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탐방]
서울 합정동의 고요한 골목에 위치한 비플랫폼(B-PLATFORM). 이곳은 서점과 갤러리, 책 만들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아트북 라운지를 표방하는 플랫폼이다. 앞에 붙은 B는 북(BOOK), 바운드(BOUND), 뷰티풀(BEAUTIFUL), 비긴(BEGIN) 등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비플랫폼의 콘셉트와 모토는 분명하다. "CONCEPT : 책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MOTTO : 당신의 서재를 큐레이션 합니다." 그 가치와 모토가 이 작은 공간에 상당 부분 구현되어 있다.
비플랫폼에는 대부분 해외작가들의 그림책과 책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북오브제'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비플랫폼 주인장 손서란씨는 "책을 대접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대량 판매되는 책이나, 아무렇게나 여러 권씩 쌓여 있는 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각기 다른 표정의 얼굴을 드러낸 채로 진열되어 있는 책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독자들을 마주한다.
비플랫폼에서 큐레이터를 담당하고 있는 북아티스트 김명수씨는 책을 '읽기'만을 위한 대상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읽는 과정, 페이지를 넘기는 과정, 출판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 등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문화 자체를 소개하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비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책들은 전부 손서란씨와 김명수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다. 책 컬렉션을 통해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과 책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리다가 지난 6월 비플랫폼을 오픈했다. 두 사람의 명함에는 각각 디렉터와 큐레이터라는 직함이 붙는데, 동시에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책을 직접 만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비플랫폼의 공간 한쪽에 두 사람이 만든 책과 북오브제 역시 함께 진열되어 있다.
김명수씨가 말하는 비플랫폼의 컬렉션 포인트는 "국내외를 떠난 작가주의 예술서적"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네모 반듯한 모양의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서적을 통해 책을 다양하게 탐미하는 방식을 알리는 과정 역시 그의 역할. 무엇보다 책을 직접 만드는 작가이기 때문에 유통사가 아닌 작가 마인드로 책을 존중하는 태도가 이 공간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믿는다.
유리케이스에 별도 전시된 작가들의 북오브제 작품들을 제외하면 진열된 도서들은 방문자들이 자유롭게 보고 만지고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책을 만지고 느낀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이곳에 진열된 책들은 대부분이 그런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김명수씨는 작가의 예술성이 함축된 책이라는 매개체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면, 자신들이 만든 책 역시 그러한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책이 지닌 예술적 가치들을 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서점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갤러리와 스튜디오가 나온다. 갤러리에는 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나 비플랫폼에서 직접 기획하는 전시들을 소개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정기적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더미북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엔 프린트에서부터 제단기까지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가 모두 갖춰져 있어 원고나 그림만 가져온다면 제책(製冊)까지 완성이 가능하다.
특히 작가가 원하는 종이의 질감과 색감이 구현될 때까지 테스트 인쇄가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작가로서 인쇄의 과정이 아쉬웠던 두 사람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결과인데, 버튼을 눌러 인쇄를 완성하는 단순 과정이 아닌 작가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비플랫폼이 줄곧 강조해온 '작가주의적'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운영 시간 및 휴무일
▶ 운영 시간 PM 01:00 ~ PM 09:00
▶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 2길 22 (3층)
▶ 전화번호 070-4001-8388
▶ 홈페이지 http://www.b-platform.net/
▶ 그 외 http://blog.naver.com/b-platform
https://www.facebook.com/bplatform
https://www.instagram.com/bplatform/
▼ 비플랫폼 자세히 보기
▼ 비플랫폼의 주인장 손서란씨와 북아티스트 김명수씨가 추천하는 책들
<DUST> Klaus Pichler / klaus pichler / 2015 / 30 X 30 cm
"최근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에요. 사진 작가가 만든 책인데 작가가 방문했던 샵들의 먼지를 모아서 '어느 곳에 있던 먼지'를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긴 책이에요. 프린트를 굉장히 잘해서 금방이라도 먼지의 질감이 만져질 것 같은 책입니다."
<Photos de Marie> FRANCIS VAN MAELE / Red Fox Press / 2011 / 10 X 16 cm
"이 책은 아일랜드의 아티스트북 출판그룹인 레드 폭스 프레스에서 제작을 한 책이에요. 레드 폭스 프레스의 대표가 직접 작업을 한 책이고, 실크 프린트로 직접 인쇄를 했어요. 실크 프린트의 특성상 에디션 넘버를 100부 이하로 갖고 가야하는데, 이 블루 북 시리즈의 경우는 수량 자체가 70개를 왔다갔다 합니다.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소장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해요."
<the onion’s great> Sara Fanelli / Phaidon / 2012 / 8.5 X 0.8 X 11.8 inches
"이태리 작가가 제작한 책이에요. 주인공인 양파가 프라이펜에 튀겨질 위기에 처하는데, 독자에게 자기가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부엌칼이 '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갱에게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마지막에는 독자가 이 양파를 똑 떼서 탈출시켜줄 수 있도록 참여를 유도하는 재밌는 책이에요. 이 책의 특징은 책 속의 글을 모두 작가가 직접 쓴다는 거예요. 폰트 등이 개성있기 때문에 이런 책의 경우는 번역이 큰 의미가 없죠. 근래에 가장 재밌는 책입니다."
<David and Goliath> Ido Agassi / Even Hoshen / 2007 / 56 X 13 cm
"이 책은 이스라엘 북아티스트가 작업한 건데요. 구약성경에 나왔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물매를 던져서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북오브제인데, 책을 열어보면 물매가 들어있습니다. 물매를 그 자체로 보여줌으로써 구약성경에 있는 내용을 더욱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독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이죠."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