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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24. 2016

도쿄의 길에서 '마이너리티'를 만나다



<마이너리티 코뮌>의 저자 신지영은 식민지기 조선의 연설이나 좌담회 등을 살피며 그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흩어지는지를 연구했다. 또한 들뢰즈, 데리다, 푸코 등 서구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그에 대해 고민했던 마르크스주의 이후 한국 사회과학 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는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역사 안에서 코뮌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썼던 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이번에 출간한 <마이너리티 코뮌>에는 연구자로서의 이러한 관심이 많이 반영되었지만, 학술서적 대신에 지난 7년간 주로 일본의 집회와 데모에 참여한 경험과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담았다. 연구자인 그가 일본의 집회나 데모 등의 현장을 찾아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때 그림패 활동을 하면서 옥상에서 집회에 쓸 큰 그림을 공동창작 하거나 판화 등을 그렸어요. 노래 부르고 술도 마시고 밥도 함께 먹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공부였고 우정과 공동체의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연세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수유너머에서 공부를 했어요. 일상의 삶과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사회적인 문제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함께 생각했던 공간이었죠. 그러니까 집회나 데모 현장에 가는 것이 저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일본으로 넘어가서도 이런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했고, 나름대로 해결하고 풀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많이 찾아다녔어요."

일본유학 시절 초기부터 그는 일본어 능력이 충분치는 않았지만, 활동가와 학자 사이에서 편지와 문건을 번역하고,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으로 전달하는 일 등을 주로 했다. 그 역할을 해냄에서 성실한 마음으로 매개자를 자처했던 신지영은 여러 운동가와 연구자와 접촉하면서 현장에 밀접하게 다가갔다.

"사고나 오해 없이 어떻게 잘 연결할 수 있을까, 연결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잘 아는 곳이 아닐 때는 공부를 많이 했죠. 어떤 의미에서 매개자는 사건을 일으키는 존재이지만, 중간의 자리가 특권화되거나 소유권을 주장하면 만남이 어그러질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서로가 직접 만날 수 있을지를 항상 염두에 두었어요."

일본 사회뿐 아니라 미국의 인종문제에 관한 반응과 그 운동의 관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마이너리티 코뮌"이다. 우선 마이너리티는 소수자라 번역될 수 있지만 소수자라는 단어가 주는 오해를 피하고자 ‘마이너리티’를 그대로 살렸다.

"사람들은 소수자를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지 않죠. 물론 마이너리티에는 사람들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포함되어 있지만,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힘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가치를 생각했어요. 그들이 가진 에너지와 삶의 방식이 일상적이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거나 혹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부에 들어가 살펴보면 그들은 세상이 말하는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제시하는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마이너리티, 세상이 말하는 가치와 다른 가치를 제시하는 사람들"

이처럼 세상의 기준에 어긋나 있음에도 어떤 에너지를 생산하는 마이너리티들의 활동을 긍정하면서 그는 이들의 활동공간이나 나가서 싸우는 거리에 마을의 의미를 담아 코뮌이라 정의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일본에서 야숙(노숙) 생활자들의 코뮌을 만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운동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만났다.

"일본은 2008년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일반인이 하루아침에 홈리스가 되었는데, 미끄럼틀 사회라 불렀죠. 많은 사람이 히피처럼 요요기 공원에 살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만났던 이치무라씨나 오가와씨 같은 이들은 그곳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운동을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했죠. 그래서 국가가 대책사업으로 시설에 넣어준다고 해도 그들은 거부하죠.

이들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요. 어떤 존재든 점유할 공간이 필요한데, 이 사람들은 매일 추방당하지만 다시 살 곳을 찾거든요. 힘든 삶이자 약한 고리죠. 그런데 그들이 무너지면 우리도 무너져요.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증명해주기 때문이죠."

2011년 3.11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반(反)원전, 탈(脫)원전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일었다. 저자는 이러한 대규모 시위를 3.11 이후의 문제로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경제공항 이후 2009년과 2010년 일본에서는 반빈곤 운동,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야숙자 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들은 시부야의 미야시타 공원이 나이키 공원으로 사유화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다. 또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라크 반전운동, 40년 전부터 시작된 탈원전, 반원전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3.11 이후 거리는 이미 들끓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일반시민들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 사회당, 공산당의 사람들이 하나둘 밀려 들어왔죠. 일본 사람들도 충격적이었다고 말해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운동이 ‘몇 년 만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들끓었던 거리는 2013년 들어 재일조선인을 겨냥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 특정 인종과 민족에 대한 혐오 발언 및 연설)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왜 사람들이 가졌던 에너지가 파시즘화, 인종주의화 되는지가 저에게는 어려운 문제였죠."

그 시기 일본을 떠나 미국에 1년가량 머무는 동안 경험했던 흑인차별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 숙고하게 만들었다. 흑인들이 백인의 총에 맞아 죽게 되는 일련의 사건 이후 저항하는 시위가 일었고, 이에 저자는 다이-인(Die in : 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것) 시위, 무빙시위 등에 참여했던 경험을 책에 담았다.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는 운동에서 개인은 여러 얼굴을 하고, 계급, 인종, 성, 지역이 다양하듯 서로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목적 때문에 모였지만 특수성에 국한되거나 운동의 방향이 국지적일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그들은 싸워야 할 때 뭉치고 싸워요. 약해 보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법과 싸워야 할 때 법을 이용하고, 공원에서 나가라고 하면 공원 바로 옆으로 이사를 하죠.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싸우는 중이에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시위를 할 때 순간으로 끝났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고, 실패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하죠. 그러나 법적이든 시위와 같은 활동이든 두 가지 모두 같이 해야 하죠. 마이너티리 코뮌은 다양할 수 있어요."



"3.11 대지진 이후 일본 거리, 이미 들끓을 준비 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마이너리티들이 만들어낸 코뮌의 내부적인 문제에도 주목한다. 대안적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고립된 코뮌을 넘어 연대하기를 원하는데 고립은 결국 내부적인 문제를 삭제하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부의 문제가 없다면 코뮌은 만날 필요성이 없어요. 그런데 안에서만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접촉이 필요한 것이에요. 또한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시스템적으로 움직이므로 코뮌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현재의 활동뿐만 아니라 역사적 코뮌도 봐야 하죠. 가령, 위안부 문제, 재일조선인 문제, 이런 문제로 한국의 활동가, 일본의 활동가가 만나기 쉽지 않아요. 그 순간 이쪽의 특수성과 저쪽의 특수성은 역사적 감정이나 기억과 연결되면서 첨예하게 부딪히죠. 그런 만남이 꼭 행복하지 않겠죠. 하지만 불화를 통해서만 내부의 고착되고 고립된 부분을 볼 수 있어요."

마이너리티 코뮌을 만나고 그가 목격한 것을 증언하는 것은 아카이브 작업과도 연결된다. 그는 여러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문제들에 대해 "현재의 증언 아카이브를 만들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글들이 그러한 아카이브의 방법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는 집회나 데모 현장에서 문자화되지 않은 수많은 지식을 거리에서 만났다. 선전지, 선언, 슬로건, 사람들의 외침은 곧 사라져버릴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기록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 책을 쓸 때에도 그는 단순한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논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코뮌이 무엇인지, 코뮌 이후의 문제, 만남의 문제 등을 고민했던 것이다.

"책에서 사실이 중요할 때는 정확히 기록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증언, 공기, 분위기, 선전지 등을 대할 때는 일부러 생경한 번역을 했어요. 아카이브를 만드는 방식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위치도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서 기록될 수 없는 것을 기록하는 것, 번역될 수 없는 것을 번역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책에서 그것을 담아내려고 했죠."

현재 일본의 특정비밀보호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테러방지법과도 비슷하다. 특정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오키나와에 대한 역사기록의 문제, 식민지 전쟁 기록과 같은 것이 국가의 기밀이 되어버리고, 그것을 연구하고 누설하는 사이 누구든 범죄자가 되어버린다.

"그런 자료를 기밀이라고 생각한다면 국가가 강제로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므로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 점점 재판의 형태를 띠게 되죠. 무엇이 사실인가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그런 법이 만들어졌으므로, 역사를 증언하는 것, 현재를 기록하는 것은 중요해요. 따라서 코뮌들의 활동을 아카이브를 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고, 그런 것을 계속 기록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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