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Mar 23. 2016

수학 유통업자 박경미 "민주시민 능력, 수학에서 비롯"

"왜 수학을 배워야 해?" 이렇게 묻는 아이에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목이니까 열심히 해야지. 일단 대학만 들어가렴. 그 후론 수학 따윈 싹 다 잊어도 좋아." 솔직한 것이 때론 최선의 방책이긴 하지만, 뭔가 폼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답하면 폼이 좀 날까. 


"현대사회는 단순반복적인 일보다 창의적이고 복잡한 업무가 늘어나고 있어. 정보를 모아 해석하고 분류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수학적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지. 그러니까 앞으로 훌륭한 인간으로, 뛰어난 직업인으로 능력을 발휘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학이 매우 중요하단다." 

왜 우리 교육은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 걸까. 그 가운데 유독 수학은 더 불친절하다. 계산을 잘하거나 여러 공식을 외워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 평가기준이 되다 보니, 학생들은 수학과 점점 더 멀어진다. 배워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는데, 어렵기까지 하니 어쩌겠는가. 너도 나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홍익대 수학교육과에서 미래의 수학교사들을 가르치며 세 차례 중·고등학교 수학교과서를 집필한 박경미 교수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수학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까?’ 하는 것이다. 수포자라는 ’일상어’는 뼈아픈 반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학이 우리 삶에 밀착된 친숙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수학자로서는 드물게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부지런히 칼럼을 써오고 있다. 2014년에는 MBC ’100분 토론’ 진행자를 맡아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그간 펴낸 <수학비타민 플러스>와 <수학콘서트 플러스>는 수학 분야 베스트셀러로 유명하다. 10년 만에 나온 신간 <박경미의 수학N>도 학생들이 수학을 공식의 무의미한 암기와 적용이 아니라, 수학과 영향력을 주고받은 문명과 함께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집필했다.


Q 책 제목이 "수학N"이 아니라 "수학 도슨트"가 될 수도 있었다고요.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게 "수학 도슨트"였어요. 미술관에서 그림을 소개해주는 도슨트처럼 수학을 풍부하게 감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이 제목과 경합을 벌이다 최종으로 정해진 게 "수학N"이에요. 수학을 여러 분야와 연결시키는 ’수학 and’, 수학을 중심에 놓는 ’수학 네트워크(Network)’, 수학에 대해 서술하고 묘사하는 ’수학 내러티브(Narrative)’, 수학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의 ’수학엔’, 임의의 정수 n으로 시작하는 수학 증명에서의 ’수학 n’ 등 다층적인 의미를 포괄하고 있어요. 수학이 문학, 영화, 미술, 사회,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과 어떻게 교감하는지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타깃은 어디에 두고 쓰신 건가요?

중고등학생들을 주요 독자로 두고 썼어요. 요즘 창의, 융합 인재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제 책이 수학과 인문학이라는 융합적 소재를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을 거예요. 요즘 학교에서도 알고리즘화된 수식에서 벗어나 수학을 풍요롭게 여러 분야와 관련짓고자 하는 교수학습법이나 평가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거든요. 이 책이 이런 교육의 방향과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이번 책을 쓰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요?

’수학’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려웠어요. (독자들은) 책을 폈을 때 일단 수식이 나오면 덮어버리거든요. 수식을 최소화하고 대부분 말로 풀어 썼어요. 조금 어렵다 싶은 부분은 박스에 색깔을 넣어, 건너뛰고 읽어도 이해하는 데 지장 없게 했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수학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갑갑해하는 독자들도 있어요. 독자들의 눈높이와 기대치가 다르니까 적정 수준을 맞추는 게 쉽지가 않아요.



"우리나라 교육은 선행 문화만... 후행학습 인식전환 시급"

Q 수학을 인문학의 영역인 문학, 영화, 미술, 철학, 사회, 역사와 접목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셨는데요. 다른 분야보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많던데요.

아무래도 영화가 가장 대중적인 분야라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골드바흐의 추측’을 소재로 한 ’페르마의 밀실’은 MBC ’무한도전’에서 패러디도 했고 유재석씨가 추천해서 그나마 좀 유명해졌죠. 이 영화에 나오는 문제들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게 많아 부담 없이 풀어봐도 좋을 듯해요.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한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용의자 X의 헌신’이라든가, 맷 데이먼이 16진법의 아스키코드를 이용해 미국항공우주국과 교신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마션’ 등의 영화를 책에서 소개했어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수학 영화가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Q 학생들의 은어였던 ’수포자’가 이젠 일상용어가 됐어요.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가장 큰 요인은 수학의 엄격한 위계성 때문이에요. 수학은 블록 쌓기와 같아서 중간에 공백이 한 번 생기면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가령 중1 때 1차방정식을 놓치면 그 후 온갖 방정식을 다 놓치게 되고, 그러면 함수, 미적분까지 이해 못하게 되는 거죠. 한 순간의 결핍이 영원한 포기로 이어지는 거예요.

Q 수포자를 줄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우리나라 교육은 선행하는 문화만 있지 결손 내용을 보완해주는 기회가 없거든요. 특히 수학은 후행학습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합니다. 중3인데 고2 과정을 배운다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는 풍토에서 중3이 중1 과정을 배우는 것은 용납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허영심을 버리고 실속을 택해야 해요. 중1에서 구멍이 생겼으면 중1로 다시 돌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다음의 모든 과정은 사상누각이 됩니다. 공교육 안에서 부진아 지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학부모님들 또한 선행 학원에 아이를 보내며 체면을 유지하기보다 후행학습을 통해 기본을 다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Q 사실 모든 교육문제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수학 전문가로서 대안을 제시해주신다면요?

현재 입시의 세 축이 수능, 내신, 대학별 고사인데, 내신에서 수학을 폭넓게 주변부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평가가 이뤄진다면 좀 달라질 것 같아요. 문학이나 예술을 전공할 아이들이 고난이도 수학 문제를 푸는 건 시간 낭비죠. 수학 전문 분야로 갈 아이들 말고 나머지 아이들은 평이한 문제들을 통해 수학의 유용성이나 가치를 인식하는 방향으로 수학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상위권 대학에 진입하려면 문과학생들에게도 수학이 너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니까 죽기 살기로 할 수밖에 없죠. 수학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입시에서 비중이 줄어들어야 해요. 다른 과목이 이런 악역을 좀 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Q 외국도 입시에서 우리나라처럼 수학 비중이 높은가요?

미국에서도 상위권 대학에 가려면 AP(Advance Placement : 고등학교 재학 중 미국 대학 수준의 수업을 미리 수강할 수 있는 프로그램)라고 하는 걸 다 듣죠. 고등학교 공식 교육과정에 미적분이 들어 있지 않지만, 3분의 1 이상의 학생들은 미적분을 AP로 듣거든요. 특히 상위권 이공계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은 거의 다 우리 고등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미적분을 해요. 외국도 역시 SAT나 ACT 같은 입시에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우리가 너무 왜곡된 현실 속에 있는 건 사실입니다.



"수학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입시에서 비중 줄어들어야"

Q 결론은 수학적 사고력이 중요하다는 말씀인데요. 우리나라 수학교육도 이런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가야 할 듯해요.

그런 능력을 키워주는 데 수학의 ’증명’이 매우 효과적이에요. 그런데 어렵다고 해서 지금 교육과정에서 많이 약화됐어요. 많이 안타깝습니다. 증명이란 정의나 공리를 바탕으로 한 단계 한 단계씩 연역적으로 추론해가는 것이거든요.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능력이에요. 합의된 건 받아들여 지키고, 논쟁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철저하게 논리적 추론과 합리적 도출을 통해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민주주의 방식이잖아요.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이 사회나 윤리, 국어 같은 다양한 과목에서 토론을 하면서 길러지는데, 이런 능력이 수학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수학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이런 부분이에요.

Q 그렇게만 되면 ’도대체 왜 수학을 배워야 하지?’라는 질문은 사라질 텐데요.

이공계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학생들은 첨단 수학을 배워야 하지만 일반 아이들은 수준을 훨씬 낮춰 쉬운 내용을 음미하면서 그런 류의 사고 능력과 성향을 키우는 식으로 배워야 해요. 그러면 ’수학을 왜 배워야 해?’, ’국문과 갈 건데 미적분 배워서 뭐해?’ 같은 볼멘소리는 나오지 않을 거예요. 국민들 상당수가 입학시험을 보는 순간 ’평생 수학 없는 세상에 살 거다!’라고 저주를 퍼붓잖아요. 그러다가 자식을 낳으면 ’인생에서 수학은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너도 대학 가는 순간까지만 수학을 해다오’라며 해프닝을 벌이잖아요. 수학이 애물단지에, 사교육을 유발하는 주범이며 공공의 적으로 생각되는 게 수학자로서 참 안타까워요.

Q ’수학적 사고력’을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목하면 좋을까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대결이 큰 이슈였잖아요? 바둑의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개수보다 많은 10의 170승이라고 하는데, 도출 근거가 뭔지 따져본다면 좀 더 흥미롭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죠. 뉴스를 볼 때도 꼬치꼬치 따져보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어요. 그래프도 사람을 호도할 때가 많거든요, 가령 실업률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그래프를 보여줄 때 축을 무엇으로 잡는지, 그래프 눈금의 간격을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따져보지 않으면 신문사의 의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죠. 이런 판단이 깨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거고, 깨어 있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겠죠.

Q 수학에 대한 인식을 바꿔줄 수 있는 재미있는 수학 교양서도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수학 지식을 생산해내는 학자보다 수학의 유통업자로 제 역할을 생각하고 있어요. 일종의 ’수학 MD’라고 할까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상품을 가져와 잘 진열해서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 MD처럼, 저도 수학이라는 재료를 잘 가공해서 독자들이 수학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어떤 분야에서건 최고 고수는 놀이처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교육 현실이 워낙 팍팍한지라 ’수학’과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는 어렵지만, 이 책이 수학 놀이터에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이 책을 읽고 나서 수학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수학 교양서가 있다면요?

우선 하워드 이브스의 <수학사>를 추천하고 싶어요.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온 수학의 역사적인 맥락을 짚어볼 수 있어서, 수학을 한층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단 교양서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게 단점인데, 전문적인 부분을 과감하게 건너뛰면서 읽는다 해도 큰 흐름을 짚어내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예요. 두 번째는 마르쿠스 듀 소토이가 지은 <소수의 음악>이라는 책이에요. 소수(prime number)의 신비를 다각도에서 설명해주는 책으로 ’리만 가설’까지 큰 무리 없이 점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취재: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사진: 남경호(스튜디오2M)


기사 더 보기 >>


매거진의 이전글 '벙어리 냉가슴'이 나쁜 표현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