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Feb 02. 2016

2016년이 더 기대되는 신진작가 & 출판사

인터파크 선정! 주목할만한 신진작가 & 작은거인 출판사


한 해의 최고의 책과 작가를 선정하는 인터파크도서 골든북 어워즈 결과가 발표됐다. 2015년 판매량 50%와 온오프라인 독자들의 투표 결과 50%를 합산하여 선정된 골든북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 골든북 작가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채사장이 선정되었다. 


이번 골든북 어워즈에서는 특별히 인터파크가 주목한 신진작가와 출판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출간을 이어가고 있는 개성 있는 출판사들, 그리고 대중적 인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무게를 두고 뚝심 있게 한 분야를 파고들어 그야말로 '양서'를 펴내는 작가들.  2016년이 더욱 기대되는 그들, 인터파크가 꼽은 '작은 거인'을 만나보자.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작가(사진 주혜진)


55세의 노장 신인 정재찬, 잊혀졌던 시를 호출하다


통상 영화제나 방송계의 시상식에서 신인상은 일생에 단 한 번밖에 탈 수 없는 소중한 상으로 불린다. 출판계에서도 이 법칙은 예외일 순 없다. 생애 첫 번째 낸 책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면 두 번 째, 세 번째의 가능성도 입증받은 셈이니까. 2015년 골든북어워즈 신진작가상 수여에선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바로 55세의 노장 신인 정재찬 교수가 <시를 잊은 그대에게> 로 이 상을 거머쥔 것이다.

“이런 상을 받게 된 것이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 사실 여전히 작가라는 호칭이 저에겐 어색합니다. 지금껏 작가가 되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강의를 열심히 하고 싶었고, 그 강의의 결과물로 책을 냈는데 굉장히 과분한 사랑을 받았죠. 저도 놀랍기도 하고, 독자분들께 감사하죠.”

정교수의 히트작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그가 한양대학교에서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문화혼융의 시 읽기’라는 제목을 달고 진행한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의 문학 수업은 방식이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에 유행한 흘러간 유행가나 그 시절에 제작된 광고,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들을 현 세대 대학 강의실로 끌어들여 온다. 그 결과는 폭발적이다. 강의마다 최우수 교양과목으로 선정되고 기립박수가 터질 만큼 열띤 반응이 터져 나왔다.

"VJ처럼 저는 티쳐 자키, TJ라고 할까요?(웃음) 예로 든 영화들, 동영상, 광고를 직접 틀고, 음악도 들려주고, 심지어는 제가 노래도 하는 콘서트 같은 거죠. 그렇게 하니까 놀랍게도 소통이 되더라고요. 또 제가 강의한 시들이 이른바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에요. 교과서적이라는 게 훌륭하단 뜻도 되지만, ‘답답하다’는 뜻으로도 쓰이잖아요. 굳이 그걸 택한 이유는 “너희 교과서적인 시 지겨워하잖아. 정말 지겨워?”라고 반문하는 전략이었어요. 새로운 것을 주고 시가 사실은 이렇게 말랑말랑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딱딱하게 배운 것이 정말 그러한 것이었는지 되묻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영혼이 깨어났던 것 같아요. 세대 간 소통을 하자면 소통할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통로가 교과서라고 생각했어요.” 
 


강의에서 시작해 책으로까지 만들어진 정 교수의 강의. 그의 의지는 시에 목마르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던, 혹은 시 즐기는 법을 몰라 시를 멀리했던 이들을 하나둘씩 호출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말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란 제목을 보는 순간 ‘어, 이건 나야’ 하는 느낌이 다들 하나쯤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의 부제가 ‘공대생을 울린 시 강의’라고 해서 정말 공대생만을 위한 강의일까요? 일부 공대생은 화를 내기도 했어요. 공대생 비하 아니냐, 우릴 뭘로 알고 이러냐 하면서요.(웃음) 하지만 여기서 ‘공대생’은 상징 같은 거예요. 공대생의 가슴을 울렸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더 울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죠.”

사실 정교수가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건 2006년이다. 그의 재치를 담아 표현하면 ‘6년 근 홍삼’과 같은 책이란다. 하지만 그 6년 새에 아버지,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상실의 경험을 했다. 그래서일까 가장 소중한 이의 생의 끝에서 깨우친 시의 아름다움은 더욱 절절히 빛난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신진작가상을 받는 것을 못 보고 부모님이 가신 것에 아쉬워할 법도 한데 저에게 그런 아쉬움은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떠나 보내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 생각이 제 글에 변화를 끼쳤거든요. 이 책이야말로 부모님이 제게 주신 마지막 선물 같아요. 아파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당겨 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에게 흥미롭고 재치있는 방식으로 풀어 놓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문성을 대변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대중화가 잘못 해석될 우려도 있는 까닭이다. “서문에 제가 머리말을 몇 번 쓰는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서 책을 낸다고 쓴 건 진심이에요. 머리말이 저에겐 “너 정말 자신 있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 같은 질문의 상징이었거든요. 작년 한국 연구재단에서 인문학 대중화 운영위원 사업을 하면서 대중화가 어려운 까닭을 깨달았지만, 정작 나도 그 옷을 벗기가 두려웠어요.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요.“

55세의 신인, 정재찬은 조심스럽게 <시를 잊은 그대에게> 2권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사람들이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시고, 이렇게 상도 주시니 감사하면서 한편 부담스럽기도 해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처럼 ‘시를 잊은 그대에게 두 번째 이야기’를 낼까 생각 중이에요. 1권은 강의실에서 검증받아서 세상에 나왔지만, 2권은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면서 피드백을 받아 보려 해요. 똑같이 하면 판박이라고 할 것이고, 다르게 하면 변했다고 하는 소포모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런 의식 안 하고 다시 내 강의록을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하려고요. 1권보다 사랑 못 받을 자신은 확실히 있어요. 평생에 두 권으로 끝날지도 몰라요.(웃음)”



도서출판 따비 박성경 대표(사진 주혜진)


'음식인문학'의 '판'을 벌이다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출판물을 지속해서 펴내는 1인 출판사들이 주목받고 있는 요즘이다. 2015 골든북어워드 출판부문 작은거인상을 받은 도서출판 따비도 이와 같은 개성 있는 출판사 중 하나다. 성산동의 정감 있는 골목길에 자리 잡은 건물 3층의 도서출판 따비 사무실을 찾아 박성경 대표를 만났다.

“이런 상을 타게 되어 기쁩니다. 베스트셀러나 메이저 출판사 중심의 관행을 벗어나 저희를 찾아주시니 좋네요. 작지만 열심히 하는 출판사들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구석진 땅이나 소가 들어서지 못하는 좁은 땅을 가는 데 쓰이던 옛 농기구 ‘따비’처럼, 도서출판 따비는 지난 6년간 ‘음식인문학’이라는 땅을 부지런히 갈았다. 2010년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미각의 제국>을 시작으로 2016년 1월까지 펴낸 책 종수만 해도 총 34권.

작년에 나온 책 리스트만 살펴봐도 <밥의 인문학>을 비롯해,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3농혁신><전환의 키워드, 회복력><먹거리, 지구화 그리고 지속가능성><한국의 먹거리와 농업><심야인권식당><맛있는 채식, 행복한 레시피><음식을 끊다><미식 쇼쇼쇼> 등이 있다. 지금까지 단 두 권을 제외하곤 모두 직간접적으로 음식을 다룬 책들뿐이다. 도서출판 한울에서 시작해, 국내 최초의 온라인 서점 와우북, 현실문화연구, 디자인하우스 등을 거쳐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성경 대표가 특별히 음식에 ‘꽂힌’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계기가 된 책이 새물결에서 나온 <유럽의 음식문화>란 책인데 그게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제가 재밌어하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황교익 선생님의 <맛 따라 갈까 보다>를 읽게 됐죠. 본격적으로 그쪽 책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전후일 거예요. 그때 뿌리와이파리에서 <돈가스의 탄생>이 나오고 청어람에서 <에도의 패스트푸드>라는 책이 나오면서 조금씩 음식 교양서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처음 따비를 시작하던 때, 그는 황교익의 <맛 따라 갈까 보다>의 개정판을 내고 싶었단다. 음식의 유래와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인 이 책은 오래전부터 박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것이다. 저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제안을 건네자 돌아온 것은 단번의 거절이었다. 박 대표는 그대로 헤어지긴 아쉬워 황 칼럼니스트에게 막걸리나 한잔 하고 가기를 청한다. 그렇게 오후 5시경 벌어진 두 사나이의 술판은 새벽 두 시 반까지 계속되고, 며칠 후 황교익은 박 대표에게 새로운 책의 원고를 건네기에 이른다. 그게 바로 <미각의 제국>이었다. 그 후로도 따비는 황 작가의 책을 세 권째 펴낸다.



따비가 낸 또 하나의 화제작인 <조선의 탐식가>는 제목부터 정한 책이었다. 박 대표는 갑자기 ‘조선에도 탐식가가 있었을까’란 질문과 함께 ‘조선의 탐식가’란 제목이 떠올랐단다. 하지만 정해진 것은 제목뿐, 알맞은 저자를 찾고 컨셉을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선 성리학에 ‘식치(食治)’라는 개념이 있었어요. 결국, 유교도 종교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심지어는 찬 가짓수까지 규제했던 거예요. 그런 내용을 다 배치했더니 말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나온 책 <조선의 탐식가들>은 많이 나가기도 했고 주요 일간지들도 리뷰를 낼 만큼 반응도 좋았어요.”

무엇보다 지난 한 해는 먹방, 쿡방이 뜨거운 반응을 얻은 한 해였다. 그에 따라 ‘음식 인문학’에 대한 반응이 높아져 책 판매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게 한다. 이런 예상에 그는 다소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

“음식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기보다는 기존 다른 영역의 인문사회과학책들을 보던 독자들이 음식 쪽도 보게 된 것 같아요. 먹방쿡방 보는 시청자들과 음식인문학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겹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1인 출판사의 입장에 대한 그의 진단은 사탕처럼 달콤하기보다는 한약처럼 쓰다.

“작은 출판사들이 경쟁력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은 자기 착취를 하면서 버티는 거거든요. 사람 쓸 것 안 쓰고, 한두 시간 더 일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거예요. 자영업자라는 측면에서 전 출판사나 치킨집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다소 암울한 진단을 내린 박성경 대표. 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언제 그랬냐는 듯 열정적으로 올해 출간 계획을 말했다.

“좀 갑갑한 사회과학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데, 제3세계에서 농업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거예요. 또, ’일본 라멘‘을 다룬 책이 곧 나올 예정이에요. 처음에 ‘지나 소바(중국에서 건너온 면 요리라는 뜻, ‘지나’는 일본이 중국을 낮추어 부르는 말)’였던 라멘이 일본의 정치사회적 인식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역자분이 우리 출판사의 <대한민국 치킨전>을 읽고 그 책의 ‘일본 라멘’ 버전이 있다면서 직접 번역을 제안해 오셨어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음식 이야기가 모이는 도서출판 따비. ‘음식’이라는 수틀 위에 다색 다양한 씨실과 날실로 수를 놓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 판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정교해져 갈 것이다. 작지만 강한 거인인 따비의 활약을 통해 보다 풍성해져 갈 음식 담론의 장을 기대해 본다.


취재 : 주혜진(북DB기자)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덕후 기관사' 박흥수 "기차, 근대의 포문을 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