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Jul 26. 2017

김진명 “2025년, 한반도 갑작스럽게 통일될 것”

<예언> 저자 김진명 인터뷰




소설 <싸드(THAAD)>(새움/ 2014년)를 통해 한반도의 사드 배치와 미ㆍ중 갈등을 예언했던 소설가 김진명이 3년 만에 신작 <예언>(새움/ 2017년)을 내놓았다. 1983년 소련 공군 소속 ‘수호이 15’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대한항공 007기가 격추돼 탑승자 전원이 숨진 ‘KAL 007 피격사건’이 소재다.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추측이 있었지만, 결국 한국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작가는 미소 냉전의 시대 강대국의 힘에 눌려 어떠한 저항도 복수도 하지 못했던 무능력한 나라와 그 시대를 소설의 무대로 삼는다. 그리고 이 사고로 동생을 잃은 ‘지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복수를 의미를 짚어낸다.


이 소설은 동생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한 한 개인의 여정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남미 카우사운동, 베를린장벽 카프대행진, 나비작전 등을 거쳐 고르바초프 회담과 김일성 주석 회담 등 반공주의 역사적 활동을 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일련의 사건의 마지막에 남북통일을 둔다. 물론 소설에서 그것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다만 작가는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문’의 입을 통해 남북통일을 2025년이라 예언한다. 한반도의 역사와 현실, 국제적 역학 관계 등을 소설의 주제로 삼아온 작가는 34년전 발생했던 한 사건으로부터 우리의 현실적인 과제인 남북통일의 가능성을 점치고자 한 것이다.


KAL 피격사건, 구 소련 해체 단초 됐다


Q <예언>에서 ‘KAL 007 피격사건’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 소설은 두 사람의 복수 이야기인데요. ‘지민’은 여동생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서 직접 킬러를 죽이겠다고 나선 것이고, ‘문’은 그 사건의 근원이 되는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고요. KAL기가 격추된 날 뉴스에 전두환 관련 보도가 먼저 나왔다는 것은 이 나라가 나라도 아니라는 말이죠. 너무 길들여져서 복수할 줄 모르는 우리 한민족을 생각해보려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계속 당하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체념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큽니다. 국가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것에 단호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를 축출한 사례처럼 대내적으로는 잘하지만, 대외적으로 강한 자들에게 덤비지를 못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횟수가 700회가 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이웃한 두 나라 사이에 이런 차이가 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Q 이 사건을 조사하고 소설을 쓰고 완성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남아있다면요?


모두 해소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팩트를 조사해서 쓴 것입니다. 그동안 수십, 수백 가지 소문이 전 세계를 떠돌았어요. 블랙박스로는 알 수 없었지만 관성항법장치인 조종장치가 소련에 의해 회수되면서 사실이 드러났어요.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관성유도장치에 두고 비행을 해야 했는데 방위각에 두고 비행하는 바람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던 것이거든요.


Q 작가의 말에서 “KAL 007 피격 사건이 의외로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붕괴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쓰셨는데요. 이렇게 판단하신 근거는 무엇인가요?


소련은 KAL 007기에 유도착륙을 지시했습니다. 일본이 도청한 파일에 이러한 기록이 있었지만, 미국은 ‘유도착륙’을 빼고 이 사건을 발표했습니다. 발표에 ‘유도착륙’이라는 말이 있었다면 소련은 적법한 절차대로 했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뺌으로써 소련은 민항기를 쏜 악의 제국이 되어 버린 거예요. 역사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미국이 그런 수법을 쓴 것이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소련을 규탄하는 강한 흐름이 생겼어요. 전세계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붙인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붕괴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론 미국의 공격에 대해 소련이 당당하게 대처를 못했어요. 유도착륙이었다는 것을 내놓아야 했는데 소련은 피하기만 했어요. 소련 내부적으로도 민항기를 격추시킨 세력과 그에 규탄하는 세력 사이에 투쟁이 있었고, 그 결과 세계와 보조를 맞추는 마일드한 스타일의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죠. 그가 개혁 개방을 추진하고 공산당 해체를 선언했으니까, KAL기 사건으로 말미암아 소련이 해체된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죠.




‘왜 침략을 숙명으로 알고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이 출발점


Q 지민이라는 인물은 개인적인 복수에서 출발하였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세계 속에 놓인 한국의 현실에 눈떠가는 인물입니다. 지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나요?


소설은 KAL기 피격 사건을 모티프로 했지만,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 등에 침략을 당하고도 숙명으로 알뿐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물음이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유교때문이라고 봅니다. 유교 자체가 위에서 압박하고 마구 누르고 억압하고 착취하고 심지어 목숨도 뺏는 문화인데, 500년 동안 거기에 길들어 있다 보니, 당하고 사는 것이 숙명이라 생각하고 분노하고 복수하려 하지 않거든요. 지민이라는 존재는 한국인이 잊고 있던 복수라는 것을 하겠다는 마음을 캐릭터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Q 지민은 복수 대상인 KAL 조종사 오시포비치를 만나지만 그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지민이 그를 용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민은 처음에는 오시포비치를 죽이면 끝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어떤 해악의 뒤에는 그 행위를 저지는 인간이 아니라 더 거대한 힘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지민은 개인에 대한 복수보다는 거대한 힘에 복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에요.


Q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소설 속 ‘문’의 모델이 됐습니다. 이 점에 대해 “역사를 신의 섭리로 보는 분들이라는 점에서 집필 내내 고민했다”고 쓰셨습니다.


저는 종교를 대단히 싫어하기 때문에 이것을 소설에서 다루면 안 되었지만, 한국과 공산주의를 소재로 글을 쓰면서 객관적 사실까지 모른 척 하는 것 또한 역사 왜곡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문선명같은 종교인은 당시에 전직 대통령, 수상, 언론인 등 500여 명을 데리고 모스크바로 들어갔거든요. 팩트를 없는 것이라 할 수는 없었어요. KAL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는 소련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기는커녕, ‘소련 전투기’라는 표현도 못하고 제3국 전투기라 할 정도로 나라 전체가 비겁했어요. 그 상황에서 문과 같은 사람들이 남미나 베를린, 모스크바에서 반공산주의 활동을 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당시에 행동한 그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Q 소설 제목처럼 남과 북의 통일을 ‘예언’하기 위해 KAL 피격 사건이라는 먼 길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5년에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어떤 근거에서 2025년이라고 보셨나요?


엄밀하게 말하면 남북통일은 단계별로 하는 것이 맞고, 그것이 서로에게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제가 봤을 때 서로 준비해서 이루는 단계별 통일은 안 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많은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미루거나 반대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2025년은 짧다면 짧고 멀다면 먼 미래예요. 우리 의식 속에서라도 2025년을 통일의 기점이라 설정해둔다면, 방법론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감각으로, 2025년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지면서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싸드 문제, 미국도 중국도 포기해선 안 돼... 위기 클라이맥스는 넘겨


Q 한반도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강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곳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남한과 북한의 주체적인 통일이 가능할까요?


강대국과 이해관계가 연결돼 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우리예요. 미국, 중국이 반대하면 통일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겁한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통일은 우리 의지에 달려있고, 우리가 준비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으면서 남북통일은 미국이나 중국에 달려 있다거나 심지어 통일이 싫다고까지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남북통일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남과 북이 합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직한 가치와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체제로의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겉으로 봐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이 되더라도 실제로는 북한 사람들이 나라를 끌고 나갈 공산도 큽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500만 명, 1000만 명 내려와서 선거하면 자기네 대표를 뽑을 거예요. 정치라는 것은 투표인데, 북한 사람들 결집력이 훨씬 세다고 봅니다. 북한 사람들이 내려왔을 때, 돈도 없고, 여기 사람들이 거칠게 대해서 푸대접받으면 자기네 대표를 투표에서 뽑을 거예요.


이렇듯 남한 사람들이 생각했던 통일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이 어느 정도 세계 평균 국가로 가면서 경제 개발도 하고 자기네끼리 어려움도 극복했을 때 통일하는 것이 서로 좋겠지만, 지금 그렇게는 안 되는 것이죠. 소설에서 예언한 것처럼 2025년 통일이 된다면 갑작스럽게 되는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죠.


Q 이제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 국민도 많습니다.


인간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차원의 하위단계의 삶만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더 높은 차원의 삶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이죠.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랜 시간 함께 살았어요.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냉전 때문에 우리 뒤에 있던 강대국이 적대적이라서 분단이 된 것이고 지금껏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한 나라, 한 사회, 한 민족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세에 의해 찢긴 상처를 아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은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소명이에요. 또한 현실적으로 북한이 잘 살면 괜찮은데, 수많은 인민들이 고난을 겪고 있는데 우리만 잘 사는 것 자체가 악일 수도 있거든요. 역사적 관점에서나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통일은 우리의 역사적 소명이자 개인적인 책무 같은 것입니다.


Q 2016년 7월 13일 우리 정부의 싸드 배치 발표 이후 작가님의 소설 <싸드>가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싸드 문제가 차후 어떻게 풀려야 한다고 보시나요?


미국과 중국, 두 나라와의 관계를 모두 살리는 쪽으로 나가야죠. 미국은 우리 안보의 핵심축이고 우리 기술의 공급원이에요. 우리는 주로 미국에서 나온 기술을 가공해서 발전시키잖아요. 미국과 교류를 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7백 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니까, 사드 때문에 중국과 관계를 끊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고민스러운 부분이죠. 지금은 사드 위기의 클라이맥스는 지나갔다고 봐요. 우리가 미국을 택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고, 여기에 대해 중국도 한국과 적을 질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요.  제 소설을 읽고 좀 더 미리 준비했다면 이런 큰 혼란에 빠지지는 않았겠죠.


Q 작가님께서는 소설을 통해서 한반도의 역사와 사회 정치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세계관이라고 할까요. 소설을 통해 일관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인간의 삶이 인텔리전스가 진화하는 쪽에 이바지하는 것이에요. 인텔리전스는 지구에서 수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이 죽고 나면서 생긴 것인데,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의식이나 문화, 역사, 가치를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에요. 어느 민족이나 사회나 국가, 어느 개인이나 가치는 다양하다는 데에 있지 틀린 쪽에 서 있다거나 맞는 쪽에 서 있다는 식으로 성적을 매기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이 남과 다르다는 데서 확고한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데 한국은 이것이 굉장히 약해요.


제가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이유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지나치게 압박받아서 꼬여있고 변형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제대로 내면을 회복하도록 하고 싶어요. 역사를 다룸으로써 한국인 스스로가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떳떳한 역사가 있으면 당당한 법이거든요. 중국의 춘추사관이나 일본의 식민사관이 우리나라 역사를 망가뜨렸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이 먼저 우리의 역사를 망가뜨렸거든요. 올바른 인식에 도달하는 길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죠. 텅 빈 가치관에는 돈만 들어가 있고, 외형적인 껍데기만 존중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문제이니까 그런 점을 소설에서 짚는 것이죠.




글 : 신양희(북DB 객원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 원문 보기



▶ 북DB 기사 더 보기

무라카미 하루키 “자유로울 것, 그것이 가장 중요”
소설가 황석영 “소설도 제조업, 시장 무시하면 안 돼”
지금은 공채시즌...인사담당자 100명이 밝히는 ‘채용의 법칙’은?

▶ 북DB 페이스북 바로 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