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디 어째서 엄니는 중학교 배키 못 나왔는가?”
“움마! 그때는 여자가 중학교 나온 것도 어딘 디야. 느그 외한아씨(외할아버지)가 칠 남매 가운데 젤 끄트머리로 나를 낳으셨넌디, 핵교 보내주라고 고로코 졸라도 대답이 웂으시드라. 그래서 솜리, 지금은 이리(익산)라고 허는 디로 도망가다시피 해 갖고 원광중핵교를 댕갰지야. 봉재도 배우고 했넌디, 느그 아부지 만나갖고 오늘날 무라리 촌구석으로 오고 말았다. 느그 아부지같이 대학만 나와 갖고 식구들 벌어 맥이도 못허먼 뭇헐 것이냐?”
“..........?”
“아니. 지금이사 느그 육 남매 잘 크고 헌 게, 갠찮헌디.”
“아부지는 놀기만 했단가?”
“첨에는 신문 기잔가 뭇인가 했는 갑이드라.”
여기서부터는 이씨 자신의 무용담.
“연합통신 기자로 딱 들어갔넌 디, 그 자리는 보통 신문사 기자들허고는 차원이 틀리그든. 신문사의 신문사 아니냐? 그런디 하로는 광전대 총장이었든 신학준 박사라고, 그 양반이 나한테 꼬투리를 잽했그든. 기자들은 상대방의 약점 잡어 갖고, 꼼 파는 것이 직업 아니냐? 월급은 거진 웂은 게, 고것으로 먹고 사는 디.”
“..........”
“신문에 터 봤자 피차간에 이익 될 것도 웂다고 그럼시로, 협상을 제의했지야. 보도가 안 나가게 해줄 틴 게, 가져오라 그 말이여. 그런디 끝끝내 안 주드란 말이다. 여관에서 사흘을 지달리다가 말아 버렀제에.”
“예?”
“한참 시간이 지내 버렀넌디... 새로 신문에 내기를 허겄냐, 안 오는 사람 쫓아가 돈을 뺐겄냐? 웬만헌 사람 같으먼 벌벌 떰시로 쫓아오는 디, 딸싹도 안 해야. 그러고 보먼 그 양반도 베짱이 무던했든 갑이여어. 고냔시 너한테 이런 말 허는 갑이다 요.”
자식들에게 늘 ‘양심’과 ‘청렴결백’을 강조해 오던 이씨. 엉겁결에 튀어 나간 말에 맘이 걸리는가 보다.
“허기사 너도 알 것은 알아야제 이. 그래서 에라이 이 짓도 못 해먹겄다 싶어서 무라리로 안 내래 왔냐? 그런디 문 헐 일이 있어야제. 매칠간 아랫목에 누워서 구들장 짊어지고 있은 게, 느그 은종이 성한테서 연락이 왔드라. 그때 길룡리에서 고아들을 갈치고 있었그든.”
“...성...이라우?”
박은종으로 말하면, 이씨와 중학교 동기동창생인 동시에 김씨의 둘째 언니 남편의 아들이었다. 태민으로 보자면 이모부의 전처(前妻) 아들이었기에, 분명 이종사촌 형님이라 불러 마땅했다. 하지만 이씨와 비슷한 나이인지라, ‘형님’이란 호칭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작년. 큰집의 사촌누나 성혜와 함께 그 고아원에 간 일이 있었다. 영광행 완행버스를 타고 삼십여 리를 달린 끝에, 논산리 들녘이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내렸다. 그리고 황토먼지 자욱한 자갈길을 따라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길. 그러나 저수지를 지나 언덕배기를 숨 가쁘게 넘자 고아원의 우람한 몸집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왔다. 둘은 뜀박질하다시피 하여, 거대한 대문 앞에 섰다.
그곳에는 죄수처럼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싸늘한 눈초리의 아이 셋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은 도통 말이 없었다. 둘을 바라보는 동안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그들 뒤, 대문 안쪽의 도로 위로 대여섯 명이 줄지어 지나가며, 이쪽을 힐끗 힐끗 쳐다보았다. 손에는 날 선 낫이 들려 있고, 배꼽 근처에서 멈춰선 누더기 저고리 사이로 때로 뒤덮여있을 피부가 민낯을 드러냈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누런 얼굴에, 초점을 잃어버린 두 눈이 성가신 듯 박혀 있었다. 겨울밤 서촌 교회의 기와지붕 밑에서 막 끄집어낸 참새의 발을 연상케 하는 두 다리, 그 아래로 고무신도 걸치지 않은 맨발이 달려 있었다. 태민은 그들 눈빛 속에서, 까닭 모를 적개심을 발견하였다. 섬뜩한 느낌. 낫을 추켜들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아 더럭 겁이 났다.
삐죽삐죽 대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꿈결에서처럼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소스라치게 놀래어 고개를 들어보니, 널찍한 운동장에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한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복창(復唱)을 강요하고 있는 사열대 앞에서, 한 아이가 덩치 큰 사내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중. 정강이에서는 새빨간 피가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느그 새끼덜! 여그 잘 봐라 이. 이 새끼같이 나무 비어오락 헌 게, 지 놈 발이나 비어 오고.. 이러먼 쓰겄냐, 못쓰겄냐?”
“못쓰겄습니다!!!”
아하! 비로소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렀지. 부상병을 치료해 주지는 못할망정 때리기부터 하다니. 운동장 서편의 솟을 대문은 한없이 높아 보였고, 그 앞에는 자동차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검정 찝차와 녹색의 하이야 택시. 그 선명한 색깔들이 조금 전 보았던 부상병의 진홍색 피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대문을 넘어서자 또 다른 대문이 나타났고, 그것을 지나자 비로소 남향 한식집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응? 니가 무라리 이숙 아들이냐?”
“..........”
잘 닦여 반들거리는 마루 위에 높은 이마와 작은 눈, 기름기가 흐르는 얼굴의 중키가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이종 형님, 틀림없이 그 일거라 짐작했다.
“이쪽은 사둔 처년 갑만? 아따! 날씨 무저게 덥구만 이. 좌우간 어서 들어 오니라.”
얼음이 띄워진 미숫가루 차를 마시라며 숨이 차도록 재촉하던 그가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건너간다. 몽유병자처럼 흐느적거리며 뒤따라간 둘의 눈앞에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최고급 연필과 지우개, 크레용, 공책 등등. 물을 건너온 미제(美製)란다. 학용품 외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과자며 사탕이 천장에 닿을 만큼 꽉 채워져 있었다. 어쩌면 동화책에 나오는 ‘보물창고’가 이런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정신마저 몽롱해지는데, 물론 몽땅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다. 하지만 ‘탐욕’이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아 머뭇거리다가 크레용과 연필 한 묶음을 추켜들었다. 그 모양이 답답했던지 ‘형님’이 손수 ‘보물’들을 몇 점 더 골라, 둘의 가슴팍에 덥석 안겨 주었다.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운동장에서 맞고 있던 아이 생각이 났다. 맨발의 깡마른 아이들과 보물창고, 까까머리와 솟을대문, 정강이에 흐르는 새빨간 피와 진한 녹색의 택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느낌.
“아이, 거그 누구 웂냐?”
“예. 원장님...”
허겁지겁 달려온 까까머리 원생 하나가 마냥 머리를 조아린다.
“이 분들 말이다 이. 박 선생한테 모셔다 디래라.”
“예. 원장님. 이리...”
걸어가던 중 십자가가 달린 건물 안을 들여다보는데, 난생 처음 보는 악기가 눈에 띄었다. 검정색깔에 ‘풍금’보다는 큰 것 같은데, 도통 그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솟을대문을 건너지 않고 왼편으로 꺾어들자, 수많은 방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까까머리가 그 중 하나를 가리켰다. 대낮인데도 안은 어두컴컴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여남은 명의 아이들 앞에 검정 치마와 하얀 저고리를 입은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기다란 매가 들려 있었고, 아이들은 무릎을 꿇은 채 사시나무 떨 듯 하고 있었다. 악녀나 마귀할멈이 있다면, 아마 저런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큰 키를 일으켜 꾸부정한 허리를 돌리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누나...”
그 ‘마귀할멈’은 선영 누나였다. 작은 이모가 시집와서 직접 낳은 딸, 박은종과는 이복(異腹) 남매지간이지만, 태민의 입장에서 보면 엄연한 이종사촌이었다.
어린 시절, 태민의 눈에 비친 그녀는 순결하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다정했다. 키는 훤칠하고, 살갗은 백옥같이 희었으며, 호수처럼 크고 맑은 눈에 깎아놓은 듯 오뚝한 콧날. 아홉 살 무렵이었던가. 어른들의 노래자랑이 펼쳐지던 가겟방에 멀뚱히 앉아 있다가 이씨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말았다. 아무리 시켜도 끝내 노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고집을 피운 것이 아니고 다만 숫기가 없어 그랬던 것인데도,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너무 몰라주었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여겨질 때,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있었으니, 그 손길의 주인공이 바로 선영누나였다. 들썩이는 태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는 향내 나는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가슴으로 꼭 안아주었다. 아! 향기가 물씬 풍기는 스물한 살 처녀의 가슴이란. 너무나 짜릿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오늘 그 아름다운 자태는 온데간데없이, 저리도 표독스럽게 변해 있다니.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었다.
“...너, 왔냐?”
힐끗 돌아보는 그녀의 표정은 시베리아의 얼음처럼 싸늘했고, 목소리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처럼 건조했다. 아이들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준 뒤, 그녀가 일어섰다. 나가자는 말이 너무나 반가웠다. 한시바삐 이 어둡고 음산한 방을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섬돌 위에 놓인 고무신 속으로 하얀 보선이 쏙 들어간다. 교회 앞을 지나오면서, 태민은 검은 물체를 가리켰다.
“저것이 무이단 가?”
“어디?......저 피아노 말이냐?”
아! 피아노. 그래. 맞다. 피아노다. 혹시나 했더니 정말 피아노였구나. 무척이나 멋있게 생긴 피아노까지 내 눈으로 보았으니, 고생고생하며 이곳까지 온 보람을 했구나. 연필, 크레용에 덧붙여 아이들 앞에서 자랑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겼으니 말이다. 조금 전의 음산한 기분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갑자기 신바람이 났다. 내친 김에 궁금증을 하나 더 풀기로 맘먹었다.
“쩌어그 아까침에, 방에서 아그덜이 문 잘못을 했단 가?”
“으응. 여그 아그덜은 존 말로 해서는 안 들어야. 지 부모도 웂이 막 큰 아그덜이라, 무시락 헐 때에는 야물딱지게 무시락 해야제, 찌럭찌럭 건들어 노먼 선생이고 무이고, 막 타고 넘을락 헌단 게.”
“그러먼... 누나가 선생이여?”
“호호호! 그러지야. 이 촌놈아.”
자신의 우문(愚問)이 누나의 웃음을 촉발했다는 생각에 태민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 그렇지, 착한 누나가 괜히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돌발적인 그녀의 웃음소리 앞에서, 새빨간 피에 대한 물음은 끝내 던져지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원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식당 앞에 당도했다. 즐거워해야 할 이유도 없고, 슬퍼해야 할 까닭도 없다는 수많은 표정들 속에서 그나마 웃음 하나를 발견한 것은 의외였다.
그는 태민을 정면으로 응시한 채, 웃고 있었다. 잔뜩 흐린 잿빛 하늘처럼 늘 그런 풍경이어야 할 곳에서, 더욱이 원장의 여동생과 동행하는 귀빈(?)에게 감히 그런 웃음을 던지다니. 그 예상치 않은 사태에 태민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물론 외모상으로 그는 다른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덕지덕지 때가 눌어붙은 손에는 ‘스뎅’ 밥그릇이 들려 있었고, 검정 윗도리의 왼쪽 호주머니에는 숟가락 하나가 달랑 꽂혀 있었다. 한 끼 식사라고 해 보아야 딱 한 주걱으로 퍼주는 희멀건 밀가루 죽 한 그릇 뿐. 김치도 깍두기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젓가락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초탈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가 아닐까 했었다. 하지만 형형한 눈빛 속에는 당당함을 넘어 도도함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그가 자신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이 들킬까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죽이 먹고 싶어졌다. 수제비이건 칼국수이건, 죽이라면 사족을 못 쓸 만큼 좋아했던 터. 날마다 죽이 나온다는 말에 태민은 철부지처럼 조르기 시작했다. 제발 고아원에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여그는 부모 웂는 아그들만 오는 디여. 너같이 아부지 있고, 어무이 있고 허는 아그들은 오고 싶어도 못 온단 게.”
나중에 들은 바로는, 부모가 있다 해도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올 수 있었단다. 어떻든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까지 보내주는 곳이니. 누나의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태민의 눈은 연신 뒤로 향했다.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원생들의 눈길, 여전히 웃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이 그곳에는 있었다.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