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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27. 2016

조승연이 묻는다, 프랑스에 한국인 입시학원만 있는 까닭

<공부 비법 전도사 조승연이 들려주는 어린이 인문학> 출간 기념 인터뷰

최근 우리 사회에 ‘인문학’이 화두로 떠올랐다. 인문학적 지식이 곧 창의력을 낳아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해외 유명 기업에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고, 이에 발맞춰 가고자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인문학 강좌’를 열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학은 이공계 중심으로 구조조정 되며 인문학은 홀대받고 있다. 

이에 대해 <공부 비법 전도사 조승연이 들려주는 어린이 인문학>의 저자 조승연은 인문학 붐이 경제적인 ‘잡 스킬’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인문학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되려면 적어도 중·고등학생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2002년 뉴욕대학 스턴비즈니스스쿨 2학년 무렵 출간한 <공부기술>이 50만 부 이상 팔리며,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대학을 다니면서 클래식에 빠져 줄리어드음대 야간과정에 입학하기도 했는데, 이후에는 프랑스 국립 미술사 고등교육기관인 에콜뒤루브르에 입학해 미술사까지 섭렵했다. 언어능력도 만만찮다. ‘언어천재’로 유명한 그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라틴어로 독해가 가능하다.

요즘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이번 책에서도 인문학과 언어능력을 접목시키는 등 ‘언어천재’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단어마다 그 언어를 쓰는 민족의 역사와 정서, 감정, 애환이 서려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이해해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문장 조합 능력이 생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가 조승연에게 ‘언어 공부’와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과 <비즈니스 인문학> 이후 이번엔 <공부 비법 전도사 조승연이 들려주는 어린이 인문학>을 출간했습니다. 어린이 대상으로 인문학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안타깝게 느낀 게 있어요. 저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훔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유학을 가보면 공대, 의대, 법대 등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데, 미술사나 불문학 강의에 가면 없거든요. 이 얘기는, 우리는 아직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하는 것을 경쟁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거든요. 근데 외국은 달라요. 아시아 문제에 관심 있고 공자, 맹자를 읽는다고 하면 기업에서 선호해요. “저 사람은 굉장히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나라에선 미국에서 셰익스피어를 공부한 사람을 썩 선호하진 않지만 MBA나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고 하면 좋아하죠. 이런 인문학적 관심은 자발적으로 가져야 하는데 한국에선 장려하는 풍토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자발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 인문학 책을 쓰려고 한 것이고요.

Q 최근 한국에서 인문학 열풍이 풀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굉장히 간단하죠. 경제적 요인이에요. 기본적으로 기업들의 기술력이 서양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없음에도 외국에 나가면 ‘아시안 페널티’라는 것이 있어요. 아시아 물건이 서구에서 만든 것보다 싸게 팔리거든요. 기업들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 않겠어요? ‘왜 똑같이 만들었는데 우리는 수익률이 적은가.’ 그러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을 융합시켰다고 하니까 인문학 붐이 일어난 것이거든요.

객관적으로 사회현상을 분석했을 때 세상을 보는 눈이 좁은 것 같고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껴서 칸트를 읽고 인생을 생각해보고 싶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서구 고객들이 우리나라 제품을 보면 디자인이 후지다고 하는데 왜 내 눈에는 안 보이지?’ 이런 경제적인 잡 스킬로써 시작된 것이거든요.



"한국 인문학 붐은 ’잡 스킬’로 시작... 사회변화 연결 안 돼"

Q 인문학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현재 대학에서 인문학은 계속 축소되고 있어요. 참 모순적이죠. 

인문학 붐이 일어났을 때 인문교육이라기보단 음악 듣기, 시 읽기 등 교양교육이 이뤄졌어요. 인문학이라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거든요. 인문학은 지식이라는 나무가 여러 가지로 갈라지기 전 줄기와 같은 개념이에요. 그래서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의 원천과 존재성을 알려주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별개의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지 않다보니 실질적인 사회변화나 대학생의 인식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버드대학의 경우엔 다 인문계 대학생들이에요. 하버드 로스쿨, 의대, 경영대학 등 오히려 다른 학교들이 부속학교죠.

Q <공부 기술> <그물망 공부법> 같은 책을 통해 재미있고 요령 있게 공부하는 법을 꾸준히 전파해오셨는데, 교육환경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독자들의 의견들도 있었어요. 

그 말 자체가 환경순응적이지 않은지 반문하고 싶어요. 사실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은 환경에 맞추겠다는 것으로 들리거든요. 그러면 환경은 누가 만드는 거죠? 우리잖아요. 프랑스에 가면 바칼로레아(프랑스 수학능력시험) 입시학원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 한국 유학생 입시학원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코리아타운에 가면 SAT 학원이 즐비해요. 이런 교육환경은 한국 제도가 만들었는지 우리가 만들었는지 묻는다면 답이 되겠죠.

그리고 ‘과연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맞춘다는 것이 현실에 맞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인생이 보장될까요? 우리나라 부모들이 말하는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와 다르다는 거예요. 그게 현실과 안 맞는다는 얘기는 아니거든요. 제 공부기술이 현실에 안 맞는다는 것도 무시는 못하겠지만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과연 현실적인 것일까요? 우리가 현실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겠죠.

Q 제목이 ‘공부 비법 전도사 조승연이 들려주는 어린이 인문학’인데 어린이들이 인문학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인문학이라는 것은 ‘의미부여’와 ‘세상을 보는 법’이에요. 예를 들어 이 카페를 보면서 “여기는 요즘 카페 같지 않고 88년에 유행하던 카페 같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1988년 다방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동원한 거예요. 이게 인문학이에요. 빨간 코드에 검정색 부츠를 신었을 때 “세종대왕이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면, 그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에 웃긴 것이거든요.

인문학은 ‘세상을 보는 방법’이라고 했는데, 세상을 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어요. 파란색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이 색을 ‘네이비’라고 불렀다면, 해군 유니폼에서 본 색깔이라는 지식을 동원해서 ‘안 보이던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거든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거죠. 우리가 해군 유니폼의 파란색이 특별한 파란색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네이비블루’라는 단어를 쓰면 일반 블루와는 달라 보이는 거고요. 이것도 인문학이에요. 

이것처럼 인문학의 기본 목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파란색으로 보이지만 나한테는 열 가지의 파란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 그리고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작은 조 변화에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말도 더 잘하고, 타인의 감정도 더 빨리 파악할 것이고, 디자인의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에겐 보이니까. 인문학은 지식의 총량이 아니에요. 머리에서 작용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만들어주는 거죠.


"인문학은 지식의 총량 아냐... 세상 보는 관점 만들어주는 것"

Q 워낙 언어공부를 잘 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지금 몇 개 나라 말을 하시죠?

한 나라 말을 한다는 것도 기준이 명확하지가 않아서요. 독일어로는 고전소설이든 뭐든 읽을 수는 있는데 회화가 능통하진 않아요. 이탈리아어로는 연애만 했기 때문에 감미로운 단어 구사가 능하지만, 비즈니스 언어 쪽은 전혀 모르죠. 프랑스에선 미술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예술 쪽으로는 괜찮은데 경영학 단어는 전혀 몰라요. 미국에선 경영학을 공부해서 비즈니스 용어를 쓰는 게 편한 반면 연애를 한다면 표현력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모든 언어를 다 할 줄 안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언어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기 때문에 국가마다 수많은 종류가 있고 분야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잖아요. 만약 대학 수업 들을 정도의 언어라고 한다면 영어, 프랑스, 이탈리어, 독일어 정도고, 중국어로는 드라마는 볼 수 있겠더라고요.

Q 그 나라의 언어를 쓸 수 있는지 하는 문제는 그 나라 문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하는 이야기와 같아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이랑 미국 사람들이랑 같이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미국 사람들이 웃을 때 같이 웃으면 영어를 잘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한국 사람들끼리 미드를 보니까 웃음 포인트를 몰라요. 다 같이 안 웃으니까. 근데 미국에 있으면 다 느끼거든요. ‘도대체 내가 뭘 놓쳤지?’ 그들끼리 알고 있는 게 있거든요. 

그리고 유학하고 온 사람들이 느끼는 건데, 번역 자막에 놀랄 만한 것들이 많아요. 미국 사람들에게는 ‘sarcasm’(풍자, 빈정댐, 비꼼)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진지하게 번역한 것이 굉장히 많거든요. 정확한 이야기를 알아듣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못 알아들어도 그게 유머코드라는 것을 알고 웃는 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거든요. 정확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죠. 감정이 전달 안 되면 그건 소통이 안 된 것 아닐까요?

Q 인디언 추장은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에게 칠면조(Turkey)를 선물했고, 인디언들에게 땅을 빼앗고 북아메리아를 차지한 청교도들은 추수감사절이 되면 인디언들이 준 ‘터키 새’ 요리를 먹는다는 이야기는 씁쓸했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이 글로벌 시대에 버려야 할 관념은 바로 ‘외국’이라는 거예요. 나라마다 이름이 있고 자부심이 있고 먹는 것도 다르고 부모 자식 관계도 다 달라요. 그런데 우린 그냥 통칭해서 “외국에선 이래”라고 해요. 이 책에서, 인류 역사는 움직임의 역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이렇게 배우면 덜 생소하겠죠.

Q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은 어떤 책인가요?

아직 어렴풋한 생각이지만 세상을 좀 더 거시적으로 보게 해주는 <총, 균, 쇠> 같은 책을 쓰려고 해요. 우리나라에 있는 입시문제는 중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이거든요. 그래서 아시아의 어떤 면이 이런 입시제도를 만들어내는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어릴 적 강원도 원주에 살았는데 시멘트 차가 많이 오갔어요. 강남이 개발되고 있었을 때였는데 전 그 차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어요. 만약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면 제 인생을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요? 강남에 빌딩을 몇 개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죠.(웃음) 그건 굉장히 간단한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제가 미국식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 사람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봤을 때 ‘왜 저렇게 공부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에 대한 책을 펴냈고, 그게 제 커리어가 됐어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작은 차이를 만들어보면 좋겠어요.



취재: 김영은(북DB 객원기자)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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