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저자 박준 인터뷰
다소 이른 휴가였다. 휴가지를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기차를 타고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 종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부산이 가장 그럴듯했고, 종일 호텔에 머물며 바다를 보는 것이 이번 휴가의 목표라면 목표였다. 홀로 떠난 휴가였기에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도 덤으로 주어졌다. 그 흔한 맛집 하나 찾아보지 않았고, 남들 다 둘러 본다는 관광지도 둘러보지 않았다. 느지막이 깬 아침에 조식을 먹고 올라와 종일 침대 위에 누워 책을 읽거나 바다를 보는 식의 느릿한 일상을 반복했을 뿐. 찬찬히 숨을 고르며 읽기에 좋은 책은 박준 시인의 것이면 더없이 충분했다.
오래되어 지금은 없는 게 아닌, 오래됐지만 지금도 있는 풍경 그리고 싶어
휴가를 다녀오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서울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던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국어 교사 모임에 초청을 받아 부산을 다녀와 그런 것이라 했다. 제일 힘든 것이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하는 거라며 그는 말문을 열었다. “제가 만났던 국어 선생님들은 꼭 시인 같아요. 어렸을 때 글을 쓰셨던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문학에 대한 열정도 크고 다들 좋으신 분들이죠. 계속해서 공부하려는 분들이니까요. 강의라고 해서 주제가 있었던 건 아니고, 시 얘기와 교육 현장에서의 괴리감들에 대한 어려움과 고충을 나눴어요. 시가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 힘드실 텐데 저 역시 답은 못 드렸어요. 그저 ‘고생이 많으십니다’라고 말씀드리는 정도였죠. 저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하셨던 분들 앞에서 시를 쓴답시고 무언가를 조언할 계제가 되지 않아서요.“
그는 이처럼 학교 선생님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방송, 강연, 사인회 등 독자와 만남을 자주 갖는다. 얼마 전 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년)의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사인회에는 백여 명이 넘는 독자가 찾아와 진풍경을 만들었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3시간 내내 사인을 하는 동안 개그우먼 박지선 씨가 팬을 자청하며 긴 줄을 기다리기도 했다고. 이제 그의 이름 앞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유명세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인기를 실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평정심을 잃게 될까 자중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는 SNS에 올라온 자신의 평을 볼 때도 칭찬은 빨리 스쳐보지만 비판은 오래도록 머무른다.
최근 SNS에서는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첫 시집에 비해서 비교적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간편하게 볼 수만은 없었는데, 시집에 대해 갖고 있던 이런저런 생각 때문이었다. 시집이 보여줬던 서정의 풍경들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이를테면 시집에서 말하는 아픔이 정말 시인의 것인지 좀처럼 확신이 들지 않았다. 명백하게 읽히는 슬픔이 독자를 너무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번 산문집을 통해 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살피면서 이러한 의구심이 모두 오해였음을 깨달았지만.
“제 시집이나 산문집에 나오는 가난이나 슬픔의 풍경이 막연하게 오래된 과거 같지만 분명 제 세대의 이야기예요. 옛날 노래 중에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노래에 보면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라는 가사가 있어요. 이건 저희 부모님보다 더 오래된 세대의 이야기죠. 제가 이것처럼 쓰지는 않지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아이가 하얀 컵라면을 혼자 끓여 먹는 장면과 겹치게 쓸 수는 있어요. 시대는 다르지만 찔레꽃을 먹는 것과 컵라면을 먹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일이니까요. 아이가 혼자 배고픔을 참으며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는 일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무엇이 변했느냐보다 무엇이 변하지 않을 거냐를 쓸 거예요. 오래된 것은 맞지만 오래되어서 지금은 없는 것이 아니라 오래됐지만 지금도 있는 풍경을 그리고 싶어요.”
그의 시집이나 산문집을 보면 오래된 서울의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첫 시집에는 청파동 연작이 있는데 청파동은 그가 시를 쓰기 위해 주로 걸었던 곳이다. 글을 쓸 때 ‘그분이 잘 오시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시의 경우에는 보통 한 편을 완성하는 데 서너 달은 걸린다고. 보통 취재를 많이 하는 편인데 고시원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고시원에 얼마간 들어가 살기도 하고, 병원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있기도, 폐지 줍는 할머니를 따라다닌 적도 있다. 적극적인 취재를 하거나 인터뷰를 하기보다 그저 오래 머물며 관찰을 하는 것이 그만의 취재 방법이다.
이번 산문집을 보면 조금 놀랄만한 일화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그가 수능시험을 보기 하루 전, 아버지가 찾아와 집안 형편을 이유로 출가할 것을 권유했다던 이야기가 그렇다. 그의 부모님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분들은 아닌 듯 보였다. “그때는 정말 짜증 났어요. (웃음) 내일이 수능 시험인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와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죠. 중학교 2학년 때에는 동네에 잘 되는 간판 집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안 가고 거기 취직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기도 하셨고요. 간판 기술 배우면 안 굶고 사니까요. 요즘 들어서는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 가슴도 아프고 그래요. 당신이 겪는 어려움은 괜찮지만 자식들의 어려움을 보는 건 싫으셨던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네 앞가림은 네가 하고 살라며 대학에 들어갈 때도 입학금만 내주셨어요. 대신 뭘 하라고 강요도 하지 않으셨고요. 제가 시를 쓴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다행히 지금의 제 모습을 좋아하세요. 특히 아버지는 제게 있어 가장 좋은 독자 중 한 분이시죠. 글을 써서 보여드리면 평을 해주시는데 제가 힘주어 쓴 것들을 잘 알아보세요. 이번 산문집에도 ‘그해 경주’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아버지가 그걸 보시고는 ‘그냥 끄덕인 게 아니라 한참 끄덕인 거야? 그냥 끄덕였으면 별로인데 한참이라서 좋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독자와 비슷하게 살며 틈나는 대로 글 써야 진실된 걸 쓸 수 있어
그가 평소에 시적인 것이라 느끼는 것은 친근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말이다. 그저 일상적인 말인데도 그것만을 떼어놓고 보면 시적일 때가 많다고. 그는 진귀한 풍경이나 화려한 곳이 아닐지라도, 이를테면 아주 비좁은 방일지라도 친한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특히 그의 글들은 주로 과거의 특정한 장면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듯 보였다. “기억은 힘보다 마음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기억할 때에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내성적이고 소심한데 뒤끝도 있어서(웃음)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는데 속으로 잘 담아두거든요. 상처도 잘 받고 성격상 자꾸 되새길 때가 많죠. 아직도 생생하게 저를 힘들게 하는 기억도 있지만 반대로 좋은 기억도 똑같이 현재형으로 되새겨요.”
박준 시인은 등단한 지 어느덧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스무 살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면서 스물여섯에 등단을 했다.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맹목적으로 등단을 준비하며 이십 대의 절반을 보냈다. 습작생일 때만 해도 등단을 하고 시집을 내면 삶이 크게 달라질 줄 알았다. 변화에 대한 기대치가 컸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과거의 자신과 비교를 하면 창작자로서는 천지가 개벽할 만큼 달라진 것도 사실. 하지만 여전히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인간관계의 지난함을 겪어야 하며, 매번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하는 등 자신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경치 좋은 곳에서 먼 산 바라보며 신선처럼 쓴 글이 꼭 좋을 것 같지는 않아요. 대부분의 독자가 바쁜 생활에 치이는 가운데 제 글을 봐주시는 것인 만큼 저도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틈나는 대로 글을 써야 더욱 진실된 걸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글을 쓸 때 보편화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잘 쓰지 않아요. 물론 문학에서 새로운 것, 낯선 것, 전에 없던 것, 전위적인 것들은 중요하죠. 다만 저는 그런 걸 못할 것 같아요. 그것을 할만한 역량이 있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는 늘 있었거나 누구에게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하려고요.”
요즘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아버지다. 지방에 강연이 있으면 꼭 모시고 갈 정도로 아버지와 여행을 자주 간다고. 이는 훗날 아버지와 함께 있던 장면을 떠올릴 때, 아름다운 장면을 많이 떠올리기 위해서다. 아버지를 비롯해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과 좋은 장면을 많이 만들어 놓자는 게 그의 최근 관심사. “앞으로 어떤 시를 쓸지는 예측하기가 힘들지만 어떤 삶을 살지는 조금 예측할 수 있어요. 일단 노동은 계속할 거라 생활과 글이 분리되는 순간은 오지 않을 거고요. 살다 보면 어떤 시기에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피하려고 해도 잘 안 되고, 피하다가 오히려 잘못되기도 하고, 나쁜 일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때가 있거든요. 삶에 다가오는 것들을 외면하고 싶더라도 너무 피하지는 않으려고요. 계획도 너무 빽빽하게 세워두지 말고 힘을 좀 빼면서 털레털레 걸으면서 살고 싶어요.”
인터뷰 자리에서 마주했던 그는 잘나가는 유명 작가라기보다 그저 ‘시 쓰는 동네 오빠’ 같았다. 어딘가에서 한두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푸근한 인상과 나직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반면 집에서 글을 쓸 때면 반드시 외출복을 입는다는 그였다. 시를 읽는 가상의 수신자를 생각하면 편한 옷을 입고 삐딱하게 앉아서 쓰지 못하겠다는 것.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순간조차 자신의 시를 읽어줄 누군가를 위해 예의를 갖춘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시에 품고 있던 일말의 의구심이 눈 녹듯이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대중을 사로잡는 그의 시가 단순히 쉽게 읽히는 것에 있지 않았음을, 그의 글들은 시인 박준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닮은꼴이었음을 깨달았다.
글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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