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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26. 2016

"모르는 만큼 느낀다...많은 것 누리려 하지 말길"

[나태주 북잼플레이]


우리는 얼마큼 잘살아야 잘산다고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알아야 똑똑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얼마큼 예뻐야 예쁘다고 할 수 있을까?


12월 17일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북파크에서 열린 북잼플레이 2탄 ‘詩詩한 하루’는 이러한 물음들과 진지하게 마주한 자리였다. 이러한 의문에 나태주 시인은 "지금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 하나에도 사랑과 생명을 불어넣어 존재의 의미를 찾아주는 시인이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로 더 이상 많이 가질 필요도 없고, 더 많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으며, 지금 이대로 우리 모두는 충분히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나태주 시인의 북잼플레이는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북파크의 아담한 공간 다윈룸에서 가수 백자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시를 노래하는 가수' 백자. 그는 내년에 탄생 백주년을 맞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와 요즘 촛불집회로 더욱 회자되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나태주 시인의 '꽃2'에 직접 곡을 붙인 노래들을 열창했다. 그의 노래는 뜨거웠다. 무명 가수로서 힘들 때 '담쟁이'라는 시를 만나 잠 못 이루고 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뜨거움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시 '담쟁이' 중에서

시가 노래가 되어 더 큰 울림으로 돌아오는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겨울 주말 오후의 분위기는 더욱 ‘詩詩’해졌고, 나태주 시인을 맞이하는 박수 소리는 힘찼다.


인터파크도서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멀리 충남 공주에서 발걸음 한 나태주 시인은 소탈한 성격과 재미있는 말솜씨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 한 후 공주문화원장을 맡아 부지런히 강의를 다니며 쌓은 내공 덕분이다. 또한 "시는 언제나 젊은 사람들의 몫"이라며 젊은 언어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나이 어린 관객들과도 전혀 이질감 없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날 나태주 시인은 행복한 삶과 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결론은 늘 한 가지에 도달했다. 그건 바로 '우리는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우리는 지금 너무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내 속에 남들로 가득 차 있어 내가 없어져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나태주 시인은 이런 의미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모르는 만큼 느낀다"로 살짝 바꿔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1년 전 시인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떠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궁금증을 가졌다고 한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하염없이 머무는 것일까?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시인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 그림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모르기 때문에 새롭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태주 시인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스스로를 ‘디스’하는 에피소드를 전하며 주장을 뒷받침했다.


"공주문화원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두 분이 있어요. 제가 나이가 많잖아요. 처음 왔을 때 저를 보고 깜짝 놀라는 거예요. 드라마 '학교 2013'에서 젊고 잘생긴 이종석씨가 '풀꽃'을 읊으니까 그 시를 쓴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상상한 거죠. 모르면 많이 느낄 수 있는데, 아니까 완전 실망이잖아요. 모르는 것도 좋은 거예요. 모르는 만큼 느낄 수 있으니 너무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시 '풀꽃2' 전문

그에게 '풀꽃시인'이라는 이름을 안겨준 '풀꽃2'도 이러한 생각이 투영된 시라고 전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아이들에게 풀꽃 그림을 그리라고 시켰는데, 너무 빨리 엉터리로 그리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잔소리한 것이 나중에 시가 되었단다. 


"선생들은 잔소리하는 게 직업이잖아요. 그런 선생이 싫을 텐데 아이들이 다소곳이 들어주는 게 너무 예뻐서 시를 썼어요. 아이들은 원래 안 예쁜 거예요. 말을 잘 들어서 예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전제조건을 붙인 거잖아요. '오래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라고요. 이런 전제조건이 바로 측은지심이고 자비심이고 궁휼이고 사랑이거든요. 자세히만 보면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도 아름답고, 말 안 듣는 천방지축 아이들도 사랑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완벽하니까 이런 마음이 다 없어져 버렸어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못나서 예쁜 거예요."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줄임)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 나태주 시 '꽃2' 중에서

나태주 시인은 관객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인데도 이렇게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영혼의 선물인 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창호지를 뚫고 주먹이 훅 들어오듯이, 그냥 그렇게 갑자기 들어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시가 되려면 이렇게 훅 들어오는 영혼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백 년 전 만주벌판에서 빛났던 그 별이 아직도 빛나기 때문이에요. 시인은 죽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죽어서 살아 있지 못하면 시인이라 할 수 없어요."


나태주 시인은 우리나라 국어 교육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시를 느끼면서 읽어야 하는데 너무 따지면서 읽으니까 어렵고 재미없다는 것. 결국 이런 교육이 시를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도종환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도종환 시인이 쓴 시가 시험 문제에 나왔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 시를 쓴 자신도 다 맞히지 못했다는 거예요. 시는 그 자체로 빛나는 황금 덩어리예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잘라내고 갈고 닦아 금박을 입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그러지 맙시다."


북잼플레이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음성으로 가장 듣고 싶은 시를 독자들로부터 추천받아 직접 낭송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워낙 열정적인 시인은 이미 자신의 시 여러 편을 들려주며 이야기를 진행해 별도의 시 낭송 시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대신 관객석에서 가장 듣고 싶은 시로 뽑힌 ‘풀꽃2’와 ‘멀리서 빈다’를 낭송하는 특별한 시간이 만들어졌다.


좋아하는 시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그 시가 가슴으로 들어와 영혼을 치유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시를 가까이 두고 자꾸 읽으면서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팍팍한 삶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질 것 같다.

북잼플레이 마지막은 독자와의 대화 시간으로 꾸며졌다. 관객들의 질문과 나태주 시인의 답변을 일문일답으로 소개한다.

Q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어교사입니다. 문학을 분석적으로 교육할 수밖에 없는데 회의가 많이 들어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수능 볼 때까진 따지고, 끝나면 느끼면서 읽는 방법밖에 없어요. 수능을 망치라고 할 순 없잖아요. 사실 문학 작품은 따지지 말아야 해요. 그렇지만 수능에서 답이 여러 개면 나라가 뒤집히니 어쩌겠어요.


우리는 교육과 공부를 구별해야 해요. 교육은 피동적으로 길러지는 것이고 주입되는 것이에요. 반면 공부는 중국 발음으로는 쿵푸, 즉 수련하는 거예요. 공부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더 좋은 것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에요. 우리는 그동안 취직, 시험 등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만 해왔어요. 이건 재미없는 공부예요. 진짜 공부는 정말로 재미있어서 하는 공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공부예요. 우리는 너무 쓸모를 따져요. 쓸모없는 것이 진짜 쓸모가 있어질 때 좋은 세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Q 꽃에 관한 시가 많은데 시상을 어떻게 떠올리시는지요? 꽃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진 촬영도 많이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꽃 시를 많이 쓰지요. 제 시의 꽃들은 모두 사람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예요. 그 속에 사람이 들어 있어요. 가령 '앉은뱅이꽃' 시는 어느 날 저를 만나러 왔다가 떠나간 예쁜 여자애를 보내고 섭섭한 마음을 쓴 것입니다.저는 제 꽃 시에 누가 들어 있는지 다 이야기할 수 있어요. 꽃을 꽃으로만 쓰면 의미가 없어요.


오래 전부터 꽃 그림을 연필로 그리고 있는데, 꽃 사진도 많이 찍어요. 어느 날 스스로 놀란 것은 꽃이 많은 계절에는 꽃을 그리지 않는 것이었어요. 꽃이 없는 겨울에 컴퓨터에 꽃 사진을 띄워놓고 매일 그리고 있더라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꽃이 그리운 거예요. 그림 속에는 꽃과 함께 그리움이 들어 있어요. 그리움은 없는 거, 멀리 있는 거, 사라진 거예요. 내게 없는 것을 사랑하고, 생각하고, 같이 있고 싶은 그리움이 인생을 따뜻하게 합니다. 마음속에 그리움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Q 나태주 시인이 생각하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인생은 무정의 용어입니다. 지금 인생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약 300페이지에 걸쳐 좋은 말을 많이 골랐어요. 그런데도 답이 안 나와요. 답은 있지만 답이 아니에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인생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몰라요. 그래도 아주 잘 사는 사람이 있어요. 반면 인생이 뭔지 머리로는 기가 막히게 잘 알아도 안 좋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것을 <장자>에서는 인생여구과극(人生如駒過隙)이라고 했죠. ‘인생은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 말 속에는 세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어요. 흰 망아지가 빠르게 지나갔다, 뭔가 하얀 것이 지나갔다,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흰 망아지가 빠르게 지나갔다’고 말한 사람보다 훨씬 잘 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인생은 그냥 사는 거예요. 그런 삶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너무 따지고 욕심내지 말고 그냥 그렇게 만족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나태주 북잼플레이] "모르는 만큼 느낀다... 많은 것 누리려 하지 말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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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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