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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26. 2017

영화평론가 이동진 “독서에 정답은 없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인터뷰



닥치는 대로 읽고 끌리는 대로 읽는다. 오직 재미있게.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독서법이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5년 넘게 진행 중이고 영화와 책에 관한 저서도 꽤나 출간했다. 소장 중인 책만 1만 7천 권에 달한다. 소문난 애서가이자 장서가인 그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어떻게 다 읽을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가진 책을 모두 읽지 못했다. 어떤 책은 완독을 했는가 하면, 어떤 책은 10페이지만 읽고 만다. 하나의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관심 있는 다른 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는 시집을 읽고 침대 옆에서는 소설책을 읽는 식이다. 그가 소장 중인 1만 7천 권의 책 중에서는 그마저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그것도 독서냐고 묻는다면, 이것도 독서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닥치는대로 끌리는대로 오직 재미있게'에 충실한.


그는 최근 자신의 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예담/2017)을 통해이렇게 독특하고 색다른 책 읽기의 방식에 대해 논한다. 오로지 완독만을 인정하는 독서 문화나 재미없고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부순다. 심지어 책을 '읽는 행위' 뿐만 아니라 책을 고르고 모으고 간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서'일 수 있단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만나면 그냥 좋은 사람이 있잖아요. 만나서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그러는데 남는 것도 없고, 하지만 만나면 좋단 말이죠. 그냥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거거든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말하는 좋은 독서란 우리가 지금껏 믿어왔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지난 7월 12일, 서울 한남동 북파크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앞둔 이동진 평론가를 만났다. 자신만의 독서법을 터득하기까지 누구보다 많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그는 책과 책 읽기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인터뷰 중간에도 행사 후 구입할 책들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이런 과정 역시 그가 말한 ‘독서’. 가까이서 그의 독서를 지켜보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책 읽기의 과정에서 ‘실패’는 굉장한 경험”


Q 서문에서 책을 읽고 소유하고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서 평론가님이 꿈꾸는 연대를 조금 더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어요. 전작들과는 달리 책과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책 읽기라는 것은 제 평생의 가장 큰 오락이었어요. 직업과 관련된 일을 제외하면 제일 많은 시간을 쓴 게 책 읽는 거거든요. 많은 분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와 책에 대한 취향과 습관들이 어긋나서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가이드와 구체적 리스트, 책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Q 1부에는 책과 책 읽기에 관한 작가님만의 이야기를 담았고, 2부에서는 <씨네21> 이다혜 기자와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3부에는 500권의 추천도서 목록을 소개하고 있고요. 중간에 인터뷰 형식으로 책과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방식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총 3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사람들이 1부가 제일 중요하고 2부는 이야기, 3부는 하나의 부록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2부와 3부가 결코 1부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3부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어요.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을 최대한 정제해서 쓰고 고른 거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리스트 자체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해요.


2부에 이다혜 기자와 이야기 한 부분도 그 자체가 부가적인 인터뷰로서의 가치만 있는 건 아니에요. 말 잘 통하는 사람, 책을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유의미한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강의라든지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대화의 맛’이라는 게 있는 것 같고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2부의 형식은 1부와 다른 것이 중요하죠. 2부나 3부 역시 1부만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좋은 책과 독서법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독서에도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세상에 길이 단 하나 밖에 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종교의 영역이 아닌 이상 거짓된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목적 독서를 평생 지속할 수 있다고 한다면 목적 독서도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목적 독서의 결정적인 단점은, 인간은 목적 독서를 지탱할 만큼 그렇게 강인하지 않다는 게 핵심입니다.


제 책에서 초지일관 드리는 말씀은 단기간에 뭔가를 준비하기 위해 목적 독서를 할 수는 있지만 평생 습관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만나면 그냥 좋은 사람이 있잖아요. 만나서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그러는데 남는 것도 없고, 하지만 만나면 좋단 말이죠. 그냥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거거든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Q ‘많은 실패를 했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이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아마 지금도 실패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나만의 독서법을 갖출 때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는 게 중요한 이유는 사람마다 맞는 독서법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 독서법을 누구도 알려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인생에서의 교훈이나 학습이라는 게 시행착오잖아요. 한 번 해봐서 안 되면 다른 것을 시도해서 돌파하는 것이 시행착오의 메커니즘일 텐데 그렇다고 보면 상대적으로 시행착오를 좀 줄일 수는 있겠지만,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완전히 달라지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어쨌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실패하는 것도 굉장한 경험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러다 보면 결국 독서는 제 길을 찾아갈 것이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서점 설렁설렁 다니며 이책 저책 들여다보는 것도 독서”


Q 최근 독서 관련 TV프로그램이나 개성 있는 독립서점, 새로 생긴 문예지 등 책을 접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어요. "책을 읽는 모든 과정이 독서다"라고 말씀하셨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독서 문화의 한계를 넓히는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당장 이곳, 한남동 북파크에 와서도 ‘참 좋네’라고 생각했어요.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으면 진짜 자주 갈 것 같아요. 사람들은 독서의 범위를 너무 좁게 보는 것 같아요. 책을 처음부터 보기 시작해서 마지막 장을 딱 덮고 나야, 그것을 독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300페이지의 책을 150페이지 밖에 못 읽었다고 하면 실패라고 생각하시지만, 전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단 10페이지를 읽어도 실패한 게 아니에요. 10페이지만큼 읽은 거죠. 독서의 기준을 완독에 둬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수없이 실패하고 괴로워지는 거죠. 저 역시 중간에 안 읽은 책들이 허다하게 많지만, 그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만큼의 독서를 또 한 거니까요.


서점에서 설렁설렁 다니면서 ‘뭐 나왔지?’하고 이책 저책을 보는 것도 독서예요. (기자 뒤쪽의 책장을 가리키며) 저기 지금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사진 1001>이 보이는데 나갈 때 저걸 살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행위 자체가 이미 독서의 한 부분인 거예요. 표지를 본다는 것도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한 페이지를 보는 거고요. 표지에는 그 책의 가장 핵심적인 무언가를 담아서 제목이나 부제, 책의 이미지로 표현을 했을 텐데 그걸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서라는 거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독서를 좋은 습관으로 갖고 싶다면 접촉면을 넓히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이런 공간이나 책에 관한 행사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 모든 것이 다 너무 중요해요. 책을 읽고 나서 어떤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독서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에 대한 접촉 행위를 넓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5년 넘게 진행 중이신데요. 청취자인 동시에 경력이 상당한 독자들과 소통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독서 문화의 변화들이 있나요? 혹은 독자들의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인상적으로 본 것은 적극성이 훨씬 커졌다는 것. 이건 독서에만 있는 게 아니고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소설 같은 걸 볼 때도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그 작가가 나오는 북콘서트나 강의 하는 곳을 간다거나 이런 활동이 적었죠. 최근에는 웬만하면 독자와 만나는 행사를 다 기획하다보니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저자나 책이 있다면 관련 이야기를 또 듣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전 그런 것도 독서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책을 다양하게 사랑하는 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그렇거든요. 예전에는 감독이나 배우의 이야기를 TV로 봤지 직접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를 보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웬만한 영화들이 다 GV를 하니까요.


Q 도서 시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책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시기도 했습니다. 동감합니다만, 사실 책에 대한 비평 문화에서도 개선여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많아요. 칭찬 일색인 ‘주례사 비평’를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요. ‘주례사 비평’에 대한 견해를 여쭙고 싶습니다.


일단 주례사 비평이라는 이야기를 영화에 적용해서 저에게 물어본다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왜냐면 제 직업윤리랑 관련이 되어있고, 반드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고요. 그런데 이건 책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고 저는 문학평론가가 아니고 영화평론가예요. ‘빨간 책방’을 하고는 있지만 원래 직업이 아닌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어떤 문학 작품이 나올 때 현장비평가로서 계속 팔로우업 하면서 그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 안 좋은 책인지를 대중을 상대로해서 설득하거나 알려주거나 해설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영화와 책의 다른 점이 있어요. 소설은 늘 다뤄주는 누군가가 있거든요 그런데 비소설은 아니에요. 문학상도 있고 언론에서 다뤄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비소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책들이 너무 많아요. 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그쪽이 더 안타깝거든요. 1년에 4~5만권이 나온다는데, 아무리 많이 읽어도 10분의 1인 4천 권도 못 읽는데 굳이 책을 비판하는 것에 제 한정된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는 세상에 묻혀있는 좋은 책에 관해서 말하거나 강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영화는 완전히 다르고요. 저 개인의 특수성. 독자에게 다가가는 경로의 특수성. 이런 것 때문에 좋은 책을 혹은 어려운 책을 매개해주는 게 더 중요한 임무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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