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그림은 그저 너무나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은 사회상을 반영하며,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힘껏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수많은 이야기들로 향하는 비밀통로를 친절히 일러줄 책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아름다운 그림 가운데서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 ‘미술 감상’은 더 이상 어려운 무언가가 아니라, 알차고 신나는 여가를 책임질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그림은 생각 외로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일상을 조망한다. 대중도 친숙하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책을 여러 권 집필한 베테랑 미술평론가 이주헌과 법의학자 문국진이 함께 그림 속의 음식을 해부하는 책을 썼다. 이름하여 <풍미 갤러리>. 미술평론가와 법의학자의 콜라보레이션이란 점에 눈길이 간다. 게다가 요새 한창 ‘핫’한 음식 이야기라니 거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푸줏간에 걸린 고깃 덩어리에서 죽음을 읽어내고, 요리하는 부엌이 그려진 풍속화의 의미를 밝혀낸다.
한편 김홍도의 그림에서, 신윤복의 그림에서 조선을 만날 수 있을까? 동아시아 음식의 역사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사학자 주영하가 23컷의 풍속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음식사에 대해서 보여주는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라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먹는 장면을 촬영하듯 포착한 23컷의 풍속화를 통해 문자기록이 알려주지 않은 ‘또 다른 조선’을 생생히 복원해냈다.
그림과 경제, 그림과 역사.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하는 영역은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사를 전공하고 다수의 경제사 학술서를 집필한 성균관대 송병건 교수는 <비주얼 경제사>라는 책을 통해 인류가 거쳐 온 경제사의 흐름을 탐구한다. 매 장마다 중심이 되는 그림에 대해 저자가 수수께끼를 던지고, 그림 뒤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풀어가며 경제사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식으로 전개된다. 거시적 영역이라 생각해 온 경제가 의외로 그림이란 예술 속에 스미어 있다는 점에 의미가 싶다.
한편 ‘화가들이 이야기하는 역사적 사건들’이란 부제를 단 <역사 앞에 선 미술>은 프랑스 역사학자 니콜라 마르탱과 엘루아 루소가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스페인내전, 제1~2차 세계대전, 베를린 장벽 붕괴, 9.11테러까지 현대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해당 그림을 중심으로 설명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강자에 의해 서술된 것으로 알려진 역사도 예술가들의 시선을 거치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가능해진다.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주요 명화들을 통해 만나고 싶다면 일독할만한 책이다.
그림은 예술가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모델과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림 속에 등장한 무수한 모델들, 그들은 화가에게 있어 무수한 영감 제공처였으니 말이다. <그리다 너를>은 15~19세기에 활동한 화가와 그들의 모델 18쌍을 선별해 예술가들의 삶과 그에 밀접히 연관돼 있던 모델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라파엘로와 마르게리타, 보나르와 그의 아내 마르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작품을 보고 싶은 이라면 한번 참고해 보자.
그림과 그에 어울리는 책 속 문장을 덧대어 소개하는 <그림과 문장들>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가령 클림트가 그린 차분하면서도 내면의 고집을 감추고 있는 듯한 소녀 그림과 함께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 속 문장을 덧대어 읽는다거나, 19세기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와 함께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 속 한 문장을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림과 잘 어울리는 문장과 함께라면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