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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19. 2016

'빨리 배우지 말고 넓게 배워라' 최수일의 착한 수학

                      


수학에 새겨진 주홍글씨에 "수학은 죄가 없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이 수학을 악마처럼 여기는 건 수학의 잘못이 아니라 수학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어른들과 교육제도의 문제라고 역설하는 분이다. 그는 34년 동안 한성과학고, 세종과학고 등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여러 차례 수학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참여했고, 2011년 퇴직 후 지금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와 수학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수포자'(수학포기자)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최수일 선생이다.

이미 <착한 수학> <하루 30분 수학> <수학이 살아 있다>를 통해 다른 수학의 길을 보여줬던 그가 이번엔 전국수학교사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개념연결 중학수학사전>을 만들어서 나타났다. '수학도 사전을 찾으면서 공부해야 하나?' 고개를 갸우뚱거릴 학부모들을 위해, 최수일 선생이 책에서처럼 친절하게 수학사전이 필요한 까닭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듣다보면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도 저절로 깨치게 될 것이다. 

Q <매우잘함 초등수학사전>에 이어 중학수학사전을 냈다. 수학공부에 왜 사전이 필요한가? 

상담할 때 아이들이 문제 푸는 과정을 지켜보면 아이들이 문제를 못 푸는 이유가 (테이블 위 <개념연결 중학수학사전>을 가리키며) 다 저기에 있더라. 개념이 없는 거다.


중학교에서 100점 맞는다는 아이한테 "이등변 삼각형이 뭐니?"라고 묻는데 답을 못한다. 고등학생인 아이가 유리함수 문제를 못 풀기에 "유리함수가 뭔지 아니?" 물으니 "몰라요" 한다. 교과서에서 해당 부분을 공부하라고 30분을 줬다. 그렇게 공부를 하니까 30분 후엔 그 문제를 풀더라. 그러면서 그 아이가 하는 말이 "문제를 이렇게도 푸는 거예요? 저는 수학은 푸는 법을 막 외워서 푸는 건 줄 알았어요"였다.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수학이 어렵다는 건 거짓말이다.

Q 이 사전은 어떤 사람들이 활용하면 좋을까? 

우선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썼다. 중1 때까지 수학을 0점 맞은 중2 아이가 있다고 치자.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 집안 문제이거나 사춘기의 반항일 수도 있고. 그랬던 아이가 마음을 다잡고 수학을 공부하려고 하면 어른들은 말한다. "수학은 기초가 중요하니까 처음부터 공부해야 한다"라고.

중2 진도도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책부터 다시 보라고 하면 초기 부담이 커서 아이들은 시작을 못한다. 그럴 때 진입장벽을 낮춰줘야 한다. "지금 배우고 있는 중2 단원이 이것과 연결된 거야. 이것만 알면 돼. 1시간만 공부해봐"라고 짚어주면 아이는 1시간을 투자한다. 교육학 이론에서도 현재 필요한 것 위주로 짧게 복습하라고 한다. 그때 이 사전을 쓰면 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개념 연결을 하는 데 활용하면 좋다. 수학은 개념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 부분만 정확히 하면 공부 부담도 줄어든다. 선행학습 하느라 돈과 시간을 엄청 들이는 아이들보다 가볍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애들 따라가는 선행학습, 기 죽이고 바보 만드는 것"

Q 책을 보니 나무 블록을 활용해 개념을 설명하기도 하던데 중고등학생들도 구체적 조작활동을 해야 하나?

나는 고3들하고도 구체적 조작활동을 했다. 고등학생들이 생각보다 머리가 좋지 않다. 중학교에 가면 x, y 같은 문자가 들어가면서 추상적인 수학 세계로 들어간다. 수식을 쓰면서 뇌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걔들도 과정이 눈에 보이는 조작활동을 하는 게 좋다. 그런데 조작이 조작으로 끝나면 장난이 된다. 그 나이대에 맞는 수학으로 연결되도록 과정을 잘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교 수학에 적분으로 원기둥, 원뿔, 구의 부피의 비를 내는 단원이 있다. 어떤 학생은 이미 초6, 중1 때 원뿔이 원기둥 부피의 1/3이라는 걸 배웠는데 그렇게 복잡한 수식으로 계산할 필요가 있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런 아이도 진짜로 1/3인지는 궁금해 한다. 그럴 때 원뿔에 물을 세 번 담아 원기둥에 부어서 가득 차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직접 한 조작활동과 적분의 결과가 일치하면 적분이 믿을 만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조작활동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이해가 빨리 되고 수학에 흥미도 갖게 한다. 

Q 조작활동이 좋다니까 부모들이 유아기 때부터 수십만 원씩 하는 교구를 사곤 한다. 

구체적 조작활동은 당연히 유아기 때부터 해야 하지만 그렇게 비싼 교구를 살 필요는 없다.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다 교구이고, 세트로 사면 비싸지만 낱개로 사면 싼 것도 많다. 시중에 나온 교구들이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비싼 교구 세트만 사는 것은) 집에서 조금 신경 써서 할 일을 편하게 남한테 돈 주고 맡기는 것 같다. 

Q 유아기 때부터 숫자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아기 아이들은 노는 데서 끝내야 한다. 노는 데서 끝내지 않고 초등학교 때 해야 할 걸 덧붙이면 부모들이야 좋겠지만 아이는 안 좋아진다. 어려서도 숫자를 가르쳐주면 쓸 수는 있지만 그 시기에 할 일은 아니다. 어린아이에게 투표권을 주면 도장이야 찍겠지만 걔가 정치적으로 이해하겠나. 선행학습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육부도 내년에 초등 1, 2학년 교과서를 바꾸면서 '가나다'나 수 익히기 부분을 늘리겠다는 거다. 유아기 때 미리 하지 말라고. 그런데 바꿀 수학 교과서를 점검해 보니 엉터리여서 수정을 요구해둔 상태이다. 
   
Q 평소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인지 발달시기에 맞는 수학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지적 발달이 빠른 애들은 선행학습이 가능하겠지만 이런 아이들은 내가 볼 때 10퍼센트도 안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학 자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제 나이에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 애들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서 우리 때보다 훨씬 집중을 못한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선행학습을 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다들 천재인가?

사실 나는 인지발달이 빠른 아이들조차도 선행학습을 하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좀 괜찮으면 거기서 리더가 되는 거지. 유치원생이 초등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리더가 될 수 있겠나. 앞선 애들은 배우는 걸 빨리 배우려고 하기보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폭넓게 활동을 하도록 하면 된다. 자꾸 나이 많은 애들 따라가는 것은 아이 기 죽이고 바보 만드는 거다.

"공부는 소유권 있어야 한다... 아이 스스로 힘 길러 배우게 해야"


Q <하루 30분 수학>을 통해 부모와 함께 하는 수학공부법을 제시했다. 

그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표현 능력을 키워줄 것을 강조했다. 수학 공부는 그냥 도서관에 처박혀 해서는 안 된다. 뇌과학에서도 어떤 걸 공부할 때 혼자 막 집어넣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말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면 더 잘 기억되고 인과관계도 정리된다고 한다. 

그날그날 학교에서 배운 걸 확실하게 마감하지 않으면 계속 부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30분 아이가 엄마에게 그날 배운 걸 설명하게 하면서 복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수학 문제집을 풀 때도 틀린 문제를 다시 보게 하기보다 맞힌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하게 하는 게 좋다. 자꾸 왜 그렇게 됐는지 까닭을 말하게 하면 그 개념이 확실히 아이 것이 된다.

Q <개념연결 중학수학사전> 책머리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아이들의 수학 지식에 대한 소유권이 사라진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공부는 결국 소유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유권은 절대 남이 주지 않는다. 자기가 얻어야지. 그래서 남한테 배우면 안 된다. 아이가 힘을 길러 땀을 흘려야 하는 부분을 어른들이 해주면 안 된다. 길은 최대한 힘들게 가게 하라. 불친절한 길을 줘서 고생 끝에 열매를 얻으면 딱 자기 것이 된다. 그게 소유권이다. 

어려서는 아이가 넘어져도 부모들이 안 일으켜 세우지 않는가. 스스로 일어설 힘을 키우도록.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잘 아는 부모가 수학 공부는 스스로 해야 된다는 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넘어진 아이를 기다려주듯이 공부하는 아이 옆에서 "너 혼자 해.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하면서 기다려주면 된다. 이게 진정한 엄마표 수학이다.

Q 지금 대표로 있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에서 수학 대안교과서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교사들이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교수법을 당장 바꾸기 힘들면 교과서라도 달라야 하는데, 지금 교과서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도록 만든 교과서다. 단원 초에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했니, 안 했니?" 묻고는 "예" 하면 "그래, 알았어" 하고 그냥 넘어간다. "아니오"일 때 다시 일러주는 장치가 없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한 과정이 없다.

조작활동도 지금은 교과서에 없어서 교사가 일부러 성의를 내 교구상에서 사와야 한다. 그게 아니라 교과서에 조작활동 부분이 있고 그걸 안 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주입할 게 없는 교과서가 필요하다. 

Q 마지막으로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에게 답을 달라. 

대중 강연에서 수학자들이 많이 쓰는 말이 '수학은 아름답다'이다. 어른들이야 디자인이나 건축에서 수학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애들은 경험치가 작아서 그런 말이 안 와닿는다. '수학' 하면 초등생은 연산학습지가, 중학생은 x, y가 생각날 텐데 어떻게 아름답겠나. '수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내가 내린 유일한 결론은 바로 이거다. '수학이 좋아지지 않고는 수학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수학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아이는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먼저 수학이 좋아져야 한다. 아이가 어떤 개념 하나를 주도적으로 이해해서 엄마나 친구한테 설명해주고 상대 입에서 "아, 이런 거구나"라는 답을 들으면, 바로 그때가 수학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자기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수학이 필요하다는 걸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수학이 아름답고 쓸모 있다고 느낄 거다.

사진 : 신동석

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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