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가와 히데코 작가 인터뷰
가을을 온몸으로 맞고 울긋불긋해진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11월의 어느 날 오후. 계절의 온화함을 꼭 닮은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을 찾았다. 한적하고 조용한 서울 연희동의 요리교실을 찾는 발길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요리하는 문어. 유난히 파랗고 선명한 하늘과 바다 색깔을 한 대문 덕분에 문어가 그려진 작은 문패가 눈에 확 들어온다.
한 달 수강생 150명, 대기자만 450명이라는 요리교실의 파란색 대문을 살며시 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부지런히 그날의 요리 재료를 옮기며 손님을 반기는 나카가와 히데코 선생의 목소리가 환했다. 30대 후반이던 1994년 한국에 와 한국 생활 23년째인 일본 태생 귀화 한국인. 한국 이름이 중천수자(中川秀子)인 탓에 '히데코 선생님' 대신 '수자 언니'라 불리기도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요리 셰프였다. 요리의 길을 가길 바라셨던 부모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독일, 스페인, 한국에서 기자와 번역가 등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요리의 세계로 돌아온 색다른 이력의 소유자. 지금은 잡지와 일간지에 레시피, 요리 칼럼 등을 연재하며 요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10월 '비밀리에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되던 레시피와 레시피에 담긴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책'인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이봄)을 출간했다.
따뜻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맛깔나는 음식 얘기와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묻지 않아도 요리교실 인기의 비결을 알 수 있었다. 음식은 귀찮은 한 끼 때우기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정성스러운 레시피라는 말에, 한 끼를 나누고 싶은 소중한 얼굴이 떠올랐다. 무얼 만들어 나누어 먹을까 설레는 마음에 저녁시간이 기다려진다.
Q 요리교실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2008년에 베트남 요리를 배웠어요. 같이 요리를 배운 사람들과 모임을 계속 했는데, 제가 파에야 요리를 배웠다고 하니까 알려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집에 모여서 같이 파에야 요리를 한 게 이후에도 계속된 거죠.
제 요리교실은 정식 요리학교와는 다른데, 베트남 요리 선생님 영향을 받았어요. 보통은 선생님이 요리법을 알려주면 요리를 만들어서 맛보고 끝이에요. 제 선생님은 요리를 만들어서 함께 먹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같이 음식 만들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어요. 요리교실 만들 때 어깨에 힘주지 않고 시작한 건 그런 생각 때문이에요. 사람들을 좋아하니까 같이 즐겁게 음식한다고 생각한 거죠.
Q 기자와 번역가 일을 하다가 '요리의 세계로 돌아왔다'고 하셨는데요, 계기가 있나요?
음식에 대한 관심이 굉장했어요. 요리사였던 아버지가 와규를 한 보따리 가져와서 좋은 재료라고 알려주시곤 했는데, 어렸을 때 그런 걸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식재료 보는 법을 익힌 거죠. 또 남편과 제가 술을 좋아해요. 술을 마시려고 안주를 만든 것 같아요. 이를 테면 보리새우철이 되면 속초에 가요. 아이스박스에 화이트 와인이랑 생와사비 넣어가지고. 요리의 세계로 온 건 특별한 계기는 없고... 와인 때문이죠.(웃음)
Q 요리교실을 알려주는 문패에 적힌 문구가 '구르메 레브쿠헨'이에요. 레브쿠헨(진저브레드 쿠키)은 세상에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려준 음식이라고 하셔서 놀랐어요. 요리하는 사람은 왠지 고급재료에, 복잡한 레시피에 반할 것 같았거든요.
어릴 때 독일에서 처음 먹어본 레브쿠헨은 잊을 수가 없어요. 과자 맛을 통해 처음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본 것 같아요. 그때 다양한 음식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요. 많은 사람들이 요리법이 복잡해야 좋은 요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복잡하게 요리하면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같은 식재료라도 나라마다 맛이 다르잖아요. 다른 맛에서 문화적인 차이도 느낄 수 있는데, 그럴 때 요리가 더 매력적이에요.
Q 요리교실을 하다보면, 요리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편견이라기보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얻는 정보를 다 믿는 게 경향이 강하다고 느꼈어요. 뭔가가 몸에 좋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그걸 먹고, 반대로 뭔가가 건강에 안 좋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걸 전혀 안 먹어요. 조미료도 그렇잖아요. 저도 조미료를 안 쓰는데, 그건 건강 때문이 아니라 맛이 똑같아지니까 안 쓰는 거거든요. 음식을 맛있게 하기 위해서 조금 쓸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게 문화잖아요. 요리할 때나 밥 먹을 때 그런 차이를 느끼는데, 음식은 정말 문화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얼마 전에 영국에서 하는 요리 방송을 봤는데, 셰프가 영국 할머니를 찾아다니면서 요리를 배워요. 그러면서 지역의 향토 요리를 소개하고, 그와 관련한 문화를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유명한 셰프가 나와서 레시피 알려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문화를 보여줘서 더 재미있더라고요.
Q 요리는 따로 배운 적이 있으신가요? 책에 '내림음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아버님께 배운 내림음식이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한테 귀로 듣고 입으로 배운 음식은 차슈(일본식 돼지고기 조림)예요.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고기를 칼에 꽂아서 입술 안에 대보는 거예요. 고기가 잘 익었는지 본 건데, 입술에 칼 대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웃음) 고기가 뜨거우면 입술에 물집이 잡히잖아요. 얇은 입술에 대서 미지근했을 때 먹음직한 차슈 색깔이 나오거든요. 지금은 그게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돼서 저도 그렇게 해요. 전 공인 요리학교는 안 갔어요. 그래서 항상 수강생들한테 얘기하는 게, 제대로 배우고 싶으면 요리학교 등록하라고 말씀드려요.
Q 선생님 요리교실은 레시피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그걸 즐거워하시는 것 같고요. 주변에도 요리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요리와 어울림, 관계가 있을까요?
관계가 있다고 봐요. 요리 잘한다고 자랑하려고 사람들을 부르는 게 아니고, 사람들을 부르다보니까 요리를 잘하게 되는 거죠. 좋은 식재료가 생기면 좋은 사람들이랑 나누고 싶거든요. 서로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좋은 음식을 준비하는 건 늘 감동적이죠.
제가 음식은 편지 같은 거라고 했는데, 음식을 차리는 사람은 그걸 만든 이유가 있거든요. 요리는 그걸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거고, 먹는 사람도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요리하는 것도, 먹는 것도 즐거워야 해요. 그렇지 않고 의무적으로 하면 결국 안 하게 돼요.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게 중요하죠.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음식은 편지… 요리하는 사람 마음 담겨"]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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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