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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09. 2016

인터뷰어 지승호 "지식인은 세상에 질문하고 기록하는 자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지승호의 말, 말, 말

-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의 지혜는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고 했잖아요. 그런 경험의 암묵지(暗默知)들이 자꾸 버려지고 없어지는데, 일단은 이런 걸 남겨놔야 되지 않겠습니까."

-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고, 그 결과물을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 해줄 때가 보람 있고 신나죠. 이를테면 <신해철의 쾌변독설> 같은 책을 냈을 때는 정말 짜릿했죠."

-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기록을 남긴 사람', 그 정도로 기억해주시면 좋겠죠. 목표는 인터뷰집을 100권 정도 내겠다는 건데, 올해 50권까지 나올 거예요."

[프리즘②] 인터뷰어 지승호의 '셀프 인터뷰'

▷ 지승호는 누구?  본인은 민망해했지만 이 표현을 한 번만 더 써야겠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하지만지승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비정규직 독립 인터뷰 노동자". 그는 지난 15년간 45권의 인터뷰집을 낸 '전업' 인터뷰어다. 그동안 그가 인터뷰한 사람만 줄잡아 300~400명쯤 된다. 인터뷰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암묵지가 불타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겨 기록해두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의 바람은 많은 기자들이 회사원처럼 돼버린 지금, 스스로 '시대의 기록자'로 남는 것이다.

▷ 어떤 책을 냈나  인터뷰집이 아니다. '특강'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그런데 한 독자는 이런 평을 남겼다. "책 제목은 '인터뷰 특강'이지만 제게는 지승호라는 인물 자신에 대한 인터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에 나 역시 동의한다. 지승호의 인터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동시에, '독립 인터뷰어'로서의 그의 삶과 생각을 따라 읽을 수 있다. 책의 요지는 딱 한 줄. "인터뷰어가 되고자 한다면 일단 사람을 만나서 질문을 하고 그것을 기록하라." 질문하고 기록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저자 인터뷰가 다 그렇지만, 이번 인터뷰는 더 긴장이 됐다. 인터뷰 '고수'를 거꾸로 인터뷰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의 책을 소개하는 신간 소개 기사에서 "타짜 앞에서 밑장빼기 하는 꼴 되겠네"라고 엄살을 좀 떨었는데, 그게 정말 솔직한 마음이었다. 긴장 속에 시작한 인터뷰.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상담'과 '인터뷰' 사이를 오고가며 이야기는 흘러갔다. 끝나고 나니 이제 기사로 정리할 걱정이 또 태산. 그래도 뭐 어떠랴. "인터뷰는 대화"라고 그가 얘기했으니까. 즐겁고 솔직하게 대화했으니, 됐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이번이 46번째 책입니다. 기존에 써온 인터뷰집과 성격이 다른 인터뷰 '특강'인데요,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 책을 쓰기까지 많이 주저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고민하셨나요?

저를 노출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에요. 스스로 만족스러운 성과물을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역시 별거 없었네'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죠. 그런 걱정들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이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결과물이 나온 뒤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인터뷰란 뭔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간결산 정도의 의미죠. 3개월이면 정리가 되겠지 싶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나서 더 걸리더라고요.

Q "인터뷰는 연극이다" 등 인터뷰에 대한 여러 정의가 책 속에 등장합니다. 작가님은 인터뷰란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으신가요?

인터뷰는 예술적 감동을 주는 도구일 수도 있고, 재미를 위한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기록이라는 측면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의 지혜는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고 했잖아요. 그런 경험의 암묵지(暗默知)들이 자꾸 버려지고 없어지는데, 일단은 이런 걸 남겨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안에서 또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하고요. 재미와 의미가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재미와 의미가 있는 기록' 이런 정도로 인터뷰를 정의하고 싶어요.

Q "인터뷰어는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 "인터뷰어는 수비수". 인터뷰어에 대한 정의들도 책에 많이 나옵니다. 인터뷰어란 누구인지, 자신만의 정의를 부탁드립니다.

그런 대답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어떤 롤모델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 저는 이 시대의 기록자가 되고 싶고요, 지식인이 바람닭(풍향계)이 돼서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자가 예전에는 지사(志士)나 지식인의 이미지가 강하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치열한 기자들도 계시지만 상당히 많은 기자들이 회사원처럼 돼버린 상황에서, (저는) 지사적인 기록자로 남고 싶은 거죠. 스스로 그런 자의식을 갖는다는 게 웃기는 짓일 수도 있겠지만, (지식인이라는 규정은) 지식의 양보다 태도의 문제일 수 있어요. 계속 공부하겠다는 자세, 세상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기록하겠다는 자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Q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자들은 당연히 인터뷰를 하고요, 작품 취재를 위해 작가들도 인터뷰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전문 인터뷰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요즘은 전문가의 시대인데, 그러다 보니까 자기 분야에만 해박하지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가 얇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은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문 인터뷰어는 르네상스적 교양인이랄까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계속 다양한 분야를 찾아가서 직접 질문하고 듣는 거죠. 저를 저널리스트로 볼 수도 있고 작가로 볼 수도 있는데 그건 표현의 문제죠. 어떻게 불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꾸준히 하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책에 ‘비정규직 독립 인터뷰 노동자’라고 썼잖아요. 저는 ‘전문’이라는 말이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거든요. 지금도 저는 인터뷰가 전문적인 영역일 수 있는지 고민해요.

Q 책에 보면 "토론 프로그램 진행은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이라는 손석희 JTBC 보도본부 사장의 말이 인용돼 있습니다. 작가님은 많은 지식인들이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인터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는데, 작가님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그런 때가 있죠. 그런데 의견이 틀린 건 사실 각오하고 가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나랑 많이 다를 거야.' 그거보다 힘들 때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저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자꾸 얘기가 다른 방향으로 간다 싶을 때죠. 그렇다고 (말을) 끊을 수도 없고 마음이 다급해지죠. 특히 이분(인터뷰이)이 어른이시면 속으로 소리 지르고 싶은 유혹이 막 생기죠. "선생님! 그만 하시고 저도 질문 좀!" 막 이렇게요.(웃음) 그런데 그걸 잘 견뎌내다 보면 그분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돼요. 나중에 '아, 이런 말씀을 하시려고 그랬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만약에 제가 소리를 질렀으면 (인터뷰이가) "너 꺼져!" 그러고 인터뷰 망쳤겠죠.(웃음)



Q 책에서 '인터뷰는 기술이 아닌 태도의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올해 초 문학잡지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 논란이 떠올랐습니다. 신상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듀나 작가에게 기자가 개인적인 신상만 파고드는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됐는데요, 그 사태는 어떻게 보셨나요? 문제가 될 만하다고 보시는지요.

논란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못 보고 그 텍스트만 봤거든요. 인터뷰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라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에 대해서 그런 논쟁들이 많아지면 더 재밌겠죠. 인터뷰 자체가 소통인데, 자기를 다 보여주면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작가도 있고 '나는 작품으로만 소통하겠다' 하는 작가도 있을 수 있거든요. 저는 거기에 맞춰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듀나 작가가 좀 예민하다 싶기도 했지만 저는 그분의 생각을 존중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인터뷰어의 해석이나 개입을 자제하고 인터뷰이의 발언과 인터뷰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문답형 인터뷰 기사를 고집하십니다. 하지만 자칫 방대한 분량과 시시콜콜한 전달이 지루해보일 수도 있는데요,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래서 세상이 얄팍해진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잘 듣지를 않죠. 하다못해 친구 간에 돈을 빌리려고 해도 사연을 얘기해야 하잖아요.(웃음) 그런데 그 과정을 대체로 잘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결론이 뭐야? 너 지금 무슨 얘기 하려고 그러는데?" 하지만 그 결론을 내기까지의 이야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거든요.

Q 작가님은 단행본 종이책을 매체로 선택했습니다. 인터뷰의 호흡도 그것에 맞고요. 그런데 매체로서 단행본 종이책이 가지는 영향력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데, 다른 매체에 대한 고민은 없나요?

고민 많이 하죠. 팟캐스트를 해야 하나, 방송에 나가야 하나 고민들도 많이 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저는 이런 형태(단행본)로 작업하는 게 제일 즐거우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주변에 오프라인 공간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해서 (팟캐스트) 공개방송도 하고, 그걸 녹음해서 올리고, 텍스트화 하기도 하고, 원소스멀티유즈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죠. 예전부터 그런 고민들은 많이 했는데, 사이즈가 커지니까요. 인건비를 보장해줘야 되는데, 팟캐스트를 한다고 당장 수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옛날부터 생각해왔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걸리는 것들이 많아서….(웃음) 언젠가 해야죠.

Q 어떤 직업이든 '아 이 일 참 재밌다. 이 일 하기 잘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전문 인터뷰어로서 그런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고, 그 결과물을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 해줄 때가 보람 있고 신나죠. 이를테면 <신해철의 쾌변독설> 같은 책을 냈을 때는 정말 짜릿했죠. 그런 분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그걸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데, 같이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했던 것들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죠.

Q 여러 인터뷰이들이 지승호 작가님을 평가한 말들이 책 속에 많이 인용돼 있습니다. 긍정적인 평가든 부정적인 평가든, 자신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평가는 어떤 거였나요?

책에 추천의 글을 써준 네 분도 다 고마운 말들을 써주셨고요. 예전에 진중권 선생님이 해주신 얘기도 굉장히 감사했죠. 처음에 인터뷰할 때부터 격려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한국에서는 한 가지 일을 3년만 하면 다른 데에서 연락이 오고, 5년쯤 되면 일가견이 있다고 인정받으며, 10년쯤 되면 대가로 인정받는다." 그 얘기 믿고 했다가 나중에 후회했죠.(웃음) 사실 제가 다른 일을 했으면 이렇게 재밌게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Q 책 속에, 작가님이 인터뷰를 할 때마다 꼭 물어본다는 질문들이 세 가지 있더군요.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당신이 가진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앞으로 더 성취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세 가지 질문을 그대로 다 하는 건 너무 베끼는 것 같고, 하나에 대해서만 답변 듣고 싶습니다. 어떤 질문에 대답하고 싶은지 직접 골라보시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지에 대해 대답할게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기록을 남긴 사람', 그 정도로 기억해주시면 좋겠죠. 목표는 인터뷰집을 100권 정도 내겠다는 건데, 올해 50권까지 나올 거예요. 그거 끝나고 나면 고전 같은 책들도 좀 읽고 싶고, 인터뷰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회과학 단행본을 쓰고 싶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어쨌든 사람에 대해서는 많은 공부를 한 거잖습니까. 사람 사이에서 고민되는 지점들에 대한 책들을 쓰고 싶기도 해요.

Q 만약에 이번 책 내용을 다 날려버리고 딱 한 페이지만 남겨야 한다면, 어느 부분을 남기고 싶으십니까?

표지 뒷날개에 있는 글 같아요. 인터뷰어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잖아요. 편집하시는 분도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나 봐요. 제가 그 글을 날개에 싣자고 한 것도 아닌데, 그 부분이 책을 덮을 때 인상적일 것 같다고 그렇게 하셨어요.

"이전에 장시간 인터뷰를 몇 번 했어요. 지승호 씨는 신뢰로 열려 있는 인터뷰어죠. '저 양반이 사생활을 물어보는 이유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다'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했고, '저 인터뷰어가 나에게 와서 쥐어짜가려고 한다' 이런 경우는 긴장이 되니까 싫은 것이고. 대화잖아요, 인터뷰는." - 故 신해철

고맙습니다. 이 말은 제가 인터뷰어로 받았던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표지 뒷날개에 실린 글

Q 이제 인터뷰를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로서 오늘 자신은 어땠다고 생각하십니까?(웃음)

늘 좀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 가지고….(웃음) 인터뷰이로서는 점수를 많이 못 줄 것 같아요. 53점? 낙제점이요. 뭔가 재밌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못해 가지고.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시죠.

요즘 사람들이 워낙 책도 안 읽고, 책 읽는 사람을 보면 고리타분하게 생각하잖아요. SNS에서 짧은 글로 소통하면서 세상을 다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사회일수록 심층취재가 필요하거든요. 세월호 참사만 해도, 화내고 (감정을) 배설만 해가지고는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정말 치열한 기록들이 많이 나와 할 텐데, 그런 걸 또 읽어주셔야 이분들이 힘을 내서 기록을 할 테니까,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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