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금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꼭두새벽부터 눈 비비고 일어나 밥 짓고, 도시락 싸고, 낮에는 빨래를 하는 것으로 하루해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김씨로부터 퉁 맞기 일쑤였다.
"오메이! 저년이 문 늦잠을 저로코 자 갖고는, 애기들 학교도 못 보내고 저 개병을 허까 이. 끈떡허먼 밥이나 꼬실르고, 꾸정물 찍찍 흐르는 빨래 덜퍼덕 갖다가 널기나 허고. 내가 못 산단 게. 내가 살아도, 못 살아!"
아무리 꾸중을 해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잠자코 있다가 제 할 일만 계속했다. 그러는 그녀가 얄미웠든지, 김씨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
"저년이 저로코 잉해 갖고, 어디다 쓰까 이. 으런이 문 말을 허먼, 가타부타 대답을 해야 허는 디... 코 팍 숙이고 나 잡어 먹어라 허고 엎졌단 게. 하이고! 굼베이를 타갰는가 어쨌는가, 느릿느릿 기어댕기는 것 보먼, 복통이 터질락 헌 단 게."
번창하는 가게와 늘어나는 전답에 사람의 손이 더 필요했고, 그리하여 머슴 둘과 식모 겸 심부름하는 여자아이 하나를 들여왔는데, 그 여자아이가 바로 금자이다. 태민은 아침밥이 늦어질라치면 그녀에게 성화를 부리곤 했다. '누나'라고 부르라는 김씨의 말에도 불구하고, 태민은 그녀를 꼭 '금자'라고 불렀다.
금자를 여러 번 재촉한 끝에, 겨우 아침을 얻어먹고 책보를 허리에 둘러맸다. 마루에 선 채로 검정 통고무신을 발에 끼워 넣은 다음, 뛰어내린 탄력을 이용하여 단숨에 대문을 벗어났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해, 신발 뒤꿈치가 벗겨져 덜렁대기 일쑤. 되도록 오래 신어야 한다며 이번에도 김씨는 너무 큰 문수를 골랐던 것이다. 신발을 고쳐 신는 동안, '내일은 새끼줄로 칭칭 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등 뒤에서 '쩔그럭 쩔그럭' 소리가 났다. 필통 속에 들어있는 연필들끼리 서로 부딪치는 소리.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벤또' 속에 들어있는 김치. 밥과 한데 섞여 비빔밥을 만들고, 그 김치 국물이 흘러넘친다면? 그리하여 책과 공책, 책보까지 적신다면? 그래서 항상 천천히 걸을 것인가 계속 뛸 것인가 하는 갈등이 발걸음을 엉거주춤하게 만들곤 했다.
서촌에서 학교로 향한 길은 밭들 가운데로 뚫려 있었다. 꾸불꾸불한 길 양편에는 사래 긴 밭, 암퇘지 다리처럼 짧은 밭, 노처녀 엉덩이처럼 넓적한 밭, 갓난아기 손바닥만큼 좁다란 밭 등 여러 가지 모양들로 엎드려 있었고. 그 안에서는 보리, 밀, 콩, 고구마, 땅콩 등 철따라 갖가지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학교 가는 길에는 파릇파릇한 새싹들 위로 아지랑이 가물거리고 머리 위로 종달새 우짖는 상큼한 봄의 얼굴이 있고, 보리를 구워 먹다가 깜부기로 그려진 콧수염을 가리키며 깔깔대던 초여름의 얼굴이 있고, 남의 고구마 밭에 들어가 대충 흙만 턴 채, 생고구마를 우적우적 씹어 먹던 가을의 풍성한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칠산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북풍에 맞서기 위해 털모자를 눌러쓰고 귀마개와 벙어리장갑을 끼고 힘껏 달려야 했던 험상궂은 한 겨울의 얼굴도 있었다.
봄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은 부드러운 보리 순을 뜯어 피리를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중간에 막힌 부분 근처를 잘라내고, 터진 입구 쪽을 살짝 찢어 입에 대고 부노라면 근사한 피리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태민의 경우,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여러 번 가르쳐 주었음에도, 결국 그 '제작 비밀'을 배우지는 못했다.
대개 한 살 많은 동창 녀석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면서도 기를 쓰고 함께 다니고자 했던 까닭은, 혼자 밀밭 옆을 지나기가 무척이나 두려웠던 까닭이다. 장대처럼 길쭉하게 자란 밀의 키는 족히 사람의 두 배는 넘을 것 같았다.
'저 속에 무서운 사람이 숨어 있다가, 아그덜 배를 갈르고 간을 빼 먹는단 디...'
심심찮게 동네에 나타나 일그러진 코와 움푹 파인 눈, 긴 옷소매에 가려진 손, 그 아래 손가락 대신 뾰족하게 길어난 쇠갈고리를 내보이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혼자일 때는 가급적 무서운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오금이 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책보를 허리에 질끈 동여맨 다음, 고무신을 양손에 거머쥔 채 허리를 잔뜩 구부렸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하는 동시에 앞으로 뛰어나가기로 한 것. 그러나 눈을 감고 한참을 달리다보면, 자칫 밀밭 속으로 돌진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살짝 살짝 실눈을 떠보아야 했다. 겨우 악마의 소굴을 빠져나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길을 뒤돌아보다가 다시 겁이 나 냅다 뛰기 시작하곤 했었다.
홍수라도 지는 때면, 허리께까지 차오른 물길을 헤치며 '물둠벙'을 건너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태민의 경우, 지레 겁부터 났다. 간혹 업어서 건네주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고학년이 되자 그것 또한 자존심이 상했다. 고무신을 벗어 건너편 쪽으로 힘껏 던진 다음,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책보를 높이 치켜든 채로 건넜다. 재수 없이 돌멩이를 밟아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그때에도 책보만큼은 적시지 않으려 애를 썼다. 물론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온몸이 적셔지고 나서야 도강(渡江)에 성공하기 일쑤였지만. 그럼에도 비가 내리는 날은 신이 났다.
"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아이들은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이 가운데 '빨간 우산'이나 '노란 우산'은 없었다. '찢어진 우산'만 수두룩했다. 사실 비닐우선이 찢어지는 것은 시간문제, 아이들 또한 그 일에 개의치 않았다. 교과서 그림에 등장하는 우의(雨衣)는 도시 아이들이 입는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태민의 경우, 일부러 비를 맞고 다닌 적도 있었다. 후줄근하게 젖은 몸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옷을 벗기고 깨끗이 몸을 씻긴 다음, 촉감이 꺼칠꺼칠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는 김씨의 숨결이 그리워서였을까. 새 옷만큼이나 신선하고 상큼한 어머니의 '사랑'이 겁나는 세상을 살 맛 나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언젠가는 태국과 함께 옷에 잔뜩 비누칠을 한 다음, 마당 한복판에 서 있기도 했다. 목욕과 빨래를 동시에 한다며.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