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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28. 2016

'어른 여자'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이 겪은 성장통


사람들은 그녀를 ‘홍대 마녀’라고 불렀다. 무겁고 독한 노래를 부른다고. 선입견을 갖고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런데도 내 귀에는 담담한 목소리에 기타의 잔잔한 울림이 더 크게 다가왔다. 겨울날 새벽에 듣기 딱 좋은 목소리. 절규하는 듯한 노래도 노랫말의 깊이 덕에 가슴을 울렸다. 아, 한 번 빠지면 마녀의 저주처럼 계속 찾아듣게 된다고 마녀인 건가. 음악 문외한의 음악 감상평은 여기서 멈추고 이제 책 얘기로 넘어가자.

‘홍대 마녀’ 오지은이 두 번째 책을 냈다. 전작 <홋카이도 보통열차>에서 스물아홉 오지은이 열차를 타고 청춘의 터널을 통과했다면 신작 산문집 <익숙한 새벽 세 시>에서는 30대 중반에 이른 ‘어른 여성’ 오지은이 느끼는 무게감이 전해진다.

어느 날, 푸른 봄 그녀의 청춘이 사라지고 있었다. 3집 음반을 만들 때 장송곡을 만드는 기분 같았단다. 음악을 들을 수 없고, 급기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고. 그녀는 만족, 행복 같은 단어의 정의를 잃은 사람이 되어 ‘진짜’ 어른이 되는 성장통을 겪는다. 

“지금 이 생각, 이 상황을 그냥 흘려버리면, 많은 것을 포기한 어른이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방향 없이 그저 어슬렁거리고, 변명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 <익숙한 새벽 세 시> 16쪽 


이때 그녀가 내린 결단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짐을 싸서 홀연히 일본 교토로 떠난다. 깨를 볶는다는 결혼 한 달 만에. 교토에서 오지은은 ‘진짜’ 어른이 되었을까.

인터뷰 장소에 나온 오지은은 두꺼운 패딩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름 연예인을 만난다고 옷장 속 코트를 꺼내 입은 내가 과했나 싶을 정도로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표정 역시 부드러웠다. 책에서 깊은 우울 속을 헤매던 오지은을 읽은 터라 그 모습이 반가웠다. 반가움에 수다를 떨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잘 모르던 인간 오지은을 탐구하는 자세로.




Q ‘익숙한 새벽 세 시’라는 노래도 있던데 오지은에게 ‘새벽 세 시’란 어떤 시간인가요?

일을 제일 많이 하는 시간입니다. 가사도 쓰고 곡도 쓰고요. 어제도 새벽 3시 40분까지 편곡을 했어요. 새벽 3~4시까지 안자고 있다가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곡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영감 같은 걸 좇는 비이성적인 작업이니까, 막 흔들어서 혼돈된 상태의 탁한 마음으로 쓴 음악이 좋을 수도 있지요. 글은 반대로 이성의 영역이더라고요. 마치 흙탕물을 오래 두면 자갈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위로 뜨는 것처럼 맑은 마음으로 써야 되더군요. 처음엔 그걸 모르고 새벽에 글을 썼는데 새벽에 탁한 마음으로 쓴 글은 다음 날 보면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나중엔 밤 9~10시에 자서 새벽 4시쯤 깨서 글을 썼어요.

Q 글과 음악 작업의 차이에 대해 말했는데 그렇다면 두 창작 행위의 공통점을 꼽는다면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굳이 만들 필요 없이 듣기만 하면 편해요. 하지만 그걸 고생하면서 만든다는 것은 ‘직업이니까’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뭔가가 있기 때문이거든요. 결코 즐거운 과정은 아닌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음악을 만들게 돼요. 그건 글도 마찬가지이고요.

Q 그렇다면 이번 책에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뭔가요? 

제가 답이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인지한 지는 좀 됐어요. 열심히 한다고 되는 시기가 아니라는 걸요. 누군가 “너는 좋잖아. 너는 괜찮잖아.”라고 얘기할 때 확 느껴지는 외로움 같은 게 있었어요. 사람들 중에도 다들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몰래 ‘노답인 것 같은데’ 하면서도 티 안 내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소수인지 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불안을 공유하는 것이 그렇게 ‘내가 잘못된 건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어요.

Q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소수는 아닌가 봐요.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더군요. ‘다 가진 것 같은 언니가 왜 나랑 똑같은 고민을 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어.’라고 쓴 네티즌 리뷰도 봤어요.

다 좋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김연아씨? 저는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요. 본인이 재능도 있고 성취도 이루었고 모두가 그 성취를 인정하죠. 아름답고 체지방률도 10% 미만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다를까요? 고민의 정도, 종류, 디테일은 달라도 똑같은 지구인이라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가 잘못된 건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움 될 수 있기를"

Q 전작과 이번 책의 느낌이 좀 달라요. <홋카이도 보통 열차>가 발랄했다면 이번엔 분위기가 좀 무거워요.

<홋카이도 보통 열차>는 6년 전에 쓴 책이죠. 그때는 그저 결과물이 나오면 다였어요. ‘내가 이걸 쓴다’, ‘이걸 표현하고 싶었어’에 머물렀죠. 지금은 이 책이 260페이지에 1만3500원이고, 누군가 아주 내기 힘든 시간과 돈을 써서 읽는 것이라는 무게감을 크게 느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이제까지 창작을 했던 동력이나 방식이 이젠 안 통한다는 걸 한꺼번에 느끼게 됐죠. 20대의 어떤 아이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뜻도 모르면서 “몰라. 됐어.” 할 때의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그 시기가 지난 거죠.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다음 단계의 무언가를 고민하는 과정을 책에 담았죠.

Q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결혼하고 한 달 후였어요. 다른 사람들은 신혼 재미에 빠진다는 때인데요.

결혼식 자체가 저에겐 스트레스였어요. 저는 결혼식 말고 결혼신고만 하면 된다고 했던 사람인데, 결혼식을 하기로 하고 준비하면서 한국의 가족문화에 많이 놀랐어요. 결혼은 내가 어떤 사람과 같이 산다고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인데, 저의 감흥은 별 의미가 없더라고요. 페이를 못 받는 공연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걸 잘 수행해내느라 마음 안에 뭔가를 좀 다치기도 했고요.

이것도 유난인데, 어쩌겠어요. 이렇게 유난스럽게 태어난 걸. 저는 폐백이란 걸 하면 폐백의 기원부터 알아야 하는 사람이에요. 이게 정말 한국의 전통문화인지, 왜 하는지 등. 그런 자세로 인생을 살아오고 그게 결과물로 나오는 사람인지라 납득할 수 없는 상황들에 놀랐던 것 같아요.

Q 결혼 한 달 만에 외국에 간다고 했을 때 남편 성진환씨가 흔쾌히 보내주던가요?

다행히 그는, 제가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과 떠나서 뭔가를 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역시 그 결과물을 기꺼이 기다리는 독자여서 제가 운이 좋았지요.

Q 교토에서 한 달 넘게 있으면서 고민들이 많이 풀렸나요?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좋은 데 가서 예쁜 거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며 사색하면 재충전이 될 줄 알았어요. 책에도 될듯 말듯 써서 독자들이 ‘이 사람 왜 이러지?’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행 가서 여행의 즐거움을 못 즐기고 있는 스스로에게 당혹감을 느껴본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제가 그랬죠. 수확이 있다면 그게 안 된다는 걸 받아들였다는 거죠. 이제 좋은 걸 본다고 해결되는 정도의 가벼운 고민이 아니고, 맛있는 걸 먹으면 “아, 맛있어. 아, 행복해.” 즉각 반응이 나올 상황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스포일러가 되려나? 2부에서 더 나빠지잖아요. 시간을 내서 나를 들여다봤더니 생각보다 제가 더 고장 나 있더라고요. 돌아와서는 정말 집에만 있고 친구도 안 만났어요. 그래서 결국 2년 정도 엎치락뒤치락했네요.

Q 보통의 여행기는 여행을 갔다가 오는 걸로 끝나는데 <익숙한 새벽 세 시>는 여행 후일담이 절반을 차지해서 여행기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요. 

여행기라기보다, 고민이 있으니까 고민에 대한 글을 쓰면 좋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고민이 무처럼 뿅 뽑으면 될 줄 알았는데, 고구마줄기처럼 주렁주렁 나와서 정리가 안 되고 혼란에 빠졌죠. 마지막 부분은 정말 막판에 썼는데 이런 결론이 날지 편집부도 저도 몰랐어요. 재작년 겨울의 저, 작년 봄의 저, 여름의 저, 가을의 제가 다 달라서 저도 좀 지켜보는 입장이었어요. 내가 어디까지 가려나 하고. ‘답이 없다는 걸 알고 포기했습니다. 끝.’이 될지, ‘집에 가보니 파랑새가 있고 난 행복을 찾았어요’가 될지. 둘 다 아닌데 제3의 결론이 뭘까 저도 궁금했는데, 이건 스포일러지만 그게 도망이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Q 이사가 도망인가요?

네. 왜냐하면 저는 홍대에 살았으니까요. 홍대에서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공연도 하고. 여기에서 10년 정도 뭔가를 했으니까 저도 어떻게 보면 홍대라는 사회의 일원인 거죠. 회사 앞에 산다는 건 뭐랄까요… 일과 생활이 가까이 있는 게 편리하고 좋아서 여태껏 전혀 불만이 없었는데 이젠 단절된 느낌을 갖고 싶어진 거죠.

신경성 질병이 생겨서 아는 의사한테 물어봤더니 “그건 시골 내려가서 일 안 하는 수밖에 없어”라며 이사를 가라고 하더라고요. ‘친구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음악 하는 건 좋은 일인데 나는 왜 이렇게 겁쟁이, 멍청이처럼 굴까.’ 자학이 심했죠. 그런데 내가 겁쟁이, 멍청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안해요. ‘나는 겁쟁이, 멍청이니까 사람도 가끔 만나고 일도 가끔 하지 뭐.’ 그러면서 한동안 지내보기로 했어요. 그러면 다시 에너지가 차오를 수도 있겠죠.



"위험하면 도망가라고, 아무도 패배자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어"

Q 책을 읽으면서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은 실무적인 이유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음악은 어릴 때 양은냄비처럼 에너지가 끓어넘쳐서 하는 게 확실히 편하거든요. 나이 들면 에너지는 끓어넘치지도 않는데 더 높은 퀄리티를 요구받죠. 그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내 음악을 해” 하며 지내다가 잠깐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배터리 잔량이 넉넉하지 않더라고요. 그걸 알았을 때 당혹감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배터리의 빨간색을 본 거라 ‘이대로 끝나나’ 싶었죠. 오늘 이후로 곡이 안 나오면 음악인으로는 창작을 못하는 거니까.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용을 쓰면 용 쓴 티가 나서 듣는 사람이 불편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지막 원고를 보낸 날 곡이 나와서 지금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어른이 된다고 숙련되고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에너지도 없어지고 지혜로워지지도 않으면 어른이 된다는 건 대체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Q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요?

머리를 잘 틀어올리고 짜장면을 먹고, 마스카라를 깨끗하게 바르고, 꼿꼿한 자세로 우하하게 걷는 ‘어른 여성’이 될 줄 알았는데 오늘도 구부정하게 어그부츠를 신고 나왔네요. 어른이 된다고 자동으로 마스카라가 깔끔하게 발리는 게 아니더라고요. 뭉치는 걸 노력과 노하우로 막는 거죠. 하지만 방심하면 뭉친다는 것. 저는 어른이 되면 방심 안 해도 될 줄 알았거든요.

Q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오지은만의 색깔이 묻어나요. 한 블로거는 ‘오지은은 잘 큰 어린왕자 같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요? 엄청 찬사네요.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뇌가 멈춘답니다. 오해받는 것에 대한 섭섭함만 많이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으니 덜 섭섭해하도록 하겠습니다.

Q 어떤 식으로 오해를 받나요?

낯선 사람과 얘기할 때 긴장해서 목소리 톤이 엄청 높아질 때가 있어요. 그게 밝은 조증의 사람처럼 보이죠. “오지은씨는 음악은 우울한데 성격은 밝다” 할 때, 저한테 뉘앙스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도대체 어느 쪽인 거야?’라고. 그런데 사람이 무슨 아침 드라마 속 배역처럼 착한 애, 못된 애, 질투하는 애, 순박한 애로 구분할 수 없는 거잖아요. 또 그런 것도 있어요. 여성 싱어송라이터, 거기에 홍대. 어떤 사람은 여신으로, 저는 마녀로 분류가 되죠. 그런데 남성 싱어송라이터 분류 들어본 적 있으세요? 비교 글도 본 적 없을 걸요? 저는 그게 소녀시대 일렬로 세워놓고 누가 다리가 예쁜지 비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Q 이 책을 읽는, 취업 등 많은 고민을 하는 20~30대 청춘들에게 그 시간을 겪은 선배로서 한마디 해주세요.

위험하면 도망가라고, 도망가는 건 나쁜 게 아니고 아무도 패배자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러니까요. 그냥 아픈 데 없고 체력이 돼서 자신을 직시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멋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기 전 오지은과 쓰고 나서의 오지은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글을 쓰는 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됐고, 동굴을 빠져나온 건 맞아요. 이후에도 동굴이 있을 텐데 다음 동굴이 온다고 해도 당황하진 않을 것 같아요. 저만의 할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에너지가 떨어진 사람이 만든 창작물의 가치가 작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에너지 환산법이 다를 수도 있죠. 예전 방식대로 계산하면 에너지가 적게 보여도 다른 방식으로 하면 많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건 제가 앞으로 증명해나가야겠죠.




이야기하는 내내 오지은은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눈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평균치를 몰라서 잘은 모르지만 있나 봐요”라며 순순히 수긍했다. 내친김에, 그녀의 노래 중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를 들으면서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는데 맞냐고도 물었다. 

“네, 김진숙씨(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가 크레인에 올라간 걸 보고 썼어요.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긴 한데 창작은 티 안 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A는 A야’라고 하면 A만 되니까. A, B, C, D로도 받아들여지면 좋겠거든요. ‘맞아 A’라고 하면서 A에 이미 찬성하는 사람들만 듣고 우리끼리만 좋아하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를 들으면서 책 속 이 구절이 떠올랐다.

“익명 고민 게시판을 읽는다.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모자람을 비관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기가 무쇠 같지 못하다고 비관한다. 누가 이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익숙한 새벽 세 시> 109쪽




취재: 신정임 (북DB객원기자)

사진: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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