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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25. 2016

"국회의원 왜 뽑나? 보스 셋이 가위바위보 하지"

<잡초와 우상> 작가 전원책 인터뷰

                 



요즘 가장 '핫한' 정치평론가다. JTBC 예능프로그램 '썰전'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치 현안을 논하면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바로 전원책 변호사다. '센 입'으로 통하는 그, 글도 거침이 없을까? 역시 그랬다. 

최근 출간한 <잡초와 우상>을 보니 그는 책에서도 호통을 치고 있었다. 다만 이론에 바탕을 둔 호통이다. '전원책의 정치 비판'이란 부제를 달고 정치의 핵심이라 불리는 민주주의를 파헤쳤다. 전체 416쪽에 각주가 676개 달려 있을 정도로 내용이 묵직하다.  

앞서 출간한, 좌파를 비판한 <자유의 적들>, 지식인을 비판한 <진실의 적들>에 이어 이번엔 '시민의 적들'을 밝혔다. 민주주의의 어느 지점에 시민의 적들이 숨어있을까. 인터뷰 내내 강도 높게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책을 읽으면서 잘 잡히지 않던 숨은 그림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Q '적들'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이번 책 제목이 <잡초와 우상>이다.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흔히들 국민을 민초라 부르는데 정확한 말은 잡초다. 이름 없이 고독한 들풀인 셈이다. 이런 대중은 늘 주목받고 자기 의견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하지만 대중의 의견은 누구도 주목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대중은 우상을 찾고 우상에 환호한다. 문제는 대중이 우상이 보여주는 모습만 보고 우상의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우상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의 승리로 똑같이 간주한다는 게 더 심각하다. 그러니까 내가 안철수를 공격하면 안철수 지지자들에게 나는 공공의 적이 되는 거다. 다른 정치인도 마찬가지고.



Q 그런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책 속 주장들이 강렬하다. '민주주의는 허구다'라면서 민주주의를 날카롭게 비평했다. 



민주주의에 관한 오해는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 모든 질병의 처방이 될 수 있다는 착오에서 비롯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 사람들은 '헌법 제1조'라는 노래를 불렀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 왜 국민이 반대하는 쇠고기를 수입하느냐는 말이다. 이는 헌법을 문헌적으로만 해석한 거다. 우리가 선거에서 대표를 뽑았기 때문에 대표가 하는 결정이 우리가 하는 결정으로 의제(擬制 : 본질은 같지 않지만 법률에서 다룰 때는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여 동일한 효과를 주는 일)된다는 걸 모르는 거지. 



Q 듣고 보니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역할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주권자로서 1년 365일 권리를 행사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가 주권을 행사할 때는 딱 한 번밖에 없다. 선거 때 투표소에 가서 내 앞에 놓인 선택지에 도장 찍는 것. 그 외는 기껏 TV 정치뉴스를 보면서 누가 막말하면 욕하는 정도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의사결정은 국민이 한다? 나는 그거 코미디라고 본다. 당장 여기 있는 세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자기가 뽑은 구의원 이름 아는 사람 있나? 나부터도 내가 사는 마포구 시의원이 누구인지 모른다. 구청장 이름도 헷갈린다. 



우리 집 앞에 있는 8미터 도로의 상·하수도가 얼마나 낡았는지 나는 모른다. 그 옆에 있는 전선을 언제 지중화할지 누구 한 사람 나한테 의견을 물은 적도 없고, 누가 언제 어떤 경로로 결정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양화대교 가는 길에 버스중앙차로를 만들 때 기겁을 했다. 수십 년 된 아름드리 나무를 전부 잘라내더라. 그러더니 한겨울에 가로수로 어린 묘목을 심더니 다 죽으니까 봄 돼서 파내고 다시 심더라. 그거 누가 결정한 건가? 그런데 서울시장은 우리 시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시장이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한 걸로 의제돼 버린단 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려면 좋은 대표자, 통치자를 만나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거 코미디라고 본다"



Q 좋은 통치자의 요건으로는 뭐가 있을까?



통치자의 자질에는 지혜와 용기, 균형감각, 결단력, 정직함, 마지막으로 사람을 적재적소에 앉히는 용인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식이 있어야 지혜를 가질 텐데 지식이 없으니까 정치인들이 자꾸 아라뱃길을 만들거나 고가도로를 무조건 뜯어내는 일을 해댄다. 우리나라에서 지도자로서 알아야 할 어젠다가 1000개 정도 된다. 무기 체계부터 군대를 어떻게 통솔해야 하는지, 재정, 화폐금융론, 남녀차별 문제부터 종교의 문제, 하다못해 개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하는 것까지. 리더로서 공부할 게 너무 많다. 그런 공부를 안 하니까 세월호나 메르스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국가 위기 대응력이 그렇게 떨어지는 거다.



Q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큰 결함이 정당에 있다고 본다. 정당이란 정치권력 획득을 위해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뭉친 결사체란 말이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이 정책과 이념으로 모여 있나? 권력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일단 대중에게 인기 있는 사람 중심으로 모이는 거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당시 반대편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 YS와 DJ이니까 이 보스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보스 중심으로 모인다는 건 충성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로 너의 자리를 보장해준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념, 정책 같은 게 필요 없지. 



Q 보스정치의 폐단을 꼽자면?



우리가 원류 대통령제를 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보스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정청협의 혹은 당청협의가 너무 많다. 의회와 행정부가 유착이 돼 당청협의회에서 결정하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된다. 국회가 청와대를 절대 견제 못한다. 그냥 명령에 따르는 거다. 이게 무슨 민주주의인가. 코미디지.



당내 민주주의의 길도 없다. 의사당 안에서 법안 100건을 결정하면 99건은 당론투표를 한다. 4년 임기 동안 자유투표는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당에서 결정하면 그대로 하고, 거기에 반발하면 징계를 해버린다. 그럴 거면 국회의원을 왜 그리 많이 뽑나? 보스 세 놈이 가위바위보 해서 결정하면 되지. 



Q 계속 말하고 있는 이념의 대중화란 뭔가.



보수주의가 뭔지 자유주의, 진보주의가 뭔지를 아는 거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오늘날 범자유주의로 불리고 진보주의는 범집단주의이다. 범자유주의와 범집단주의 이념의 내용이 뭔지를 대중이 공유해야만 민주주의가 성립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요원하고 ‘다수의 폭정’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다수가 광장에 모여 폭정을 한다는 게 아니라 보스가 다수의 눈치를 보면서 거기에 영합한다는 말이다.



Q '썰전'에서 "내가 청와대에 가면"이라고 농담을 하는데 직접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



나는 현실 정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요사이도 충분히 보잖은가. 목불인견(目不忍見),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모습들을 정치에서 보는데 뭣 하러 정치를 하나. 우리 정치가 가면 갈수록 희극화되어가는 게 더 슬프다.



Q 에필로그에서 '민주주의가 반드시 중우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너무 암울한 끝맺음 아닌가.



중우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한 건 정책을 결정할 때 그만큼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뒤에는 과학이 민주주의에 많이 침투해서 세율, 복지 등이 정해지면 정치가 할 역할이 많이 줄어들 거다. 또 점점 세계정부화 돼서 민주주의의 개념이 바뀔 거라고 본다.





"리더가 공부할 것 안 해서 국가 위기 대응력 떨어지는 것"



Q 책에 나온 대로 권력자에 대한 '질문권'이 광범위하게 보장되면 중우정치로 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질문권이란 민주주의로 가는 징검다리의 첫 돌이다. 모든 선출직 공무원은 그들을 뽑아준 국민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 박 대통령도 국민이 세월호 사건 때 일곱 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법률적 책임은 없어도 정치적인 책임은 있으니까. 백악관 출입 기자였던 헬렌 토마스는 '권력자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나는 거기에 하나 더 붙여서 '권력자가 답하지 않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Q 질문권은 책 처음에 있는 '잡초 같은 그들에게 막상 필요한 건 약간의 자존심이다'라는 말과 상통하나.



당연하다. 잡초들은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달성되길 기대하는 게 아니다. 공직자들에게 최소한의 열정, 공적인 마인드, 희생정신 등을 바라는 거다. 요즘 '갑질'을 많이들 하는데 권력자가 갑이 되어서는 안 된단 말이다. 그걸 보고 싶은 게 잡초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Q 전 변호사가 생각하는 정치평론가란?



그 자체가 정치를 하는 거다. 정치평론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정책 분석부터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평론을 하면 좌-우, 진보-보수를 떠나서 모든 정치인을 다 비판하게 된다. 언론도 연구 대상인데, 정치전문 방송도 아닌데 종합편성채널에서 하루 종일 정치평론을 하고 있는 것도 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떼토크'는 안 나간다.



Q '썰전'에 나가서 정치평론을 하는 것도 정치를 하는 건가.



처음엔 '썰전'이 예능 프로그램이어서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이념의 대중화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와 나의 해설로 대중이 정책들을 쉽게 소화하고 사안을 보는 눈을 다양하게 갖게 된다면 진보-보수에 대한 오해도 많이 해소될 거라고 본다. 또 우리 두 사람이 여러 사안에서 대치되는 건 맞지만 다른 시각이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는지 보여주면 앞으로 이념 갈등을 없애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 시간에 가까운 인터뷰 동안 전 변호사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코미디 같다"였고, 그는 모든 사안을 보수주의자의 시각으로 풀이했다. 시종일관 진지했던 것으로 보아 '썰전'에서의 유머러스한 모습은 상당한 노력 끝에 나온 결과물인 듯싶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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