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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22. 2016

'벙어리 냉가슴'이 나쁜 표현인 이유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인권전문가 김민아 인터뷰



이세돌과 알파고.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인공지능과 인간의 만남은 세기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다. 과연 알파고의 등장은 인간을 위협하는 위기의 신호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의 주춧돌이 될 것인가. 인공지능의 진화와 예측 불가능한 두려움 속에서 알파고가 정녕 인간에게 던지는 의미는 혹시 다른 것에 있지는 않을까. 이를테면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와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던져주는 것은 아닐는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말이다.

손가락질 받고 모욕 당해도 참아야 하는 이유? 아프니까.

<아픈 몸, 더 아픈 차별>의 저자 김민아는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 알파고 보다 무서운 판도라의 상자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 상자에는 ’질병’ ’장애’ ’차별’이라는 묵직한 화두가 담겨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에서 인권 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김민아 저자는 10년 넘게 인권 활동에 앞장서 온 인권전문가다. 사실 질병으로 인한 차별은 인권 분야에서도 그다지 주목받는 분야는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체 진정 건 중에서도 1.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렇게 작은 목소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몸을 갖고 태어난 이상 질병과 장애는 결코 비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질병과 장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첫째는 나에게 시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둘째는 그저 두려워서 아예 생각 자체를 피하는 거죠. 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건강과 질병이 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의 영역인지, 그리고 인권으로서의 건강은 무언인지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흔히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도대체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그 지경이야’라고 말해요. 그럼 아픈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죠. ’그래, 내가 야근도 많이 하고 돈도 적게 버는데 운동도 안 하고 잘 먹지도 못 해서 이렇게 된 거지’라고요. 과연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요? 이 대답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문제가 연결되어 있을까요? 집에서 어머니가 아프시다고 할 때에도 집안 상황이 마비되어서 불편하게만 여기고, 이것을 불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머니가 아픈 상황을 두고, 사회나 국가의 시스템이 이렇게 밖에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죠. 저는 이러한 생각의 연장이 과연 어느 지점에서 끊겼는지 알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질병은 일반적으로 아픈 사람 개인의 몫으로 여겨진다. 반면 김민아 저자는 질병과 장애로 인한 차별을 사회적 책임과 국가의 몫이라는 환경적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 국내에서 질병이나 장애를 개인의 책임이 아닌 인권, 사회, 국가 등 환경적인 맥락과 연결 지어 바라본 책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픈 몸, 더 아픈 차별>의 존재가치가 빛을 발한다.

<아픈 몸, 더 아픈 차별>은 그녀가 직접 만났던 이들의 목소리로 생생하다. 공황장애에 걸린 직장인, 에이즈에 감염된 요리사, 당뇨병에 걸린 20대 여성의 사연이 등장한다. 비만으로 인해 퇴사를 해야만 했던 남성, B형 간염 바이러스로 인해 취업에 실패한 20대 여성, 부모님의 정신질환 이력으로 대학입시에서 불이익을 겪었던 이들의 사례도 만나 볼 수 있다. 특정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진료를 거부 당하거나 의도치 않게 병력을 공개 당하고 보험 가입이 거부된 사례도 등장한다.



"진료 자체를 거부 당하는 병이 있는가 하면 그럴만하다고 위로를 받는 병도 있어요. 에이즈에 걸린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럼 안됐다고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요. 병이나 장애가 있는 분들을 만나 보니 병 자체보다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면서 그 ’얼마나’를 한번 쪼개보고 싶었어요. 사실 질병이나 장애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아니잖아요. ’잘 먹고 잘 사는 방법’ 혹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법’ 등과 같은 병의 치료나 회복 단계를 이야기하는 책은 많은데 반해 병이나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말해주는 책은 없더라고요."

김민아 저자는 이들이 들려준 일종의 '질병의 서사’를 통해 장애와 질병이 오직 개인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병과 장애가 생기는 데 있어 사회적 요인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책을 통해 건강과 사회적 불평등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고, 가난과 질병은 한집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아픈 사람의 상황을 혼자서 풀어야 할 개인의 문제로만 돌린 채 일시적인 해결만 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얼마나 공평한 분배구조 안에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삶의 선택지를 갖고 사회참여를 하느냐에 따라서 건강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는 살아가면서 몸이 감내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몸에 대한 평가가 곧 사람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거든요. 저는 그러한 시선과 평가가 누군가에게 방사선처럼 집중적으로 향하다 보면 분명 쌓인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것이 한 사람의 기질과 성향에 영향을 미치고요. 예를 들어 저신장증인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이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작은 키에 위축될 거예요. 그럼 누군가는 ’키가 작으니까 그렇게 자신감이 없느냐’ 묻고, ’자신감이 없으니 늘 하는 게 그 모양이다’라며 다그칠 수도 있어요. 여기서 이 사람이 ’작은 고추가 더 매운 거야!’라고 외치면 버릇없고 건방진 사람이 돼버려요. 그래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일종의 모욕당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상황에 따라 아픈 몸이 예의주시되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박히는 시선을 감당해야만 하는 거죠."

병과 차별, 장애와 모욕을 ’인권’의 문제로 처방하다

그녀는 우리가 흔하게 쓰는 표현에서도 차별의 문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를테면 '벙어리 냉가슴', '꿀 먹은 벙어리', '눈 뜬 장님',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라는 표현이 단적인 예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결정 장애’라는 말을 자주 써요. 저는 장애라는 말을 이렇게 아무것에나 붙여도 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해 봤어요. 과연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골고루 살아가고 있어서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지, 아니면 대놓고 장애를 폄하하는 것일지 하고요. 제 생각에는 그냥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 좋으니까 무심코 사용한다고 봐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인터뷰를 하는데 볼링 점수를 묻는 기자에게 ’장애인 올림픽 수준이다’라고 말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어요. 이처럼 사실 우리 모두 차별에 대해 의식하고 사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그녀는 인권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실 그렇다. 우리가 누군가의 인권을 일부러 침해한다기보다는 그저 잘 몰라서, 혹은 배운 적이 없어서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런 점에서 그녀는 공감도 일종의 ’학습’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권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한편, 그녀는 우리가 먹고살기에 너무 급급한 나머지 인권 문제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사치가 돼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먹고살기 바쁜 사회에서 인권은 사치예요. 그런데 결국 먹고사는 문제 자체가 인권 아닌가요? ’바쁜 게 좋은 거다’라고 어르신들이 자주 말씀하세요. 하지만 우리는 바쁜 것이 왜 좋은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요. 바쁜 게 좋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죠. 먹고사는 것이 부족했던 때에는 일이 많고 바쁜 것이야 말로 최고의 미덕이었으니까요. 더욱이 한국은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남보다 더 괜찮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최상의 가치였어요. 하지만 그 시대의 가치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일은 일대로 하면서 쉬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두고 구성원 탓만 할 수는 없어요. 사회의 정책을 만드는 이들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를 봐야 하기 때문이죠. 한 사회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데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봐요. 그래서 어느 사회의 가치가 좋아 보인다고 했을 때, 그건 시간이 쌓인 퇴적물이지 우리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고 생각의 체계가 멋져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사회 인권의 문제를 두고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만 얘기할 수는 없고요. 다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예요."

김민아 저자는 10년 넘게 인권전문가로서 활동해왔지만 여전히 늘 깨어있기 위해 노력한다. 무슨 일이든 쉽게 판단하려고 들지 않고 무덤덤해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시간이 흐르며 쌓이는 관성과도 싸운다. 그녀는 책을 통해서 아파하는 이들을 향해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섣부른 조언이나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식의 위로는 건네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뜨끔뜨끔하다. ’아프면 내 탓이지’, ’아프니까 차별받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한가운데를 과감히 찍어 내리고 있기 때문일까. 내 삶을 곧추세우는 데만 애를 써오며 무심코 저질렀던 차별에 대해서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픈 몸, 더 아픈 차별>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미심장한 답을 건네고 있었다.


취재: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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