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Dec 30. 2016

"원칙만 강조하는 법치주의, 섬세한 예외 살펴야"

글 쓰는 판사 문유석 작가 인터뷰

<판사유감>으로 현직 판사의 솔직한 심정을 담아 판사에 대한 선입견을 한 꺼풀 벗겨내고,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만국'의 개인주의자들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글 쓰는 판사'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또 한 번 독자를 찾아왔다. 이번엔 소설이다. 


소설 <미스 함무라비>(문학동네/ 2016년)의 주인공은 정의의 법정을 꿈꾸는 초임 판사 박차오름과, 그녀를 응원하고 걱정하는 임바른 판사와 한세상 부장판사. 세 주인공은 법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과 함께 대한민국 대부분 판사들의 고민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믿기 어려운 기막힌 사건부터 원고와 피고 모두 안타까운 사건까지, 법정 안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되고 이웃의 속사정도 엿보인다.

법정에 선 이웃의 이야기에,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법과 정의란 무엇인지 문유석 판사의 깊은 고민이 묻어난다. 물론 피식 터지는 유머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도 함께.

Q 책에 정말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이 나오는데요, 어디까지 사실인지 궁금해 하며 읽었어요.

 
황당한 얘기가 아니라 현실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두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있던 일을 그대로 쓰면 사건 기록이고 사생활 침해니까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들은 짧은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만든 거죠. 책에 이혼하면서 양육문제로 다투는 사건이 나와요. 그건 가정법원 판사님이 '엄마가 바람 피우는 동영상을 애한테 보여주려는 희한한 아빠가 있더라'고 하소연하듯 한마디 했는데, 그 한 줄로 탄생한 거예요.

Q 주인공 박차오름은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당당한 인물이지만, 법원 안에서는 특이한 판사로 그려져요. 박차오름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해마다 젊은 여성 법관이 많이 조직에 들어와요. 그분들과 어울리고 대화할 기회가 많은데요, 그분들을 통해서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굉장히 새롭게 느끼고 있어요. 젊은 여성 법관인 박차오름이 그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수하더라도 변화하는 사람은 어느 조직에나 필요하거든요.


그렇지 않고 전에 검증된 방식에만 머무르면 고인 물처럼 썩어가겠죠. 시대가 변하고 요구가 달라지는 만큼 젊은 세대들 실수할 권리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저도 초임 때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예뻐 보이는 옷을 입었는데, 한 달 뒤에 부장님이 '판사 오래 하고 싶으면 입지 말라'고 야단치시더라고요. 바로 '아저씨 양복' 사입었죠.(웃음) 
 
Q 책 제목인 '미스 함무라비'는 주인공 박차오름의 별명이기도 한데요, '미스 함무라비'라는 제목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어요?


'미스 함무라비'라는 게 대중, 네티즌들이 박차오름을 바라보는 시각이잖아요. 정의파, 화끈한 복수, 이런 걸 떠올리고 그런 별명을 붙였는데, 젊은 여자잖아요. 그러니까 '미스'가 들어가는 거죠. 사회에 도전하는 젊은 여자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미스'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올해 여성혐오와 관련한 이슈들이 많이 나오는 걸 봐도 그렇고요. 남자 판사였다면 이런 식으로 안 불렀을 것 아니에요. 실제로 '미녀 판사'라는 말 많이 쓰잖아요. 여전히 프레임에 갇혀 있는 거죠. 그런데 제목만 보고 욕하실 분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인간 존엄한 이유는 책임 지기 때문... 합당한 처벌 받는 게 인간적 대우"

Q 위계질서가 강한 법조계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박차오름을 보면서 의아했어요. 있을 수 있는 일만 썼다고 하셨는데, 법원 분위기랄까, 문화는 어떤가요?

튀는 것, 모난 것, 자기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조심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판사는 법에 의한 판단을 하는 사람이고. 결국 사법부의 신뢰와 연결되니까요. 한 명이 잘 못하면 사법부 전체 신뢰를 해치기 때문에 개성보다는 신뢰를 먼저라는 생각이 지배하죠.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 조심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Q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네요. 법원의 눈치가 보이지는 않나요? 책 나온 뒤 동료들 반응은 어땠나요? 


한 10년 전부터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부터 시작해서 법원에 대한 국민들 불만이 많았어요. 우리 잘못도 있기 때문에 반성도 많이 했지만 '우리가 이 정도는 아닌데' 싶어서 억울한 부분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판결 과정을 설명하지 않았던 부분이 오해를 사기도 했으리라 생각해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관련한 일을 재판하는 건데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믿어달라'고 반복하는 것이 무책임하게 보였을 수 있구요.


그로 인해 불신이 생겼다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법원 내부에도 형성이 됐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일을 하고 있는지 알리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제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걱정을 하는 분도 있고, 필요하다고 응원해주는 분도 있어요. 

Q '재판 기록을 본다는 건 내밀한 타인의 삶 구석구석을 읽는다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손톱 밑의 가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도 피고, 원고, 참고인까지 모두가 안타까운 상황을 생각하면 시비를 가리기가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그런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선악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모두가 나름의 고충과 사연이 있고,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를테면 자기가 잘못한 것보다 조금이라도 처벌을 더 받으면 억울한 거예요. 뻔뻔하다고 느껴지지만, 그 입장이 되면 달라져요.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죠. 인간의 그런 속성이 처음에는 가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자기 잘못만큼 아주 정확하게 처벌받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 판단이 선명하지 않아요. 

Q 판결이 선명하지 않은 경우를 많이 겪다보면 판결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책에서 법원이 심판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하셨는데, 그런 고민에서 말씀하신 건가요? 


대등하게 힘 있는 사람들이 싸우는 사건은 공정하게 심판만 보면 돼요. 대형 로펌에서 알아서 자기 권리를 보호하니까요. 그런데 자기 권리를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구조적으로 약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처벌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 거고, 법이 그런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거죠. 원칙만 강조하는 법치주의에서 이제는 섬세한 예외까지 살피는 법치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문제해결법원'이라고 해서 그런 노력을 법원에서도 조직적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글 쓰는 판사 문유석 "원칙만 강조하는 법치주의, 섬세한 예외 살펴야"]의 일부입니다. 

전문보기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신동석

매거진의 이전글 이강룡"글쓰기는 자전거 타기, 넘어질 각오만 하면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