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표현 시대다.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각광 받는다. SNS를 통한 소통이 일상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쓰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출판계도 관련 책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독자들은 서점 '글쓰기' 코너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정도다. 그런 독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책이 출판됐다. 글쓰기의 기본기를 알려주겠다고 책 제목도 <글쓰기 기본기>(이강룡/ 창비/ 2016년)다.
저자는 EBS 논술강사로도 활동했고, 지금은 글쓰기와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강룡 작가다. 말 그대로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다. 그가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비법을 <글쓰기 기본기> '시작하며'에 밝혔다.
"말과 글은 삶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삶이 언제나 말과 글보다 앞에 있지요."
좋은 삶을 살면 좋은 말과 좋은 글이 된다는 뜻. 너무 교훈적인가. 12월 16일 서울 서교동 카페창비에서 만난 이강룡 작가는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실제로 좋은 삶이 어떻게 좋은 글로 이어지는지를 여러 예시를 들면서 설명했다. 알찬 글쓰기 강의를 하나 들은 기분이었다. 스스로를 ‘메모 오타쿠’로 표현한 이 작가는 메모법, 연상법 등 지금 바로 실천 가능한 글쓰기 팁들을 대거 방출했다.
그리고 이강룡 작가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 글쓰기보다 말하기를 강조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에게도 "아이들에게 글쓰기 가르치지 마시고 대화를 많이 하세요"라고 답한다고.
"생각을 조리 있게, 뚜렷하게,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연습이 되면 글쓰기는 아주 쉬워요. 옮겨 적기만 하면 되니까요. 쓰기보다는 말하기가 중요하고 말하기보다는 조리 있는 생각이, 생각보다는 조리 있는 실천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Q 이미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김대리를 위한 글쓰기 멘토링> 같은 글쓰기 책을 내셨는데 <글쓰기 기본기>가 이전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기존 책들이 성인 대상 글쓰기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청소년, 특히 예비 고등학생들이 많이 읽어 주길 바라면서 썼습니다. 2007~2010년 논술을 가르칠 때 적절한 교재가 없어서 여러 책을 편집해서 가르쳤거든요. 그때 '나중에 직접 좋은 글쓰기 교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운 좋게 좋은 기회를 만났습니다.
Q 예비 고등학생이 많이 읽어주길 바란다고 하셨는데 고등학생들이 글쓰기 기술을 익혀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 무렵에 학생들 지식수준은 향상되는데 글쓰기 수준은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 서로 격차가 나거든요. 그리고 글쓰기는 자신을 진실되게 전달하는 겁니다. 청소년기에 진실되게 자기를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죠. 청소년기의 습관과 태도가 성인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든요. 진실된 표현은 원래 사태를 정확히 아는 것, 즉 진상 파악에서 나옵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정직하게 전달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제대로 전달하려면 당연히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고요. 이 원칙만 잘 지키면 누구든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Q 책 구성이 독특합니다. 보통 글쓰기 책은 '왜 글을 써야 하느냐'부터 나오는데 <글쓰기 기본기>는 표현법을 맨 앞에 두셨네요.
이론적인 해설은 뒤로 빼고, 실제 사례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를 비교하는 도표도 많이 실었고요. 좋은 표현과 나쁜 표현을 보여주고, 평범한 표현과 더 나은 표현을 보여주면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 생선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 갈치구이를 맛있게 먹었다'라는 세 문장이 있다면 누구든 갈치구이가 가장 나은 문장이라고 얘기할 겁니다. 먹어봤으니까 갈치구이의 고소한 향이 떠오르거든요. 그런 게 공감입니다. 공감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사소한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쓰면 사소한 공감들이 싹 트죠. 이런 사소한 공감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거대한 공감대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근거를 쌓는 방법으로 기록을 강조하셨어요. 글쓰기 강의 때, 메모 습관을 들이라고도 하시고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어떤 걸 기록해야 할지 기준 잡기도 힘듭니다. 기록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든 게 다 메모 대상이죠. 사람들은 보통 뭔가 생각이 떠오를 때 기록해두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귀찮으니까요. 그 생각을 붙잡아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고무장갑을 벗고 메모지를 찾아 그 생각을 적는 건 귀찮은 일이잖아요. 그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메모를 하는 사람이 글을 더 잘 쓸 겁니다.
그는 인터뷰 오기 직전에 했던 메모를 사례로 들었다. 오전에 파주 교하우체국에 들른 이강룡 작가는 차로 우체국 옆에 새로 문을 연 주차장을 지나쳤다. 그때 그 길에 잣나무 묘목들이 아스팔트에 박히듯 빽빽하게 심어진 모습이 보였고 '나무는 계속 자랄 텐데' 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단다. 차를 세워 그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인터뷰 시간에 늦을 것 같아 휴대전화에 '교하우체국 옆 아스팔트에 박힌 나무 촬영할 것'이라고 메모만 했다고 한다.
인터뷰 이틀 뒤, 이강룡 작가는 인터뷰를 마치고 교하우체국 근처로 다시 가서 아스팔트에 박힌 잣나무를 촬영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메모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보여주듯이.
Q 메모를 글로 만드는 과정도 설명해주세요.
저는 메모를 할 때 한 번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수정하고 보완합니다. 자료의 예비 단계로 만들어두려고 노력하죠. 종이 수첩이나 휴대전화에 짧게 메모한 내용을 정리해 블로그 메모란에 올리고, 그걸 보완해서 트위터에 올려요. 반응을 검토한 다음 다시 보완해서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여기서 지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다음 정보를 더 보완해서 블로그 저술란에 완결된 글을 올리죠. 이 글은 나중에 책을 쓸 때 기초 자료가 되고요. 그래서 저는 책을 쓸 때 창작의 고통이 별로 없습니다. 대신 평소에 메모할 때 창작에 필요한 노고를 미리 분담해두는 거죠.
Q 저는 <글쓰기 기본기>에서, 자료를 정보, 지식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이 유용했습니다. 독자들에게도 비법을 전수해주세요.
자료나 정보를 비슷한 테마, 비슷한 종류끼리 묶어두면 좋습니다. 엊그제 다섯 살짜리 제 아들이 "아빠, 하늘나라가 뭐야?"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응. 죽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라고 설명했더니 아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라고 되묻더군요. 저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모순에 빠진 거죠. 제가 요즘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고 있는데요.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자에게 취하는 주된 방식이 곤경에 빠뜨리는 거예요. 자기 모순에 빠지도록 대화를 이끌고 스스로 그 모순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죠.
글감을 모은다는 건 내가 알고 있는 비슷한 것들을 모아놓는 건데요. 앞의 두 이야기를 한 곳에 묶을 수 있죠. 그런데 파주에 사는 꼬마와 2500년 전 아테네에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둘 사이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이 둘을 소재로 글을 쓰려면 그 둘 사이를 연결 지을 다른 사례들이 필요해요. 그런데 일단 같은 주제로 글감들을 묶어뒀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이 보일 겁니다.
Q 그렇게 연관성을 찾다보면 좋은 구상으로 이어지겠네요.
네, 이는 특별한 기법보다는 끈질김이 필요하죠. '이 비슷한 걸 내가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읽었더라… 누구더라…' 이런 궁금함이 생겨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내 포기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생각을 붙잡아둡니다. 답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죠. 그러면 당장은 해결하지 못해도 언젠가는 해결합니다. 그때의 희열은 저 같은 '메모 오타쿠'들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죠.
Q 갈래별 글쓰기 전략을 안내하면서 ‘일기를 주제일기로 쓰면 좋다’고 하셨어요. 실제 육아일기를 주제일기로 쓰고 계시다고요.
제 육아일기의 주제는 ‘한국어 배우기’예요. 제가 한국어 글쓰기 교사이니까, 관심이 많고 또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한정해 육아일기 주제를 정했죠. 아이가 자기 의사를 문장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세 살부터 언어표현을 관찰하면서 흥미로운 것들을 적어두고 있어요. 아이는 요즘 '가깝지'를 '가까우지'라고 '뜨겁지'를 '뜨거우지'라고 말해요. 이걸 기록해 두면 나중에 한국어 문법의 'ㅂ불규칙 활용'에 관해 글을 쓸 때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결국 저 좋으라고 저 재미있자고 쓰는 거예요. 그래야 꾸준히, 더 오래 할 수 있거든요.
Q 주제일기는 학생들이 나중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큰 도움이 되겠네요.
한 분야를 꾸준히 오랫동안 파고든 경험은 자기소개서 평가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죠. 정다미씨는 현재 꾸룩새연구소 소장인데요. 초등학교 때는 동물일기를, 중학교 때는 새 일기를, 고등학교 때는 철새일기로 관심사를 좁혀서 주제 일기를 썼는데 대학 수시 입학 전형에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해요.(정다미씨는 2010년 이화여대에 특수재능우수자 전형으로 합격해 생물학을 전공했고, 현재 동대학원 에코과학부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 편집자 주) 단순히 관심으로만 머물지 말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해요. 기록으로 남겨야 자신을 돌아보기 좋고, 그래야 발전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죠.
Q 관심사를 찾고 실천하는 과정이 중요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실천은 아주 훌륭한 글감이니까요. 실천은 '누가 먼저 하느냐'보다는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좋은 것을 봤을 때 그걸 모방하는 건 아주 좋은 태도고, 더 중요한 건 그걸 오래 지속하는 일입니다.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은 어떤 친구가 1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쓴다면 우리도 한번 모방해보자는 거죠. 그리고 그 일을 3개월, 6개월간 꾸준히 합니다. 한 1년 정도 지났더니 처음 텀블러를 썼던 친구는 중도에 포기하고 나만 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텀블러 사용에 관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자격은 친구가 아닌 바로 나에게 주어지는 거죠. 글쓰기에서는 최초보다는 최대가 더 중요합니다. 가장 오래 하면 최대가 되죠. 가치 있는 일을 더 오래 버티면서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이강룡 "글쓰기는 자전거 타기, 넘어질 각오만 하면 돼"]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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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