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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11. 2016

돈 관리 전문가 박미정이 '경제보건소'를 꿈꾸는 이유



매달 월급날, 통장에 누가 빨대라도 꽂아놨나? 월급 내역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각종 결제대금이 빠져나가고 나면 통장은 텅 비어 있다.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말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만 쓰고 사는데도 통장에 찍힌 카드 결제금액을 보면 월급과 함께 영혼이 몽땅 사라질 것만 같다. 꼭 카드 값을 내기 위해 일하는 것 같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돈이 모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비생활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문제인 것 같기는 한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우울하다.

<적정 소비 생활> 저자 박미정은 돈 문제로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돈이 부족한 이유를 진단해주고, 적정한 소비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도록 코치해주는 ‘돈 관리 전문가’이다. 저자가 타인의 돈 문제 해결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저자 역시 ‘대인배 코스프레’ 하며 신용카드를 마구 써댄 탓에 신용불량과 개인파산까지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그런 뼈아픈 경험 후에 저자가 얻은 교훈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문제라는 것, 그리고 욕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이 우울하고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자신을 볼 줄 모르면 ‘소비는 지갑 털리기’와 다름없다는 저자의 뼈아픈 교훈을 읽다보면, 스스로의 소비습관이 어땠는지를 따져보게 된다. 자기 삶의 연비를 알면 돈에서 자유로워지는 삶이 가능하다. 바로 ‘불안이 사라지는 돈 관리’ 비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Q 경제교육협동조합 푸른살림 대표로 강의와 라디오 방송, 가계부 소모임까지 바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푸른살림은 어떤 곳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돈 문제, 그리고 돈 문제 때문에 생기는 불안을 상담하는 곳이에요. 돈이 많으면 은행에 가면 되는데 돈이 없을 때는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하잖아요. 그럴 때 저희가 있다는 거죠.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경제교육인데요, 워크숍을 통해서 돈 관리를 직접 체험해보는 활동이에요.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돈 관리를 잘 하고 있는 분들이에요. 관리는 잘 하고 있는데 상대적 불안이나 박탈감 때문에 교육을 들으시고요. 오히려 관리가 잘 안 되는 분들, 경제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분들이 안 오시는 게 문제죠.

Q 경제교육에서 체험활동을 한다는 게 생소하게 들리는데요, 일반적 재무상담이나 재테크 교육과는 달라 보여요. 기존 교육과 다른 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경제교육 프로그램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얘기만 하거든요. 답을 정해놓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 얘기하면 소통이 안 되죠. 저희는 여러 사례들을 알려주면서 자기만의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얘기해요. 그런 점에서 다른 교육과 차별화된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교육은 실천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습과정을 통해서 자기 삶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그런 체험 위주의 교육을 하는 이유는 자기를 볼 수 있게 하려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하는 교육의 특징이에요. 돈 문제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서 각자 판단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해요.



"알뜰한 게 합리적이다? 합리적 소비는 자기한테 필요한 소비"

Q 금융회사 FP(재무설계사)로 일을 하면서 금융 시스템의 허상을 알게 됐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회사도 그만둔 걸로 알고 있는데,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금융회사에서 근무할 때 저와 계약한 고객이 갑자기 이민을 가면서 상품을 해지했어요. 그래서 고객이 손해를 보게 됐죠. 해지하는 경우에 원금을 거의 돌려받지 못하거든요. 저도 굉장히 마음이 안 좋았는데, 그 고객이 ’혹시 미정씨가 손해 보는 건 없느냐’고 묻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회사 지점장님은 어떻게든 상품 유지시키라고 얘기하는데 그때 결정이 명확해졌죠. 지점장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금융 매커니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구조 안에 있는 한 구조에 따라야 하는데, 나를 걱정해주는 고객을 다치게 하면 안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뭘까 고민하게 됐어요. 

금융회사에서는 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의 지출내역을 묻지 않아요. 보험에 들라고만 하죠. 그리고 대부분 미래가 불안하니까 보험에 든단 말이에요. 문제는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보험 들었다 결국 깨고 이런 게 반복되는 거죠. 그런데 이게 고객 잘못만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출내역을 묻기 시작했어요. 지출내역을 보니까 저축할 여력이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떤 상품을 선택할 것인지는 나중 문제고, 저축할 여력을 만드는 게 우선이겠다 싶었어요. 그러려면 돈을 어디에 쓰는지 알아야겠더라고요. 

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 때문이었어요. ‘혜택이 나한테 왜 올까’ 이것부터 생각하는 게 상식 같은데, 그런 감각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고 오히려 혜택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러야 해요. 이게 경제지, 비용을 치르지 않았는데 대가가 크다는 것은 누군가 다른 비용을 다른 곳에서 치렀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거든요. 그런 감각을 키워야 균형을 맞추고 살 수 있죠. 나만 혜택을 얻고 살 수는 없잖아요.

Q 협동조합에서 하는 여러 활동 중에서 ‘경제보건소’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프로젝트인지 궁금해요.  

경제상담이 정말 필요한 분들은 자발적으로 오지 않아요. 저희가 사회적 프로젝트를 하면서 취약계층과 상담을 했는데, 그분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분들은 대화상대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그래서 상담할 때 계속 하소연을 들어드리고 마지막 회기에 지출내역을 써보는 활동을 해요. 하소연을 털어놓고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면서 계획했던 게 경제보건소였어요. 작년에 시범사업을 했는데, 직원복지 개념의 프로젝트로 회사 안에 경제보건소를 만들어서 급한 문제가 터지기 전에 예방해보자는 거죠.

경제적 응급상황은 부채거든요. 응급상황이 되기 전에 재무상담 할 곳을 만드는 거예요. 경제보건소를 상설 서비스로 만드는 게 올해 목표 중 하나예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라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곳을 모델로 삼았는데, 금융복지상담센터는 대부분 부채상담이어서 재무상담을 할 여유가 없더라고요. 경제보건소를 만들어서 평소에는 재무상담을 하고, 응급시에는 부채문제를 상담할 곳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운영하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봐요.

Q 현명한 소비를 하려면 자신의 소비습관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내가 하는 소비가 필요소비인지 욕망소비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소비습관을 알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기대와 선망은 나쁜 게 아니죠. 선망을 위해 노력하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선망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커지면 문제예요. 그 간극을 메우려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게 돈이죠. 선망을 다른 말로 하면 욕망이잖아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욕망을 바로 보고, 정해진 예산 내에서 (욕망을) 꾸준히 채워나가면 엉뚱한 사고는 줄일 수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터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소비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물어봐야죠. 마케터와 소비자는 지갑을 두고 전쟁을 하고 있는데 소비자가 항상 지고 있다면, 왜 지고 있는지 볼 필요가 있겠죠. 그런 점에서 소비자가 무력하지 않은가 싶어요.

Q 누구나 합리적 소비를 하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가격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구매하려고 하는데, 실은 그것도 합리적인 소비는 아니라고 하셨어요. 왜 그런가요? 

합리적 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은 하는데, 합리적 소비가 뭐냐고 묻고 싶어요. 사람들은 가격 비교해서 알뜰한 소비를 하는 게 합리적 소비라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 합리적 소비는 자기한테 필요한 소비예요. 합리적 소비든 올바른 소비든 자기답지 않은 소비가 문제라는 거죠. 합리적 소비의 기준은 내 욕망이 아니라 내 현재 여력이어야 해요.

Q 여력 이상의 소비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적으로 꼭 소비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과소비하지 않아도 늘 돈이 부족하잖아요. 

제일 시급한 건 욕망재가 아니에요. 필수재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게 생각보다 큰 문제예요. 사람들 욕망이 커지는 것도 돈이 부족한 이유지만, 사회적 소비는 거부하기 힘들다는 게 핵심이에요. 생각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어느새 고정비용이 엄청 늘어날 수 있어요. 고정비용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출이 될 수 있죠. 물론 다시 들여다보면 해결의 여지는 있지만요.



"돈이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문제"

Q 여력 이상의 소비, 기준 없는 소비가 자본주의 시스템과 맞물렸을 때 더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은데요, 생각하지 않는 소비습관의 근본적인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런 소비습관을 연애에 비유해요. 남자친구가 너무 잘해주는 거예요. 잘해주니까 남자친구가 계속 필요해지고, 그러다보니까 남자친구가 떠나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남자친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돈이 없으면 도저히 못 살 것 같거든요. 자본이나 화폐 의존도가 너무 높아요. 물론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많아요. 하지만 돈이 아니어도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 해요.

특히 생존과 관련한 능력은 스스로 키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빨래도 하고 요리라도 해보자고 얘기한 거예요. 내가 아이폰은 만들지 못하지만 밭에 있는 식재료로 요리는 할 수 있거든요. 정말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생존 기술은 각자 키우고, 타인의 귀한 노동이 집약된 물건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해요. 사랑하는 조카한테 얼마를 줘도 아깝지 않지만, 몸으로 놀아줍니다.(웃음)

제가 조카들한테 사랑을 표현하려고 선물을 많이 바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동생한테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필요한 건 없고 한두 시간 놀아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선물을 주는 대신 같이 놀아요. 또 제가 우스갯소리로 ’집은 세 번 굴러서 모든 곳에 닿아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그럼 걸레 하나로 청소할 수 있어요. 간단한 것들은 매일 매일 손빨래로 해결하고요. 이런 실천으로 절감하는 생활비도 생각보다 많아요. 실천할 수 있는 걸 찾아서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소비습관을 바꾸기 어렵거든요.

Q 돈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소비원칙’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불편한 소비란 어떤 소비인가요? 

현대사회는 결제를 점점 더 편리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 소비 전에 생각할 시간을 갖기 어렵거든요. 그렇다면 결제과정을 어렵게 만들자는 거예요. 사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는 훈련을 하자는 거죠. 전 신용카드 안 갖고 다니고 모바일 결제도 차단해놨어요. 현금만 조금씩 갖고 다니니까 구매를 결정할 때 만족스러운 구매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죠. 구매가 망설여진다면 그건 안 사도 돼요. 그리고 가능하면 현금 쓰기를 권해요. 현금 쓰면 손해를 눈으로 확인하잖아요. 무조건 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불편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으면 사는 게 자기다운 소비겠죠.

Q 소비습관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M밸런스 노트’라고 하셨는데, 어떤 프로그램인지, 기존의 가계부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우선 수지균형을 맞추는 훈련을 해야 해요. 내가 얼마 버는지, 얼마 쓰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게 많거든요. 수지균형의 기준은 수입이에요. 수입을 관리해야 소비 정도를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지출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요. 과거지출인 대출, 현재지출, 미래지출이 예정돼 있는 저축으로 나눠서 비율에 맞게 정해놓고 소비하는 훈련을 해요. 무조건 결산만 하고 돈 많이 썼다고 반성하는 게 아니라 기준을 정해서 소비하는 게 중요해요. 그 훈련을 위해 만든 게 M밸런스 노트 프로그램이에요.

대부분의 회계는 예산 대비 결산을 하는데 가계부는 예산이 없어요. 대충 뭉뚱그려서 결산을 하는 게 아니라 항목별로 예산을 정해야 해요. 예산 안에서 소비를 하다보면 적정한 기준이 생기거든요. 그럼 그 예산이 적정소비의 기준이 되는 거예요. 예산을 맞추기 위해 장부를 쓰는 거지, 어디에 돈 썼는지 반성하려고 가계부를 쓰는 게 아닌 거죠. 그게 첫 번째 취지이고요, 두 번째는 ‘돈과의 대화’를 하자는 거예요. 돈을 많이 썼는지, 적게 썼는지는 너무 상대적인 개념이에요. 돈 흐름을 보면서 관리하는 거죠. 현재 흐름이 어떤지를 알아야 계획도 세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장부의 효용가치죠. 그런 가치 없이 장부만 쓰면 걱정만 늘죠.

Q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늘 돈이 부족해요. 그래서 미래도 삶도 불안하게 느껴지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누구나 늘 돈이 부족하죠. 왜 부족한지를 생각해야 해요. 반성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돈이 이유를 따져보자는 거예요. 제가 협동조합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돈이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문제라는 걸 알았어요. 그 태도를 성찰해보면 돈이 부족한 이유가 보인다는 거죠. 돈 문제로 접근했지만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자기를 봐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를 발견하면 욕망과 필요에 맞게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어요. 우선순위에 맞게 소비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돈을 잘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중심의 질서를 만들어서 소비하면 만족감도 높아지고 불안도 관리할 수 있어요.



취재 : 정윤영(북DB객원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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