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아랫놈
가게 방에 앉아있던 김씨가 이제 막 변소에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가는 태민을 불렀다.
“너도 인자 오 학년이나 되고 또 장남인 게, 에미 속도 알아야 쓸 것 아니냐?”
“........”
“우리가 인자 조까 먹고 살 만해졌제, 너 일곱 살 때까지만 해도 단칸방 하나 웂어 갖고, 온 동네를 갈고 댕기다시피 했지야. 웂는 집일수록 아그덜이 많다데이, 문 염병 났다고 고로코 많이 깔 것이냐? 느그 압씨가 생기는 대로 나라고만 헌 게...”
태민을 시작으로 하여 두 살 터울로 태어난 아이들. 올해 태어난 남자아이가 육 남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 같긴 한데.
“춥고 배가 고파서 그랬는가 어쨌는가, 아그덜이 하도 빽빽 울어 싼 게, 큰방에서 좋아 헐 것이냐? 까탈만 잽히먼, 나가락 헌다. 참! 배고픈 설움도 크다고 허제마는, 막상 말로 잘 디가 웂으먼 어찔 것이냐? 그지 코딱지만 헌 방구석에 적을 때는 시 명, 많을 때는 다섯 명이서 한테서 자야 헌 게, 어찔 때는 궁데이 하나 돌릴 디도 웂단 게는...”
어느 겨울날. 한 집 건너의 큰집에서 제사상 차리는 걸 도와주던 김씨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단다. 울음소리가 나는 것도 같고, 누가 부르는 것도 같았다. 단숨에 달려와 방문을 열어 제치는 순간, 백일도 지나지 않은 딸이 이불을 차 버린 채 윗목까지 올라가 있었다. 벽에 머리를 찧으며 발버둥치는 아이의 입술은 파래지고, 눈동자는 뒤집힌 채로.
“아따! 그때는 아무 정신이 웂드라. 방이 을마나 추왔는고, 웃목에 떠논 쫏빡 물이 다 얼어 버렀은 게.”
“..........”
“급헌 맘에 애기를 들어, 내 꼴마리 속에 푹 찔러 버렀지야. 그 통에도 ‘사람 몸뚱이라 따순 기가 남어 있겄다’ 싶드라. 지가 살란 게, 그랬겄지야 이.”
얼음덩이가 밀고 들어온 것처럼, 온몸이 시려 왔단다. 몸을 웅크린 채, 한참 동안 감싸고 있자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인자 살았다 싶은 게 또 문 생각이 드냐먼, 숨 맥해 죽을지도 모르겄다 싶드라. 그래서 급허게 끄집어 냈지야 이. 그래 갖고...”
김씨는 새삼 옷소매를 훔쳤다.
“오메이! 금쪽같은 내 새끼가 부모 잘못 만나 갖고 함바트라먼 죽을 빤 봤구나 싶은 게, 억장이 무너짐시로...나허고 느그 아부지가 고상허는 것이사 막말로 어찔 것이냐? 근디 새끼들이 문 죄냐?”
“이 집이랑 점빵은 어쭈코 지섰단가?”
“이 집? 니가 일곱 살인가? 그때 동네 사람들이 울력으로 지서 주었지야. 땅은 큰집 옆집에 사시든 어르신이 거저맥이로 주셨넌디, 본래는 뽕밭이었지야. 지금은 동네 한가운데가 되아 버렀제마는...”
방 두 칸에 부엌, 가게가 딸린 열일곱 평짜리 ‘우리 집’을 짓는다고, 마음이 들떠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던 일이 떠올랐다.
“근디 우리 한아씨는 어째서 웂단가?”
“웂기는. 느그 아부지 열아홉 살 되던 해에, 쉰일곱으로 돌아가갰는 갑이드라.”
“그러먼 어메도 못 봤는가?”
“큰집 가서 사진으로만 봤제, 실물로는 못 봤지야. 키도 크시고, 몸도 크시고 그러셨닥 허드라.”
전주 이씨의 종손인 그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선산과 전답을 지키느라 글공부를 많이 하진 못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나름대로 터득하여 있었고, 특히 장난기가 많았단다.
“하로는 느그 두째 큰아부지가 지게 지고 들에 나갔다가 맨몸으로 들어온 게, 너 지게 어디다 두고 왔냐고 물어봤드란다. 그런디 아무 대답도 웂그든? 그러자 하도 기가 맥해서 허시는 말씀이... 동네 양반들, 누가 우리 두째 등짝에서 지게 뱃개 갔소 허고 돌아댕기시드란다. 흐흐흐...”
“히히히...”
“살기는 잘 사심시로도 무저게 꼽꼽허셨단다. 느그 압씨가 학비 주락 허먼 잔돈푼까지 셈시로 따지신 게. 그런 양반이 배고픈 사람한테 밥을 줄 때에는, 아깐 줄을 모르셨다여. 그러고 당신의 밥그륵 안에 보리 한 테기만 있어도 난리가 나셨고. 지금도 그러제마는, 그때는 쌀밥이 차말로 귀헐 때였그든.”
“우리 아부지가 젤 높은 학교 나왔단가?”
“그것도 참 이상헐 일이여. 아들 다섯에 딸이 둘인 디, 느그 큰큰아부지가 시조도 잘 허시고 투전 그림도 잘 그리시고, 승질도 순허고 머리도 영리허셨그든. 그런디 해필 니째 아들을 갈친 것이여.”
“아부지가 더 영리했는 갑이네 이?”
태민은 이씨가 법성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 중에 행했던 영웅적인 스토리를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연필이 부러져 급한 김에 이로 물어뜯어가며 답안지를 작성했고, 그 덕분에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하는 그 ‘무용담’을.
“아니란 게. 글씨도 못 쓰고, 승미도 오직이나 급허냐? 놈보당 그리 공부도 잘 헌 것 같들 안 해. 그런디 그만헌 곡절이 있어. 사주쟁이가 느그 한아씨한테 그러드란다. 당신은 기사년에 틀림웂이 귀자(貴子)를 얻을 것이오라고..”
“기사년이 뭇이란가?”
“느그 압씨가 생개난 해지야. 그해에 난 아들이 귀허게 된다 그 말이여어. 그 한 마디가 평생을 좌우해 버린 것이지야.”
“근디... 아부지는 책을 밸라 안 읽던디?”
“공부를 밸라 안 좋아했단 게는. 그러고 그때는 ‘먹고 대학생’이란 말이 유행허고 안 그랬냐?”
사주 덕분에 사각모를 써봤던 이씨. 산 넘고 물 건너 일백 육십 리, 무라리에서 광주까지 걸어 다녀야 했는데, 샘가의 처녀들이 사모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더라는 말을 역시 이씨 본인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다. 물론 확인할 길은 없었고.
“어쨌든 다른 아들들한테 못 시킨 높은 공부 시캤다고, 유산은 하나도 웂었어. 느그 한아씨가 한 푼도 안 주셨그든.”
“한 테기도라우?”
“포도시 모래땅 서말 가옷 지기 받었다가, 맻 년 안 가서 다 엎어먹고 말았지 않냐?”
대학 졸업 후, 잠깐 연합통신 기자생활을 했고, 그 후 영광읍에서 연탄공장을 차렸다가 폭삭 망했단다.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