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by 인터파크 북DB

바다와 무라리 사이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고작일 뿐, 장애물이라곤 없었다. 때문에 겨울에 몰아치는 북풍으로 말미암아, 몸집이 작은 아이들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폭설이 쏟아진 이튿날에는, ‘학교에 오지 말라’는 암묵적인 휴교령이 내려지기까지 했다. 온 천지가 하얗게 덮여버린 허허벌판에서 거센 바람이라도 만난다면, 자칫 길을 잃고 헤매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씨가 방문을 열어젖히며 한 마디 내뱉는다.
“아따! 문 놈오 바람이 요로코 부끄나 이. 꼭 미친 년, 머리 풀고 댕기는 것 같다.”
“미친년이라고 라우?”
“날 궂을라먼 지 고쟁이 벗어 갖고, 대그빡 우게로 빙빙 돌리고 돌아 댕기는 애팬네, 못 봤냐? 그거이 미친년이제, 뭇이디야? 은젠가는 밴소에 앉었다가 애기를 빠쳐버렀닥 안 허냐?”
“..........?”
“어뜬 속알머리 웂는 놈덜이, 그 불쌍헌 것을 건들어 갖고. 누가 애빈 지도 몰르고, 쯪쯪... 시상에! 암만 그런다고, 지 새끼가 공알에서 나온지 어찐지도 모르끄나? 남시로 똥통에 빠쳐 버린 게, 숨도 못 쉬고 죽어 버렀지야. 아이고, 불쌍헌 것들.”
서촌은 다시 세 구역으로 나뉜다. 북풍을 막아주는 언덕배기의 아래, 동네의 아랫목에 해당하는 아내미와 남서쪽의 개정리(개를 잡았던 것에서 유래), 동쪽으로 새로이 뻗어 나간 새태(새터). 이 가운데 이씨 문중의 집들은 대부분 아내미에 몰려 있었다. 이신만씨의 자부심.
“느그 큰집이 아내미 중에서도 한 중앙 아니디야? 한가운데서 동네를 눌러왔단 소리여어. 아무튼 종손 집안인 게, 느그덜은 함부로 행동허먼 안 된단 말이여어. 느그 한아씨가 을마나 돈이 많앴는가 모르지야?”
물론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전답 덕분이었겠지만, 춘궁기에 곡식을 꾸어주고 가을철에 높은 이자를 쳐서 거둬들이는 일종의 돈놀이도 치부(致富)의 한 수단이 되었음을, 태민은 한참 커서야 알았다.
“돈으로 따지먼 우리 집이 젤이었고, 배움 내력으로 말허먼 큰집 옆에 있는 그 집이 첫째고. 그러고 역사 이래로 대학 나온 사람은 내가 첫 번째 아니냐?”
태민네의 집터를 제공한, 큰집의 서쪽으로 난 그 집은 한식 육간 채로써 마당 또한 넓어 아이들이 자주 놀던 곳이었다. 태민은 마당에서 물레 돌리는 노파로부터 번데기를 받아먹으려, 또 풍뎅이 목을 비틀어놓고 ‘마당을 청소하느라’ 빙빙 돌아가는 녀석의 발악하는 모양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갔었다. 그리고 다락 한쪽 벽에 쌓인 책들을 바라보며 경외감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대단히 유명헌 대학자가 살았든 것이제에. 어찌됐건 아내미 사람들이 교육에 있어서나, 재산에 있어서나 동네를 휘어 잡었었다 그 말이여어. 시방도 그러기는 허제마는...”
드문드문 대나무가 서 있는 모래언덕, 큰집의 뒷마당에 봄 햇살이 찾아들 때면 사촌 형제들과 함께 소꿉장난을 하였다. 고요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곳. 김씨가 사다 준 검정고무신으로 ‘자동차’들을 만들어 손으로 밀고 다니다 보면, 해가 지는 줄 몰랐다. 콧물을 닦아내 반질반질해진 소매를 걷어 올릴 겨를도 없이 모래를 떠내어 성(城)과 집, 울타리를 만든다. 평생 살 곳인 양 정성을 들이다가 싫증이 나면 부숴버리고, 또 쌓다가 쓰러뜨렸다. 놀다가 다쳐 피가 나는 곳에는 소독제라도 되는 양 모래를 부어 흘러내리도록 하였다.
그러다가도 귀가 멍해질 만큼 온 동네가 고요 속에 잠길 때면 문득 가슴 한복판에서 그리움이랄까 서러움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이 적막 가운데 스스로의 존재가 묻혀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세상 가운데 나아가지도 못한 채, 한 마리 나방처럼 어둠 속에서 날갯짓만 하다가 사라질 것 같아 몸이 떨렸다. 흔적도 없이, 스스로의 존재가 무화(無化)될 것 같은 공포 앞에서, 태민의 가슴은 막혀 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그것의 실체를 붙잡으려 하면 생채기를 건드리는 것처럼 마음이 아려왔다. 속내를 털어놓을 말도, 표현할 언어도 아지 못했던 농촌 소년의 가슴은 그렇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게 뭘까? 하루에도 수없이 먹먹해지기만 했던 그 마음속 절규 속에 과연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그래. 어쩌면 무라리의 아픈 이야기들을 어루만져 줄 그 어떤 것, 어머니의 젖가슴이나 누나의 속살을 닮은 것들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산처럼 쌓아놓은 큰집 짚가리 사이의 작은 공간, 그 어둡고 아늑한 곳으로 숨어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라리의 가는 모래처럼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줄 만병통치약을 절실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소금기를 머금은 구름, 하늘과 맞닿은 바다, 쩍쩍 땅을 갈라지게 만드는 초가을 고구마와 뜨거운 콧김으로 논밭을 갈아대는 누렁이 황소와 더불어, 가는 모래(細砂)는 무라리의 언어였다.

하지만 무라리 사람들을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언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물 아랫놈’. 터진게를 경계선으로 아래쪽이 무라리이고, 대전리나 백수면 소재지 일대는 위쪽에 해당하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걸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지리적인 표시 외에 ‘저급하고 야만적’이라고 하는 고약한 의미가 담겨 있었으니. 한(恨)을 토로하는 이씨.
“나나 느그덜이나 무라리 모래땅에서 태어났지 않냐? 그렇다고 그락저락 살다가 죽으먼 뭇 헐 것이냐? 어차피 한 번 주어진 인생인 디, 사람같이 살다가 가야제. 암 것도 아닌 것들이 고로코 사람을 무시허게 허먼 못쓴다 그 말이여어.”
“..........”
“그래도 ‘사람’이 웂넌 디 어찔 것이여어? 가난 때문에 못 배우고 못 배와서 또 가난해지고, 이것이 악순환 아니냐 그 말이여. 그 고리를 끊어 버리야제에.”
“그런게 인자 성님이 그 ‘사람’ 노릇을 해야 안 쓰겄소? 대학까장 나와 갖고, 촌에서 썩기만 헐라우?”
이씨를 향해 일갈(一喝)하는 이신근씨. 그는 이씨의 세 살 아래 동생으로 백수초등학교 졸업 후, 소년병으로 끌려갔던 군 생활을 제외하곤 무라리를 떠난 일이 없다. 자전거 뒷자리에 오를 때마다 ‘가랑이를 더 넓게 벌리라!’고 소리쳤던 그를 태민은 다정다감한 ‘삼촌’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따! 너는 꼭 돼야지 목 딴 소리를 고로코 해 쌌냐?”
“우리사 그러제마는, ‘우겟놈’들은 지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믿을 것 아니요? 우리를 무식허고 암 것도 모른다, 그래서 문 일만 있으먼 심으로 밀어부칠락 허고, 고집만 시다고 생각 허그든이라우.”
“우리도 문제는 문제여. 대화보다는 힘으로 해결헐락 허고,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밀어부칠락 헌 게. 은젠가 리 대항 축구시합을 허다가 무라리가 진 게, 깽판을 나 버렀담시로? 그때 심판이 함바트라먼 맞어 죽을빤 봤단 디, 우겟놈들이 이쪽 사람들을 안 무서와 허겄냐? 킥킥킥. 좌우간 지고는 못 산 게. 하다못해 뚜드러패든지, 패쌈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 게. 아먼! 그것이라도 있어야제 이.”
물의 위와 아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태민은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아래 사람들은 ‘위 사람들이 의리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고, 진실보다는 가식을 일삼으며,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하다’고 믿는다. 우직한 황소를 닮아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아래’에 비해,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로 혼탁해져 있는 사람들, 영리한 머리로 잔꾀나 생각하고, 배운 지식으로 합법적인 도적질이나 궁리하며, 하늘의 섭리보다는 땅의 논리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물 위 사람들이라 여긴다.
반면에 비록 섬처럼 뚝 떨어진 곳에 터를 잡긴 했으나 스스로는 꾸밈없이, 반듯하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바닷고기도 파닥파닥 뛸 때 된장에 발라먹어야 제 맛이고, 이제 금방 멱을 딴 돼지의 비계와 살점을 백해젓에 찍어먹어야 제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체면과 겉치레보다는 진실과 속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입으로 새어나오는 말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정을 더 값지게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무라리 사람들이라 확신한다.
툭 터진 칠산 바다처럼 막힘이 없는 삶, 그래서 기분이 좋으면 체면 불고하고 박장대소한다. 옷을 훌훌 벗어 던진 채, 손에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도 춘다.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살이라도 떼어줄 것처럼 살갑게 군다. 그러나 비위에 거슬리면 걸쭉한 욕지거리가 가차 없이 튀어나온다. 멱살잡이와 주먹질은 다반사이고, 낫이나 삽을 추켜들고 죽자 사자 달려들기도 한다. 도대체 두려움이나 공포라곤 모르는 사람들 같다. 싸움질하다가 지서에 끌려간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도둑질이나 사기, 거짓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비난을 퍼붓는다. 상종(相從)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치부하며, 욕을 퍼붓는다.
땅 끝이라고 하는 지리적 특성이 사람의 기질마저 극단으로 몰아갔을까.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물은 토해내듯, 검지도 희지도 않은 회색분자를 경멸하듯 무라리 사람들은 미적지근함과 두루뭉술함을 싫어한다. 이웃이 아플 때에는 의례적인 병문안 대신 담방약을 달여 가고, 누가 죽기라도 하면 형식에 맞춘 조문 대신 퍼질러 앉아 땅을 치며 통곡부터 한다. 뼈가 부수어져라 일하고 고쟁이가 벗겨지도록 노는 데 집중하는 사람, 술을 마실 때에는 세상만사 잊어버리고 고주망태가 되어버리는 사람, 도박을 할 바에는 마누라만 빼고 논문서와 집문서를 몽땅 걸 줄 아는 사람, 그것이 무라리의 남자이다.
이 거침없는 사람들의 귀에 ‘물 아랫놈’이라는 욕설이 들려올 때, 놀라운 단결이 일어난다. 땅 한 평을 놓고 주먹다짐을 하고, 쌀 한 되를 갚지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으며, 낫을 들고 물싸움을 하다가도 ‘공동의 적’ 앞에서는 굳게 뭉치는 것이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모두 하나가 된다. 일상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하나로 엮어지는, 희한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발길에도 깊은 상처를 받는 모래가 물(눈물)을 머금게 되면 아무리 밟아도 부서지지 않는다. 아니,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묘한 성질을 갖고 있다. 연약하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성깔,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그 성질을 무라리 사람들은 벌써 닮아 있었다.
“애기들까지 문 시합을 헐 때마닥, 지역별로 경쟁이 붙는담시로?”
“작년 8・15때 축구시합 결승전에서 무라리가 져버린 게, 심판 뚜드러패고 우승컵을 갖고와 버렀닥 안 헙디요?” “그 말이 아니라, 문 가이생을 험시로도 껄막끼리 팬을 나눈담시로야?”
나름대로 시야가 넓다고 자부하는 이씨는 간혹 ‘선구자’적인 발언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라리를 감싸는 그의 평소 소신과 간혹 어깃장에 놓이는 경우가 있었으니.
“사람이 눈을 크게 뜰 종 알아야 허는 것이여어. 느그덜은 좁은 테두리에서만 본 게, 밤나 쌈을 허지 않냐? 그러나 아내미 허고 개정리, 새태가 합심하여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나가야 남촌을 이길 수 있고... 또 동촌, 서촌, 남촌이 무라리로 뭉칠 때, 대전리 허고 중앙교를 이길 수가 있고...”
“..........”
“그 담에 또 뭇이냐? 응. 리끼리 협조해서 백수면으로 나갔을 때에, 다른 면들을 이길 수 있는 것 아니냔 말이여어. 또 면끼리 연합해서 영광군으로 나갔을 때, 함평군 장성군을 이길 수가 있고... 각 군들이 합하여 전라남도로 나갈 때, 전라북도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이고... 어디 내 말이 틀렸냐?”
“..........”
“틀림 웂는 소리여어. 또 호남으로 한 뻔에 나갔을 때, 막말로 영남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고. 또 대한민국으로 나갔을 때, 이북을 이기고. 결국에는 양쪽이 통일이 되아야 헐 것 아니냐? 그래 갖고 문자 그대로 삼천만 동포로 나갔을 때, 쪽발이나 때 놈들, 양놈들한테 안 맥힐 수가 있다... 그 말이여. 시방.”


by 강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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