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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11. 2016

김석희의 돌직구 "표절사태는 출판사의 근친상간 결과"



김석희. 그는 국내 번역계의 정점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가수로 치자면 조용필, 배우로 치자면 이덕화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후 전문 번역가로 나서면서 지금까지 300여 권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런 그에게는 늘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땅으로 뛰어 내려와 소설가라는 새 옷으로 바꿔 입었다.

김석희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놀기도 좋아했지만 우등상을 놓쳐본 적은 없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줄곧 서울에서 지냈다. 소설 ‘이상의 날개’로 신춘문예에 등단한 이후 오직 번역에만 몰두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 등 굵직한 번역서들 모두가 그의 손을 거쳤다. 이랬던 그가 예순의 나이를 넘기며 24년 만에 소설집 <하루나기>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번역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금, 다시금 소설가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좀 지겨워졌다고 해야 할까. 끙끙대면서 창작을 하는 게 스스로 불편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1998년에 소설 쓰는 일은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었어요. 그 이후로 40년 만에 제주로 귀향을 했는데 소설의 손짓이 느껴지더군요. 마치 애인처럼 다가와서 같이 놀자고 꼬드기던데요.(웃음) 결국 그 손짓에 넘어가게 된 거죠. 소설은 제게 마치 팜므파탈 같은 존재예요."

소설집 <하루나기>는 그가 조금씩 써온 소설을 모은 책이다. 대부분 1970년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독재정권부터 6월 민주항쟁, 긴급조치 등 희망보다는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던 시대를 담았다. 잘못된 정치로 인해 개인의 삶이 망가지고 관계가 무너졌던, 희망이 거세되고 삶의 의욕이 산산이 바스라졌던 시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기록했다. 답답하지만 결국 견뎌내야만 했던 그때 그 시절을 김석희 작가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담히 그려냈다.

문단과 언론에서는 소설가로 돌아온 그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석희 작가는 얼마 전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에게 친필 편지를 받았다며 해사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유종호 선생님은 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심사위원이셨어요. 이번에 나온 소설집을 보시고 직접 편지를 보내셨더라고요. 어느 신기료 장수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는데 그가 삶의 의욕을 잃고 죽기 위해 강물에 빠졌던 거예요. 결국 헤엄을 치고 나와서 살았는데 사실 그는 젊은 날 수영선수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죠. 한번 익힌 글 솜씨는 없어지지 않으니 언제든 계속 쓰라는 격려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앞으로 소설을 쓰다가 게을러지면 이 편지를 보고 자극을 받으려고요."





24년 만에 발간한 소설집... "소설은 팜므파탈 같은 존재"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설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문학 말고 다른 것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너무 일찍부터 책에 빠져버린 것이 이유라고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무작정 제주를 벗어나고 싶었다. 늘 갇혀 있는 느낌이 들어 답답하고 울적했다. 불현듯 화가 났고 매사에 불만이 늘었다. 사춘기 시절을 달래는 방법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유년시절 내내 문학에 대한 꿈과 열정의 불씨를 키웠고,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것도 문학을 하기 위해서였다. 


제주를 떠난 청년 시절의 김석희는 이제 손주를 둔 할아버지가 되어 제주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성격도 변했다. 젊은 시절에는 주변의 지적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다. 누군가의 실수를 쉽게 용납하지 못했다. 쉽게 들끓고 분노했다. 관계를 끊어버리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뾰족한 모서리가 닳는 것처럼 모난 구석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그만큼 삶을 대하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김석희 작가의 대답 곳곳에서는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날선 시선이 예리하게 느껴졌다. 특히 문학과 권력에 대한 비판이 그러했다.

"요즘 문단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누군가는 문단 자체가 협소한데 권력이랄 게 있느냐고 반문하죠. 하지만 권력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창작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권력 문제이거든요. 창작 없는 평론은 있을 수 없어요. 그렇게 보면 평론가는 2류인 셈이고요. 한국은 묘하게도 출판사와 평론가들이 앞장서서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작가를 양성하고 있어요. 저는 이것이 늘 못마땅해요. 미국의 문학평론가 조지 스타이너는 ’평론은 소설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나라 평론가들도 이런 마음을 새기면서 2류답게, 좀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는 실제로 1989년에 나온 자신의 첫 창작집에 평론가의 해설을 넣지 않았다.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그였지만 문학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매섭고 날카로웠다.

"대형 출판사가 책을 내면 거기에 소속된 평론가들은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잖아요. 저는 이러한 근친상간의 결과가 바로 얼마 전 벌어졌던 표절사태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아직 후진국이에요. 경제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문화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출판과 관련하자면 우리는 아직 영세한 수준이에요. 출판사가 독과점을 하고, 작가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거죠."

김석희 작가는 문학과 관련하여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설명했다. 문학의 기본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에서였다. 그가 이러한 입장에서 바라본 요즈음의 한국문학은 지나치게 훼손된 점이 많다. 문학을 빙자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글을 쓴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독자 없는 문학은 당연한 결과라고도 했다.





"문학은 단순한 이야기 아닌 예술... 한국문학, 점점 천박해져"


"문학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히 문자를 사용하는 예술이에요. 그런데 요즘의 한국문학을 보면 점점 천박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대학에서도 문예창작학과를 없애버리거나 아예 스토리텔링과로 바꾸더군요. 문학이 하나의 문자예술로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상업적인 도구로서 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타협을 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지식인 특유의 냉담하면서도 올곧은 시선이 미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정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그의 입에서는 ’꼰대’, ’조선일보’, ’노무현’ 등의 단어가 첨예하게 등장했다. 그의 대답을 한 마디 한 마디 들을 때마다 자꾸만 의자를 앞으로 당길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제게 묻더군요. 조선일보를 구독하느냐고요.(웃음) 저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들 눈에는 보수주의자처럼 비치나 봐요. 우리 또래에서 보자면 제가 굉장히 진보적이지만 아들 세대가 보기에는 또 아닌 거예요. 일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놓고 아들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들은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더군요. 저도 젊었을 때는 그런 추상적인 가치를 중요시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다 보니 현실적인 결과물을 더 중요시하게 됐어요."

지금의 정치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했다. 그는 대뜸 말하기 싫다고 했다. 빨리 세월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이쯤에서 이야기를 끝내기는 싫었다. 손자를 둔 할아버지로서 앞으로의 세대가 겪을 정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청했다. 그의 입이 조금씩 열리는 듯했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인문학적 교양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에게 자기가 살아온 얘기도 하고, 읽었던 책 이야기도 하고요. 그게 바로 소통이거든요. 대학을 나오고 안 나오고를 떠나서 책으로 쌓을 수 있는 것 이상의 교양은 없다고 봐요. 책을 읽어야 대화도 되고 문법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잖아요. 케네디, 오바마, 처칠, 이 사람들을 보세요. 성공한 정치가들은 대개 말을 잘해요.”

술을 마셨다면 욕부터 나왔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인터뷰를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니 그가 ’꿈’이라는 단어를 참 자주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놀랍기도 의아스럽기도 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꿈이라는 단어를 이토록 자주 뱉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가 쓰고 싶은 소설과 그가 그리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를 무조건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끝맺지 않은 그의 이야기가 몹시 기다려진다.





취재 : 윤효정(북DB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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