은 혼자 있는 시간에 가능해요.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열심히는 사는데 창조적이지도 않고 생활 만족도도 낮거든요. 외로운 시간이 없기 때문이에요. 열심히 일만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놨고, 이제는 창조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데 외로운 시간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외로워져야 한다는 말은 삶의 맥락을 바꾸라는 것"

Q 주변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사실 고독할 틈도 없는 것 같아요. 

가장 재미있는 건 내 안에 있는 걸 쏟아놓는 거예요. 그게 창조적 작업이고 노동이에요. 원래 노동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즐거움이었죠. 그런데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된 노동,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되면서부터 노동의 기쁨이 사라져버린 거죠.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매스미디어의 허접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거예요. 내 즐거움이 없으니까 식당에서 먹은 요리 사진이나 남이 쓴 글만 올려놓는 거고…. 조금 더 고독할 필요가 있어요.

Q 여러 심리학 용어들이 나오는데요, ’삶의 게슈탈트’라는 개념이 기억에 남아요. 어떤 뜻인지 궁금하고요, 작가님의 경우 ’건강한 맥락적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요. 

게슈탈트라는 건 총체적인 걸 얘기해요. 대상은 늘 배경과 관련해서 존재해요. ‘나’라는 개인은 내 삶의 맥락과 구분해서 설명하면 안 돼요. ‘나’는 관계라는 맥락, 또 공간적인 맥락 속에서 규정돼요. 때문에 맥락 속에서 나를 성찰해야 내가 보여요.

제가 일본에 간 것도 나를 현재 맥락으로부터 옮겨가는 경험을 한 거예요. 외로워야 한단 얘기도 현재 맥락으로부터 떠나라는 얘기에요. 맥락을 바꾸는 행위가 성찰적 행위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가장 중요한 맥락 바꾸기의 기술이 ‘외로움’이고요. 하다못해 ‘파마’를 하는 것도 맥락 바꾸는 거예요. 내 인생을 둘로 나누면 파마 전과 후로 나뉘어요. 파마한 후부터 옷 입는 게 달라지고, 관심사도 달라져요. 그러니까 생각도 바뀌죠. 외로워져야 한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삶의 맥락을 바꾸라는 거예요. 일주일에 반나절만이라도 맥락을 바꿔보면, 현재 삶이 보다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50대가 된 작가님이 생각하는 성공한 삶은 어떤 삶인가요?

사람들은 돈 많이 벌고 지위가 높으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일부고요. 성공한 삶의 조건은 ‘재미있느냐’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즐겁고 내일을 생각하면 설레고, 그게 성공한 삶이에요. 그리고 설레는 삶의 조건은 공부하는 삶이죠. 자기 좋아하는 걸 찾아내서 그걸 죽을 때까지 공부하다보면 매일 즐겁고 가슴이 설레는 거예요. 제가 지금 바우하우스를 연구하고 있는데, 그 생각하면 설레요. 관심사는 각자 다르겠지만, 음악이 됐든 자동차 튜닝이 됐든 삶의 주제를 잡아서 그걸 공부하는 게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에요.

Q 책에 공간과 관련한 얘기가 많이 나와요. 작가님께 공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요.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돈과 상관없이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냈는지가 중요한 거죠. 성찰을 자기반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잘못된 것 같아요. 자기반성이라고 하면 뭐 내가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지잖아요. 성찰은 자기반성이 아니라 나와 대화하는 거예요. 자기와 대화하는 심리학적 구조와 타인과 소통하는 구조가 같아요. 그래서 나와 대화할 수 있어야 타인과도 소통할 수 있어요. 한국사회가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성찰적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요.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조건은 성찰적 경험이 가능한 공간과 시간이 있느냐 하는 거죠. 

이런 얘기를 하면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돈 있다고 성찰이 저절로 되는 건 아니거든요. 돈도 중요하지만, 죽을 때까지 돈 얘기만 하다가 죽을 순 없는 것 아니에요? 물론 정말로 먹고살기 힘든 경우가 있죠. 절대빈곤의 경우에는 먹고사는 게 절실한 문제예요. 그렇지만 먹고살기도 힘든데 성찰할 여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기 전에, 내가 정말 절대빈곤의 상태인지 먼저 물어야죠. 개선의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 삶을 쉽게 정당화하면 안 되죠. 내가 가진 조건에서도 다른 가치들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Q 공간의 문제뿐 아니라 삶의 불만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럴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바뀌려는 노력보다는 내 생각과 삶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핑계들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불만만 갖는다고 바뀌지 않아요. 내 삶에서 불만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노력이 필요해요. 죽을 때까지 내가 가진 불만이 사회구조 문제라고 얘기하면 내 삶이 바뀌나요? 물론 사회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죠. 정치문제에 관심을 갖고, 투표하고, 이런 것들은 시민의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이죠. 그런데 이것만 한다고 내 삶이 행복해지지 않아요. 내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자기 삶의 문제를 사회구조 문제로 환원시키는 건 정의롭게 여겨지는 반면에, 자기 문제를 실존문제로 받아들이는데 집단적 저항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거나, 또 개인의 문제를 사회로 환원하는 건 문제가 많아요. 개인과 사회의 문제는 서로 연관돼 있지만, 100% 환원시킬 수는 없어요. 구조문제를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의무이고 권리지만, 자기 삶의 문제도 고민해야 돼요. 어느 쪽으로든 환원하면 편해지죠. 그런데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적을 만들어서 욕한다고 내가 행복해지냐 이거죠. 개인들이 던지는 문제들에 구조적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구조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들을 어떻게 마주 대할 것이냐는 거죠.



"한국에선 나이 들면 고약한 노인네 돼... 성찰하지 않기 때문"

Q 위에서도 성찰이 가능해야 소통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소통의 부재는 한국사회의 큰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성찰과 소통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들려주세요.

내 자신과 소통할 수 있어야 타인과 소통할 수 있어요. 그게 외로움의 역설인데요, 자신과 소통하면 내 문제가 보이고, 그럼 타인한테 관대해지죠. 내 문제가 큰데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겠어요? 한국사회에서는 나이 들면 성질 고약한 노인네가 된다고요. 특히 나 같은 사람들이 그래요. 자기가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못마땅한 것만 보니까 고약한 노인이 될 확률이 높아요. 성찰하지 않기 때문에 관대하지 못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정서적 공감대가 없는 사회는 문제가 커요. 이건 보수-진보의 대립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의 문제에요.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서 정서공유가 이뤄지죠. 반면 아저씨들은 종편에서 다루는 정치 프로그램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단 말이에요. SNS에서는 ‘꼰대’들에 대한 비웃음,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정치적 분노가 정서적 공감대 내용이 되는 거예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에요. 정서적 공감대가 이뤄질 수 있는 새로운 가치들을 찾아야 해요. 그런 문화적 가치는 개인들이 자기만의 콘텐츠를 공부하면서 비슷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기거든요. 문화적 가치가 다양하게 존재해야 소통도 가능해지죠.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하려면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해야 돼요.

Q 최근 작가님처럼 평생 할 공부를 찾고, 거기에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요?

직장의 개념이 아니라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평생 몰두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내가 사장이야’, ‘교수야’ 하면서 사회적 지위로 자신을 확인하는 것처럼 우스운 게 없는 거예요. 지금 나는 작가잖아요. 교수는 65세면 그만둬야 하는데, 나는 죽을 때까지 작가 할 수 있잖아. 교수보다 백배 좋은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잘나가는 교수 때려치운 게 용기 있다는 식으로 자꾸 인터뷰하는데, (그런 평가) 진짜 싫어해요. 교수가 좋은 직장이 아니에요.

평균 수명이 짧을 때는 정년이 긴 직장이 좋은 직장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100살까지 살아요. 65세에 퇴직하고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가 어려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교수는 빨리 때려치울수록 좋겠더라고요. 내가 겁이 많아서 그만둔 거지, 용기가 있어서 그만둔 게 아니에요. 평균수명 100세가 됐다는 건 엄청난 혁명인데, 이 혁명에 어떻게 적응할 거냐는 문제의식을 던져본 거예요. 내 인생으로 실험해보는 거고요.

Q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세요. 처음 일본에 갈 때 성인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볼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바우하우스를 공부하는 게 지금 목표예요. 애플의 디자인은 예쁜데, 왜 삼성의 디자인은 예쁘지 않은지를 물으면서 시작됐어요. 그게 독일의 바우하우스라는 곳으로 귀결이 되더라고요. 사람들은 바우하우스를 디자인, 건축물로만 보는데, 바우하우스는 동서양이 만나는 충돌의 결과예요. 이때까지 그 얘기를 한 사람이 없어요. 이 엄청난 얘기를 왜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나 봤더니, 바우하우스 자료는 서양인들이 써서 그런 거예요. 나는 동양 사람이니까 바우하우스가 동서양의 충돌에서 비롯됐다는 걸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공부하는 재미가 있는 거예요. 지금 모으고 있는 것도 바우하우스 자료들이에요. 자료 앞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데요. 그런데 서울에 있으면 쓸데없는 일로 바빠요. 얼른 여수로 내려가야지.(그는 전남 여수에 작업실을 만들 계획이다 - 기자 주) 만화도 준비하고 있어요. 웹툰으로 에로틱한 얘기들을 하고 싶어요. 그게 재미있고 제일 잘하는 거 같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행복한 사람이죠. 하고 싶은 것, 관심사가 구체적으로 있어야 80, 90까지 공부하면서 재밌게 사는 거예요. 놀면서 삶의 의미도 생기고 나만의 콘텐츠도 확실해지고, 그럼 불안하지 않다니까요. (다른 분들도) 그 관심을 빨리 찾았으면 하는 거죠.



취재: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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