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초등학교 미술시간, 선생님은 미술책 교과서 첫 장에 나와 있는 '항구'라는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라고 하였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열심히 그렸다. 대신 우중충한 색깔 대신, 빨강색과 노란색, 녹색 등을 동원하여 밝고 화사하게 색칠을 했다. 그런데 그림을 추켜든 선생님은 알 수 없는 조소를 보내왔고,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은 박장대소하며 비웃었다. 나는 그 순간, 내 생애에 있어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특별활동 시간. 운동에도, 그림에도, 음악에도 소질이 없었던 나는 도매금으로 문학반에 배치되었다. '어머니'라는 제목을 주며, 선생님은 글을 쓰라 하였다. 나는 한 시간 동안, 별 생각 없이 연습장을 채웠다. 그런데 선생님은 '너 참, 글 쓰는데 소질 있다!'라는 뜻밖의 평을 해주었다. 나는 그때, 무엄하게도 노벨문학상 수상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가가 되겠노라며,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꾸준히 일기도 썼다. 그러나 고교 국어선생님이 어느 날, '문학은 허구이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나는 '허구'라는 말을 거짓이나 위선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가장 진실하고 정직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선택하기로 맘먹었다. 그러므로 철학과에 진학하는 일은 고등학교 시절에 벌써 결심한 사항이었고, 그 후 철학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아이엠에프 시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내 인생 역정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10여 년을 꼬박 매달린 끝에, A4 용지 2,200매의 원고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출판해주는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철학 저서의 저자로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져(?) 원고 청탁까지 들어왔으나,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근 것이다. 물론 양이 워낙에 방대한 데다, 그 방면에 있어 나의 경력이 일천한 때문이라 이해하고는 있다.
그런데 2009년, 누군가가 한꺼번에 출판할 생각 말고, 조각조각 떼어 작품을 내보라고 충고하였다. 그 결과, 단편소설을 투고하여 전남문학 신인상을 필두로 여기저기 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 나의 꿈이자 소원이었던 내 자신의 단독 소설집을 내기에 이르렀으니, 실로 감격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농촌 출신의 베이비부머가 겪었던, 겪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세대와 나 자신의 자서전적 성장 소설이다. 물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가명을 사용했으나, 일부 동네 이름을 빼고는 거의 실제 지명을 채택하였다. 고향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을 표출시킨 것이라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고, 다만 스토리 자체는 허구적인 부분을 조금씩 가미하였다. 괄호에 넣어 설명하기도 하였으나 진한 사투리를 많이 사용한 것 역시, 작품성을 높이기 위한 충정이라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