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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22. 2016

"제 동생은 발가벗고 자요!" 그 따뜻한 즐거움의 향기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 순수하고 기발한 아이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메시지, 아이 그림을 명화처럼 감상하며 ‘아이 그림 읽어주는 여자’ 권정은의 해설을 들어봅니다.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 내 자신, 그리고 세상과 다시 나누는 이야기. 이 연재는 권정은 ‘Art Centre 아이’ 원장의 책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편집자 말

아주 어릴 적에는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 다 함께 잠을 잤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방이 있었지만 엄마, 아빠, 동생 모두와 함께 한 방에 모여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게 더 좋았다. 우리 모두 깔깔거리며 함께 잠자리에 들던 아름다운 기억이다. 내복바람의 동생과 나는 두 손으로 함께 이불을 맞잡고 장롱 끝과 벽 사이의 구석에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 이불을 폈다. 그러면 우리의 작은 키가 들어가기에 딱 맞는 아늑한 자투리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불 깔기 행사는 그렇게 밤마다 벌어지는 우리 가족의 즐거운 의식이었다. 

'잠자는 가족'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협동 작품


우리가 무심히 흘려버리는 일상, 그것이 곧 인생이고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대부분을 담고 있다. 행복은 결코 미래형이 아니다. 

늦은 오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흘러나오는 맛있는 밥 냄새,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압력밥솥의 추 소리, 갓 지은 밥에 싸먹는 참기름 발라 구운 김의 향내와 촉감, 거기에 아삭아삭 발갛게 잘 익은 배추김치를 얹어 먹을 수 있는 행복…. 일상은 그렇게 감사하고 소중하다. 외지에 나가 불편한 잠을 청해본 사람은 익숙한 내 침대와 이불, 베개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갑자기 몸이 아프면 어제까지의 건강했던 몸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던 자신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이런 일상의 경험을 미술을 지도하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잠자는 모습을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가족이나 친구들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각자의 잠버릇과 잠잘 때 모습, 잠자리에서 즐거웠던 에피소드 등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 아이가 남동생의 자는 그림을 낙서처럼 그려서 보여준다. 

"선생님, 제 동생은 잠옷 안 입고 발가벗고 자요!"
"아~악!"
"와하하하!"

놀라서 기겁하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웃는다. 

"우리 엄마는요, 금색 팬티가 네 장이나 돼요. 그래서 팬티를 금색으로 그렸어요." 

덕분에 나는 몰라도 될 아이 엄마의 사생활까지 알게 된다. 그 외에도 다른 식구들 배에 자꾸 자기 발을 올려놓고 잔다는 아이, 만세 부르고 잔다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즐겁게 그들만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주무시는 아빠 얼굴에 낙서하다' 최원석 작품


아이들은 평소 무심하게 지나치던 잠자는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새삼스런 즐거움에 어쩔 줄을 모른다. 일상은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즐거움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즐겁게 떠올린 일상의 기억들은 신나고 흥미진진한 미술작품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들과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은 언젠가 어른이 될 이 아이들에게도 아련한 향기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가 킁킁거리며 일부러 맡아보게 되는 삶의 기억들 말이다. 그 따뜻한 즐거움의 향기들이 우리를 오늘도 앞으로 향하여 나아가게 한다. 

즐거움이 담뿍 담긴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글 : 칼럼니스트 권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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