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작가 인터뷰
허지웅은 어떤 사람일까.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몇 가지 뿐이었다. 청소, 까칠함, 방송… 어쩌면 내가 아는 그 모습이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돌이켜보니, 명백한 편견이다.
그가 신작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적>(문학동네)을 출간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와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이후 2년 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고민하다가 문득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관찰한 '친애하는 적'들에 대한 기록을 풀어놓는다.
인터뷰를 위해 출간 전 미리 받아본 원고는 제법 두툼했다. 시간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의 글과 말이 나를 붙잡아 두었다. 그를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해왔던 것이 조금 부끄러웠던 순간도 그때였던 것 같다. 글쟁이 허지웅은 제법 괜찮은 사람이다. '괜찮다'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의미한지 알면서도 그의 이름 앞에 기어코 넣고자 하는 것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그 이유가 되어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를, 스스로가 유일하게 '가장 잘하는 일'이라 인정한다는 글로써 판단해야 한다.
11월 23일, 서울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작가 허지웅을 만났다. 책을 읽으며 틈틈이 메모해두었던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가 환한 웃음을 보여준 첫 순간은 역시나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때였다. "제일 듣기 좋은 말이네요. 쉽게 읽힌다는 말이…"
#책
Q <버티는 삶에 관하여>(2014) 이후 2년여 만이네요. 전작에서는 '버티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거리두기'에 대한 화두를 꺼냈어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관계'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늘어난 것 같아요. 연인 사이의 문제든, 가족 사이의 문제든 전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면 이번에는 소위 '관조적인' 태도로 거리두기를 하고 쓴 느낌이죠. 의도하려고 그런 건 아닌데 말씀 들어보니까 그런 것 같네요.
Q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법에 대해서 상대를 '친애하는 적'으로 대하라고 하셨는데요. 나름의 해답을 찾으신 거겠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라기보다는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늘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다가 일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도 엮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너무 쉽게 친구들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흔히 말하는 뒤통수를 맞는 경험들을 몇 번 해가지고… 그런 일들이 좀 쌓이다 보니 고민을 하게 된 거죠. 막무가내로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버리면 너무 막무가내로 열어버리니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든 거죠. ‘친애하는 적’이라는 말로.
제가 문자로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기억을 잘 못하는 타입이에요. 거리두기에 대해서 정리를 하다 보니 나온 게 '친애하는 적'이라는 말이었어요. 이건 제가 되게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데, 그 말이 제가 생각했던 거리두기의 느낌과 닮아 있더라고요. 완벽하게 해결한 건 아니지만 누구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현명한 태도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청소
Q 새롭게 안 사실인데요. 책을 읽고 보니 청소의 행위는 작가님에게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의식에 가까운 것 같더라고요. "언제든지 눈앞의 이것을 본래의 상태로 복구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안정감을 찾는 것 같다"(53p)라는 부분에서 그랬어요. 해당 글의 마지막에는 "청소는 이제 좀 지겹다"라고도 썼는데,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뭐… '어질러 줄 수 있는 사람도 이제는 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건데… 약간 귀여워 보이려고 한 얘기예요.(웃음) 책에도 썼지만 제가 이해한 바에 따라서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한국인들은 집을 한 채 가지려고 갖은 고생을 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을 들이는데, 왜 막상 그 공간을 이해하는 것에는 왜 그렇게 예민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있어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청소나 정리를 계속하는 것 같아요.
Q 또 하나 놀란 것은 "타인의 청결함을 두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는다(52p)"라는 점. 편견이겠지만 그 반대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남들이 어떻게 살든 아무 관심이 없어요. 제가 깨끗하게 사는 것에 대해 "너는 병자다" 뭐 이런 평가를 받는데 ‘이렇게 사는 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그런 의문이 좀 들기는 하죠.
Q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게 되잖아요. 좋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나요?
좋은 사람… 여러 요소들이 있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나, 쉽게들 이야기하는 남에게 베푸는 사람도 기준이 될 수도 있고. (기준이) 많은데 제가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객관화'예요. 자신이나 자기 주변 사람들, 상황에 대해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 빠지더라도 객관화가 되는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더라고요. 그건 정말 훌륭한 덕목인 것 같아요.
#엄마
Q 책을 읽으니 엄마에 대한 마음이 굉장히 애틋하다는 걸 느꼈어요. '엄마, 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 편(134p)에서는 말도 없이 집회 현장에 찾아온 엄마에게 화를 냈던 일화가 나오잖아요. 얼마 전 집회 현장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었는데, 그날은 화 안 내셨어요?
화를 냈습니다… 아니, 세종문화회관 계단이라고만 하면 누가 아냐고요. 100만 명이 군집해 있지, 옆에서는 이승환이 노래 부르고 있지. 거기서 10분~15분을 찾다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는데, 그걸 본 많은 분들이 증언을 하더라고요.(웃음) (기자 : 그날도 갑작스럽게 올라오셨던 거예요?) 네. 그전에는 계속 집회에 참석했다가 그날은 철야 작업할 게 있어서 일하려고 각 잡고 있었는데 문자가 오더라고요, 광화문이라고. 그래서 갔죠.
Q 아버지와의 일화(121p)나 엄마 이야기에서도 느꼈지만 아픈 기억을 이야기할 때면 글이 더욱 덤덤하게 느껴져요. 감정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연습이 잘 된 사람처럼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개인적인 감정으로 쓰면 되게 추한 것 같아요. 그런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고요. 그런 글을 써야 할 때는 그 경험을 통해서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있으니까 쓰는 건데, 그러려면 덤덤하게 써야죠. 감정 없이, 남의 일처럼. 저는 제 일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약간 병적으로. 노력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제 자신에 대해 무책임한 것 같아요.
#영화
Q 애정 하는 작품, 배우들에 대한 글이 많이 나와요. 특히 배우 '팀 커리'(139p)에 대한 부분에서는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는데요. 영화평론가로서,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개인으로서 좋은 배우와 좋은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다른가요?
배우는 개인이니까 그 사람에 대한 ‘덕질’의 차원에서 많이 접근하는 편이에요. 팀 커리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요. 영화 속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는지가 사실은 제일 중요한 거니까요. 저는 감정적이고 격한 것을 잘하는 사람보다 밥 먹고 담배 피우고 그런 생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대단해 보여요. 그런 걸 무의식처럼 잘하는 배우들이 있거든요. 대다수의 중견 배우를 포함해서 송강호, 이병헌 같은 배우들이 너무 잘해요. 이건 평론가로서의 생각이기도 한데… 그런데 요즘은 영화 평론을 거의 안 해서.(웃음)
#글쓰기
Q 글쟁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도, 대중들에게도 늘 상기시키는 것 같아요. "난 글을 안 쓰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하시고요. 글쓰기라는 행위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글 쓰는 건 제가 잘하는 거예요. 제 밥벌이였고 앞으로도 제 밥벌이일 거고요. 본업을 안 하고 방송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중에 시류에 얹혀서 가는 사람들을 보면 몇몇 분들은 방송 건달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안 돼야겠다' 그런 생각을 초반에 많이 했어요. 그래서 '글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죠. 자기소개를 할 때도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요. 자기 다짐 같은 거죠.
Q 글이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대변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어떤 순간에 글쓰기가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나요?
집에 가면 늘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메모지와 펜이 있거든요. 머릿속의 생각을 문자화해서 육하원칙에 맞는 문장으로 만들어두지 않으면 금세 까먹거나 실생활에 적응을 못 해요. 그냥 '거리감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고 마는 거죠. 그걸 문장으로 만들어서 표현해두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글을 쓰죠. 구체화하기 위해서, 낙서하듯이.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허지웅 "'우리 때는…' 말하는 사람들 입 틀어막아야 한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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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