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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18. 2016

북한 전문가 라종일, '경계인' 장성택의 삶을 그리다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정치인에 대한 책을 썼다. 머리 아프고 딱딱한 이야기가 아닐까. 책을 펼치는 순간 그러한 편견은 한순간에 날아간다. 책에서 조명하고 있는 인물이 장성택인 탓이다.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일의 매제, 김정은의 고모부로 북쪽 권력의 최상층에 있던 그는 2013년 12월 갑자기 숙청됐다. 그가 왜 그런 인생의 결말을 맞았는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저자 또한 눈길을 끈다. 경희대, 한양대 등에서 정치학을 가르친 교수이자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해외담당 차장을 시작으로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국정원장 외교특보 등 우리 정부 정보기관의 요직을 두루 거친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인 까닭이다. 동화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라 교수는 소설 기법을 빌려와, 베일에 가려졌던 장성택이라는 인물에 여러 색의 옷을 입혀 <장성택의 길>을 완성했다.
’소설을 읽는 듯한 흥미진진한 전개로 단숨에 읽었다’는 독자평이 많은 이 책, 지난 1월 출간된 뒤 두 달도 안 돼서 3쇄를 찍었다. 라 교수는 ’갈 수 없어 더 궁금한’ 북쪽 사회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Q 부제가 ’신정(神政)의 불온한 경계인’입니다. 여기서 ’신정’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세요.

사람이 한계가 많잖아요. 제일 큰 한계가 유한하다, 즉 죽는다는 거죠. 또 엄청나게 큰 우주에서 자그마한 인간의 위치를 정하기도 힘들어요. 사람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대개 종교를 택합니다. 종교를 통해 영생을 꿈꾸고 자신만의 우주도 찾고 그러죠. 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바로 정치예요. 정치권력이 구원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 좋은 예가 바벨탑의 신화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하느님과 멀어진 인간은 두 가지의 길을 걸어요. 하나는 종교적으로 해결하는 거예요. 기도를 하고 신앙을 통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죠. 또 다른 부류는 사람들의 정치능력에 기댑니다. 바로 바벨탑을 만들어서 하느님과 같은 지위를 얻으려고 한 거죠.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받으려면 정치적인 능력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권력입니다. 정치능력이란 함께 살 수 있는 능력인데 그게 참 힘들어요. 바벨탑이 실패했듯이…. 결국 신정이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신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식이 돼버린다는 겁니다. 북한이 거의 신정사회인 거죠.

Q 신정사회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을까요?

신정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이 신격화되고 권력자가 신과 같은 위치를 차지합니다. 정치권력자는 무오류의 인간이 되죠. 오류가 아무것도 없다는 건 잘못을 저지를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신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비판해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이 되죠. 비판보다는 믿고 따르면 되니까. 북 주민들도 권력을 비판할 필요도, 또 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장성택은 그런 신정사회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으니까 경계인이죠. 어떻게 보면 권력체계의 핵심 일원이지만 달리 보면 거기에 끼지 못하는 겁니다.



김일성의 딸과 결혼한 장성택... 신정(神政)사회의 '데릴사위'

Q ’신정의 데릴사위’라고 하니 생전의 장성택의 위치가 구체적으로 그려지네요. 책은 장성택이 처형당한 시점부터 구상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었을 때 현실적으로 장성택도 끝났다고 봤습니다. 그때 여러 사람에게 ’김정은 정권에서 가장 위협을 느껴야 할 인물은 장성택이다. 1~2년 안에 운명이 결정 나지 않겠나.’라고 했는데 실제로 2년 만에 사형을 당하더군요.

어떤 정보가 있었다기보다 거의 교과서 같은 이야기죠. 2인자는 늘 위험한 자리예요. 집권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거추장스럽고 껄끄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든 제거될 가능성이 있죠. 특히 북한은 권력의 절대성이 엄청나게 커서 훨씬 위험하죠. 게다가 장성택은 권력을 아직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후계자 밑에 있는 2인자였으니 더더욱 위험했을 텐데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누가 저보고 코치하라고 했으면 빨리 달아나라고 했을 텐데….

Q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한번에 죽 읽힌다고 평을 했습니다. 그렇게 몰입도가 높은 건 중간중간 인물의 심리묘사 등 소설의 형식을 차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 형식을 택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제임스 페너로는 "전기를 쓰는 것은 조각과 비슷하다"라고 했어요. 사물이나 일화 등으로 사람의 일생을 재구성해야 한다고요. 그러니 구조나 계층을 분석하는 사회과학만으로는 한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죠. 버지니아 울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사회구조니 계층이니 이념이니 하는데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사람들의 구체적인 야망이나 질투, 애정이나 애착 같은 거다." 어떤 사람의 일생을 사회과학처럼 다를 수는 없잖아요. 그런 까닭으로 저는 사람의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 그렇지만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작품의 객관성이라는 걸 잘 안 믿어요. 객관성은 근대적인 신화라고 할까. 객관적이라는 게 정말 있나 싶어요. 거짓말을 한다든지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건 문제지만, 여러 사실 중에서 어떤 정보를 선택해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가, 또 어떤 역사를 쓰는가 하는 것은 작가 또는 역사가가 결정하는 겁니다. 상당 부분은 개인의 추리에 의존해야 하고요. 그리고 사람의 일생을 재구성하면서 그 사람의 내면까지도 구성하려면 궁극적으로는 쓰는 사람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죠. 책에,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는 않았어요. 내가 상상해서 쓴 부분에 대해서는 밝혔고요.

Q 장성택이 아내 김경희(김일성의 딸)와 결혼 전에 러시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소설 <적과 흑>을 봤다는 부분은 상상이겠죠?

네, 그건 제 상상이에요. 애당초 장성택을 보면서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앵 소렐을 떠올렸거든요. 쥘리앵 소렐도 낮은 신분에서 출세를 추구하다가 죽었잖아요.



"민족이란 책에만 있는 단어인가? 살아 있는 사람이 민족"

Q 전작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도 인상적입니다. 1983년 버마(현재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를 자행해 25년 동안 버마 감옥에 투옥됐다가 죽은 북한 테러리스트인 강민철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가지셨나요?

저는 관심 갖지 않은 사람들이 더 이상해요. 아웅산 테러는 1948년, 어떻게 보면 해방된 1945년부터 이어온 남과 북 갈등의 한 케이스였어요. 북한은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전두환 대통령을 살해하면 남한에서 사회 혼란이 일어나 북의 정치적 자산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고 아웅산 테러도 그렇게 일어난 거죠.

물론 강민철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어요. 그런데 그 범죄가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는 거죠. 그는 남북한 권력투쟁의 희생양이었어요. 역설적인 게 그 뒤에 김일성과 전두환은 친해졌어요. 서로 위대한 지도자니 뭐니 칭찬도 하면서…. 반면 스물다섯 살이던 강민철은 살아온 해와 똑같은 25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간암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 죽었죠.

Q 강민철을 만나보셨나요?

만나지는 못했어요. 제가 1998년부터 안기부에서 일할 때 버마와 정보 교류를 하면서 강민철 면회를 처음 허락받았어요. 버마에 있던 관리가 면회를 갔는데, 아웅산 사건을 벌이고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난 거였어요. 죽었다는 말을 듣고 버마에 찾아갔어요. 시신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화장을 해서 재를 버렸는데 어디에 버렸는지도 모른대요. 감옥에 같이 있던 죄수들을 만났는데 강민철이 결혼 이야기를 하루도 안 한 날이 없대요. 여자 손목 한 번 못 잡아봤다고. 버마에서 돌아오면 결혼을 약속한 처녀가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만 했다면서, 결혼하고 싶다고.

정부에서 일할 때 그를 꺼내보려고 이리저리 많이 알아봤는데 안 됐어요. 남과 북 두 정부 모두 그가 나오는 게 껄끄러웠던 거죠. 감옥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죽도록 내버려두는 게 낫지. 우리가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7천만 한민족이라고 하는데 왜 그 젊은이한테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요? 민족이라는 게 뭐예요? 책에만 있는 단어인가. 살아 있는 사람이 민족이지.

Q 강민철 이야기도 염두에 둔 모델이 있었나요?

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당테스였어요. 작중에서 당테스는 모함에 의해 감옥에 갇힌 후 탈출해서, 자신을 감옥에 집어넣었던 사람들을 한 명씩 파멸시키잖아요. 그 소설을 중학교 때 읽었는데 ’소설이니까 탈출했지 현실에서는 당테스가 감옥에서 죽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강민철이 바로 그런 경우죠. 죽어서 가루가 된 이 사람 이야기를 내가 쓰지 않으면 이 사람은 자기 이야기 한마디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게 되겠구나 싶어서 정말 괴로운 심정으로 글을 썼어요.

장성택도 마찬가지죠. 할 말이 많은 사람인데 말을 못하게 죽여서 없애버린 거잖아요. 저 정도 인물이면 김경희하고의 연애 이야기만으로도 소설이 몇 권 나올 텐데 어디 가서 그 얘기를 맘대로 해봤겠어요? 그 정도 권력을 갖고 그렇게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면 자서전 같은 것도 쓰고, 최소한 재판 과정에서 법정 진술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말 한마디 못하고 죽어버렸잖아요. 권력자들은 참 나쁜 인간들이죠. 사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수많은 에드몽 당테스가 있을 거예요. 책을 통해, 사람에게서 말할 기회를 박탈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교수님과 대화하면서도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권력의 허무함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장성택이 처형된 후에 김경희와 김정은이 만난 장면에서 그런 내용을 담기도 했죠. 그때 김경희가 권총을 집어든 건 사실인데, 김경희의 말은 제가 상상해서 쓴 거예요. 권총을 뽑은 게, 조카인 김정은을 죽이려고 했다기보다는 일종의 발언이었던 것 같아요. 권력의 허무함 같은 걸 느꼈겠죠. 김경희도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는 엄청난 권력자였거든요. 그런데 (김정일이) 죽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너희들의 권력이라는 것도 별게 아니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겠죠.

"나는 다 알고 있다. 이 권력 놀음을. 너희들도 너희가 그렇게 애타게 집착하고 있는 권력을 쥔 채, 권력의 종이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으리라는 것을. 불쌍한 것들! 너희들이 마치 거미줄에 걸려 있는 파리 같구나. 단지 지금 너희들은 그 거미줄이 그렇게 좋아 보일 뿐이다." - <장성택의 길> 268쪽에 실린 김경희의 말



"과거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

Q 책을 읽다보면 김정일과 장성택이 대비되는 인물처럼 보여요.

김정일은 예술가고 장성택은 기업가 타입이긴 하죠. 갈등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둘은 잘 맞는 좋은 콤비였어요. 김정일에게는 장성택이 꼭 필요한 인물이었죠.

Q 김정일은 좀 부정적이고 장성택은 긍정적인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김정일이야 나쁜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뛰어난 정치인이기도 했죠. 책에도 썼는데, 미국 사람들한테 ‘워싱턴에 김정일을 상대할 만한 인물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보다 정치인으로는 더 훌륭했어요. 김일성은 통치 여건이 좋았습니다. 항일독립투쟁을 한 과거도 있고, 뒤에는 소련과 중국이라는 든든한 나라도 있었어요. 그런데 김정일이 나라를 마침내 물려받았을 때는 완전히 거덜이 나 있었죠. 국민은 굶고 있는데 러시아와 중국은 힘이 없고, 반면 남한은 발전하는 한편 미국은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환경에서 북한을 유지했으니까 엄청난 능력이죠.

예술가란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작품을 만들겠다는 자기 의도가 있죠. 그런데 소재들은 자기 의도를 잘 안 따르는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조각가는 대리석이으로 ‘피에타’를 만들어요. 무생물인 대리석에 생명을 불어넣어,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슬픔을 표현한 거죠. 김정일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물려받은 소재들은 전부 그에게 적대적이었어요. 국내·국제적인 환경은 물로 세계 조류까지. 거기에 우리는 권력을 잡는 길이 선거제도로 정돈돼 있는데 북은 그런 제도, 절차가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작품인 현재의 북한을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술가인 거죠.

Q 정치학자로서 현재 북의 정치를 어떻게 보시나요?

우선 북한의 커다란 실패가 권력의 승계를 합리적으로 제도화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사람으로서 한계가 있어요. 지적인 한계, 도덕성의 한계, 가장 확실한 건 육체적인 한계죠. 사람은 늙으면 죽기 때문에 죽으면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제도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북한은 그렇게 못했어요. 그러니까 혈통 속에 권력이 들어 있다는 억지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만이 아니라 우리도 권력승계가 제도화된 게 얼마 안 됐어요. 제 생각에는 1997년 대통령 선거가 결정적인 계기 아니었나 싶어요. 김대중 후보가 이회장 후보보다 1.6퍼센트 더 득표를 했는데 그대로 권력이 넘어갔지요.

그때 제가 김대중 캠프에 있었는데 당에서는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았어요. 설령 우리가 이기더라도 여당에서 승복을 안 할 거라고요. 개표가 잘못됐다느니 트집을 잡고 나올 거다, 심지어는 계엄령 같은 게 내려질 수도 있다고 봤죠. 그런데 개표하다가 자정 가까워서 김대중 당선이 확실시 되니까 이회창 후보 쪽에서 당선축하 화환을 보내오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에 선거에서 이긴 김대중 당선자와 진 이회창 후보가 국회 야당 대표실에서 만났어요. 이회창 후보는 근소한 차로 져서 억울했을 텐데도 축하해주더라고요. 나는 그때가 참 감명 깊었어요. 이겨서 감명이 깊은 것보다 권력승계가 그렇게 합리적인 제도 안에 정착된 걸 봐서요.

Q 책의 마지막 문장이 "과거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입니다. 어떤 뜻인가요?

미국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말이에요. 독재정권이나 권력의 논리는 불편한 과거를 없애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죠. 과거는 블랙홀이 아니니까.



취재:신정임(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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