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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31. 2015

화장실에서 시를 읽는 홍대여신, 가수 요조


            

종로구 계동. 오후 햇살이 여유로운 공기 속에서 방과 후 초등학생 서너 그룹이 깔깔 웃으며 지나가고, 동네 할머니 네 분이 마실 나와 가을 햇볕 아래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평화로운 ‘동네’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골목에 책방 하나가 문을 열었다. 책방 주인은 ‘홍대여신’으로 알려진 가수 요조. 책방의 이름은 ‘무사 책방’. 아무 일 없기를(無事) 기원하며 지은 이름이란다. 기존에 그녀가 소장해온 중고 책들도 있고, 기성 출판물, 독립출판물들을 다룬다. 무엇보다 요조 개인의 ‘취향’으로 구성된 서가라는 점에서 ‘요조’라는 한 인간을 만나기에 최적의 공간이랄 수 있다.

가수 요조가 책방주인이 되었다는 게 신선했다. 일찍이 그녀가 소문난 애독가이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을 본따서 ‘요조’란 예명을 지었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책방을 열 줄이야. ‘책’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책방의 유리창 가에 앉아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책을 사려는 독자들, 책방에 책을 공급하는 독립출판물 작가들, 그냥 요조를 보러 온 동네 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인터뷰에서 그녀가 거론한 책을 즉시 책방에서 사가는 독자들도 있었다.

요조의 특유의 잔잔하고 조용한 음성 속에서 노래를 듣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책과 그녀의 단단하고 지속적인 인연의 고리들을 군데군데서 만날 수 있었다. 도시의 번잡스러움은 잊히고 잠시 동안 시간이 아주 느리게 지나갔다. 엉뚱함, 솔직함, 책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홍대여신’ 요조의 책과 인생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책방 주인 요조, “저는 책과의 인연을 아주 강력히 믿고 있어요”


Q 책방 주인 요조로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갑습니다. 책방은 언제 여신 건가요?


9월 말부터 뜨문뜨문 열기 시작했어요.


Q 책을 좋아한단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 직접 책방을 여실 줄은 예상 못했어요.


책방 주인은 제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어요. 4~50대가 되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서 오붓하게 책방 하면서 유유자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한 인생플랜처럼 갖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해방촌에 있는 독립서점 스토리지앤필름 대표님과 밥 먹는 자리에서 “지금 책방을 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냥 여기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왜 꼭 서울이 아닌 데서 하려고 하느냐”라는 충고에 팔랑귀가 되었죠. 결정타로 마음이 흔들린 건 “지금 조그맣게라도 경험이 있으면 누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있 으니 나중에 시골에서 책방을 할 때 더 편하고 좋지 않겠나?” 하는 얘기였어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하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어요.


Q 계동이라는 동네가 책방에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아요. 이 공간은 어떻게 발견하신 건가요?


처음엔 땅값이 싸다는 곳을 수소문해 돌아다녀도 봤어요. 그런데 땅값이 특별히 싼 곳은 없더라고요. 일단 어디든 다 비싸요. 그렇다면 가격은 포기하고, 집과의 거리를 우선 조건으로 삼아서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우리 동네를 돌아다녀 보게 됐어요.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여기예요. 그래도 오고 가는 즐거움이란 게 있잖아요. 제가 대학교를 멀리 다녔거든요. 듣는 사람들은 되게 힘들었겠다고 얘기 하지만 저는 그래도 좋은 기억이 많았어요. 오고 가면서 봤던 책들이나 풍경도 좋았고. 과제도 버스, 지하철 안에서 다 통학하면서 했어요. 그런데 집과 책방이 너무 가까우니 그 재미를 못 느끼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지금은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 갑자기 가져와야 할 책이 있다거나 할 땐 편하니까요.


Q 이동의 즐거움 대신에 가까움을 선택하신 거네요. 무사 책방은 독립출판물과 기성출판물 모두를 다룬다고 들었어요.


네. 기성 출판사 책은 선매입해서 판매하고. 독립출판물 위탁판매도 하고, 중고서적도 있어요. 주변 지인 중에 문인, 출판 관계자들이 많아서 책방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도움을 받았어요. 특히 박준 시인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여기로 연락하셔서 선매입하면 된다고 중간 거래처 연락처도 알려주시고요.


Q 인터뷰 직전에 책장을 한번 둘러봤더니, 책이 분야도, 장르도 다양하더라고요. 다 요조씨 취향으로 꾸려진 거죠? 개중에 <정치의 발견>이란 책이 눈에 띄었어요.


강정마을 사태를 계기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내 세계에 빠져서 티브이, 신문, 인터넷 다 안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무관심하던 타입이었죠. 강정마을 사태에 대해 “이건 자연한테 너무 몹쓸 짓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알고 보니 저의 참여가 굉장히 정치적인 행동이었던 거죠. (요조는 2013년 초 강정 평화도서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음악회 등에 참여한 바 있다-기자 주) 소위 나는 그냥 생태적 차원에서 행동한 건데, 왜 이게 정치적인 행동으로 해석될까? 왜 나는 ‘좌빨’이란 소리를 들어야 될까?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정치라는 사안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일단 내가 너무 정치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정치 초보자로서 정치란 이러한 것, 우리나라 정치의 역사가 이러했다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봤던 책이에요.


Q 책 한 권, 한 권에 모두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요조씨가 읽은 책만을 배치하시나요?


전부는 아니고요. 제가 읽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책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그 외에도 좋다는 걸 너무나 분명히 알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한 책들도 꽤 있고요.


Q 가령 그러한 책엔 무엇이 있을까요?


이를테면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요. 한 번 시도했다가 분량의 벽을 깨지 못했던 책이에요. 소설 <신중한 사람>은 우연히 사석에서 이승우 선생님이 “제 졸작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주신 책이었어요. 받아 놓고 읽어야지 하면서 읽지 못하고 있다가, 사람들한테 그 책 아직도 못 읽고 있다는 얘길 하면, “그 책 되게 좋은데”와 같은 반응이 오는 거예요. 그런 반응을 보면 마음이 급해져서 ‘빨리 읽어야 하는데’만 하다가 1년이 넘었어요. 이건 아주 일부만 말씀 드린 거고, 그 외에도 아주 많아요. (웃음)


Q 정말 누구나 읽어야지 하면서 벼르고만 있는 책이 한 권쯤은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연이 닿으면 읽게 될 거라 생각해요. 저는 책과의 연을 아주 강력하게 믿고 있거든요.





“시는 화장실에서 즐기기 좋은 장르예요”


Q 애서가로서 집에도 서가가 있으실 텐데요. 책방에 있는 책과 겹치는 게 꽤 되겠어요.


겹치는 책도 꽤 많아요. 정말 좋아하는 책은 헌책방에서 보이는 대로 그냥 사고, 또 사고, 또 사서 여러 권을 만든 적도 있으니까요. 안 겹치는 경우는 시집이 그래요. 제가 시집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그 마음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너무 좋아하니까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많아져서 마음 편히 입고를 못 하고 있어요.


Q 왜요?


시집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를 할까? 어떤 시인의 시집을 갖다 놓을까 너무 고민이 많으니까요. 일단 다른 일부터 처리를 하고, 시집에 관해선 생각만 하는 중이에요. 사실 책방 준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게 시집이었거든요. 정말 좋은 시집만 있는 책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강하니까 시집 입고는 자꾸 뒤로 밀려나고 있어요. 제대로 해야겠단 고민만 하느라 아직 시집을 가져다 놓지 못했어요.


Q 그렇다면 요조씨가 좋아하는 시인들에는 대표적으로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일단 김소연, 신해욱, 이제니, 강성은, 이규리 시인을 좋아하고요. 시인계의 아이돌 박준 시인도 좋아하고요.


Q 요즘엔 사람들이 시를 잘 안 읽잖아요. 저도 시를 즐겨보려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요조씨만의 시를 즐기는 방법을 조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사실 저도 책을 좋아한 지는 오래됐지만, 시를 즐기게 된 지는 오래 안 됐어요. 시를 좋아하면서도 얇은 두께의 시집은 펼치기가 쉽지 않고,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지금은 너무 즐기게 됐는데. 그렇게 된 계기가 두 개예요. 하나는 시를 눈으로 읽는 것 말고 누군가 낭독하는 걸 들었는데 진짜 정말 좋더라고요. 낭독의 힘이라는 게 생각보다 크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또 하나, 시는 화장실에서 즐기기에 굉장히 좋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Q 화장실에서 시집을 보신다고요?


무료함을 견디려고 화장실에서 책이나 신문, 만화, 휴대전화 보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 보며 시를 한 편씩 읽고, 상념에 잠기는 편이에요. 한번은 김사인 시인의 시 모음집 <시를 어루만지다>를 거의 반 년간 화장실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김사인 시인이 진행하는 ‘시시한 다방’ 팟캐스트에 초대된 거예요. 김사인 시인을 만나 용기를 내어 “제가 육 개월 째 매일매일 선생님의 책을 화장실에서 한 장씩 읽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불쾌해 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진짜 좋아하셨어요. “너무 더럽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여기 싸인해 주세요.”라고 말해서 싸인도 받았죠.


Q 그럼 이제 곧 요조씨께서 고르신 시집들이 이곳에도 전시되겠네요.


네. 이제 세팅을 해야죠.


Q 서가에 꽂힌 책들이 사실은 전부 다 추천하고 싶어서 가져다 놓은 책일텐데요. 요즘에 특히 와 닿는 책이 있나요?


책에 관한 잡지인 <책(chaeg)>이요. 책방 준비하면서 이 잡지를 알게 됐거든요. 알차다는 게 이 책을 두고 말하는 거구나 느꼈어요.


Q 옛날에 읽었던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이 있나요?


<연필 깎기의 정석>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초등학교 시절에 저는 연필깎기가 없어서 손수 연필을 깎았거든요. 그래서 이 책이 저에겐 굉장히 각별한 데가 있어요. 제가 이 책 추천하면, 재미없다고 얘기한 사람도 있었어요. ‘골 때리는 내용이긴 한데, 별로 재밌는지는 모르겠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진짜 이 책이 너무 웃기고, 기발하고, 읽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우리회사(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서 여는 플리마켓에서 2~3년 전부터 연필을 깎아서 파는 이벤트도 해오고 있어요. ‘연필깎기 장인. <연필 깎기의 정석> 수료함이라는 글씨랑 책을 세워놓고, 오시는 분들과 어디 사는지, 무슨 일 하는지, 요새 고민은 없는지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한 10여분 간 연필을 깎아드리는 거예요. 연필이 부러졌다거나 닳았을 경우 보내주시면 다시 깎아서 보내드리는데, 진짜 다시 보내주신 분도 몇 분 있어요.





Q 실용적이거나 효율적인 것의 반대편에 있는 요조씨의 ‘인디’적 성향과 <연필 깎기의 정석>이란 책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노래든 책이든 기질이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Q 그렇다면 이번엔 독립출판물 중에서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나의 소녀>라는 출판물요. 2005년부터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기록한 사진을 담은 포토에세이집이에요. 작가인 DNDD(두식앤띨띨)이라는 이름의 디자이너 그룹은 제가 2000년부터 직접 알고 지낸 커플이기도 해요. 여자친구 이름이 두식이고 남자친구 이름이 띨띨이에요. 아직도 여전히 둘이 잘 지내면서 재미있는 작업들을 많이 해오고 있어요.


저 또한 오랜 기간 이 친구들을 알아 왔으니, 시기별로 친구들의 모습을 기억하잖아요. 사진마다 찍은 날짜가 있고, 사진 속 머리가 숏커트였다가 길기도 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이 내가 근처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온 한 커플의 든든한 증거물처럼 느껴졌어요. 우리가 연애를 안 해본 사람들도 아니니 그렇게 오랜 기간 커플로서 한결같기도 어렵다는 걸 다 알고 있잖아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10년 넘게 기록했다는 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해요.


“서점 아저씨는 맨날 책 읽는 게 일이잖아요. 그게 부러웠어요.”


Q 어린 시절에 꿈이 서점 주인이었다고 말씀하신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그 꿈을 꾼 계기가 있나요?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있던 서점의 영향을 받았어요. 매우 조그마한 곳이었는데,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서점들이 좀 있었거든요. 참고서도 팔고, 시집도 팔고, 사전도 파는 데 있잖아요. 서점 이름도 너무 매우 흔한 ‘명일’인지 ‘광진’인지 잘 기억이 안 나요. 다만 서점 유리창에 ‘책’이란 글씨가 중심에 아주 크게 쓰여 있고 ‘원하는 책이 없으면 구해 드립니다’라는 반원 모양의 문구가 있었어요. 그 문구가 어릴 때부터 각인이 많이 됐나 봐요. 저는 대형서점을 안 가고 고등학교 때까지 책을 다 거기서만 샀어요.


주인아저씨가 진짜 원하는 책은 다 구해주셨어요. 특히 제가 어릴 때<해리포터> 시리즈의 열성적인 팬이어서,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면 아저씨한테 발간 당일에 꼭 구해다 달라고 부탁하곤 했어요. 그런 제 개인적인 취향을 아저씨께 요구할 수 있었고, 그 든든함이 저에겐 되게 컸어요. 그런데 제가 대학 가고 얼마 안 있고 그곳이 없어졌어요. 사실 아까 말씀드렸듯 제가 학교를 멀리 다니다 보니까 활동범위가 자연스럽게 넓어진 거예요. 그땐 저도 대 형서점을 가기 시작하고, 저조차 동네서점엔 뜸했던 거예요. 서점이 없어진 것을 알고서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요. 내가 일조했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어차피 커서는 책도 많이 안 샀으면서 없어진 것에 대해 섭섭해 할 권리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죠.


그 서점이 저의 어린 시절을 몇 개의 키워드로 얘기하라고 했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을 분명히 가지고 있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서점 공간과 아저씨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저씨는 되게 좋겠다. 읽고 싶은 책 막 읽을 수 있고’ 하면서요. 아저씨는 맨날 책 읽는 게 일일 것 아니에요. 그게 되게 부러웠어요. 이번에 책방 준비하면서 그때 생각이 진짜 많이 나서 ‘‘원하는 책 구해드림’ 문구를 창문에 박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 서점 주인아저씨 얼굴도 많이 기억이 나고요.


Q 그 서점에서 산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뭐에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책이 한 권 있어요. 정확한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인어공주한테선 비린내가 날까? 안 날까?’ 그런 제목이었어요. 소설인데, 동화같기도 한 정체가 모호한 책이었어요. 어느 날 서점에서 이책 저책 시간 때우기 하다가 구석에서 이 책을 본 거예요. 그런데 그 제목을 본 순간 나도 진짜 궁금한 거예요. ‘진짜 인어공주한테서 비린내가 날 수도 있겠다.’ 감기 걸렸거나 몸이 안 좋으면 비린내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아저씨께 “아저씨, 이거 무슨 책이에요?” 했더니 아저씨도 “그거 뭐야?” 하시면서 언제 들여왔는지 본인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보물이다” 하면서 얼른 돈 주고 집에 와서 읽어보는데 내용 자체는 별로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 제목만큼은 아직도 지워지지도 않아요. 혹시 이 책에 대해 아는 분은 제보 좀 해주세요. 그 책을 읽은 분이 또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아주 반가울 것 같아요.




 
Q ‘요조’라는 예명도 <인간 실격> 주인공 이름에서 따오셨다고요. 어떤 인터뷰 보니까 요즘에는 ‘요조’라는 캐릭터에는 공감이 안 간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인간 실격>이 딱 제 20대의 마음을 대변하는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30대가 되어서 다시 그 책을 읽어보니, 텍스트는 바뀔 게 없으니까, 그걸 읽는 내 마음이 너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옛날엔 그 요조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문장마다 동글뱅이 쳐가면서 ‘내가 요조를 보호해 줘야한다’라고 하면서 읽었는데, 30대 되어서 다시 보니까 너무 답답하고 뭐라고 나무라고 싶고, 동일시가 안 되는 거예요. ‘이제 내가 너무 멀리 왔나 봐’ 하면서 읽으면서 스트레스받고요.


Q <인간 실격>이란 작품이 20대와 30대를 가르는 리트머스 용지처럼 작용한 거네요.


나는 나를 매일 겪으니까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정작 본인은 모르잖아요. 그런데 <인간 실격> 읽으면서 나의 변화를 너무 극명하게 대면한 거예요. 진짜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내가 ‘요조’라는 인물을 왜 이렇게 사랑했을까.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또 이해가 가는 게 연애할 때도 그렇잖아요. 연애할 때는 모르다가 헤어지고 나 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내가 걔를 왜 좋아했지’ 정말 이해가 안가잖아요. ‘내가 왜 걔 때문에 이렇게 마음고생하고 힘들어했지. 걔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전혀 내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정말 이해 불가 상태가 되잖아요. 그 비슷한 기분을 30대가 되어 읽은 <인간실격>에서 느낀 거죠. 신기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이제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그 소설을 읽은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옛날에는 완전히 그 인물에 빠져서 ‘난 무조건 이 사람의 편’이라 하고, 주인공 자살 시도했을 때 주변에서 나무란 사람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다고 옹호하느라 정작 소설의 다른 면을 못 봤던 것 같아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요조란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요조에 예전만큼 끌리지 않으면서 그 주변 인물이랄지, 그 소설의 다른 매력들이 이제는 눈에 보이게 됐어요. 결과적으로는 두 번 다 재밌게 읽었는데, 요조란 캐릭터만 놓고 보자면 지금은 이해 불가, 내가 왜 좋아했지? 이런 거죠.


Q ‘요조’를 대신해서 요즘 공감 가는 캐릭터가 있으세요?


캐릭터는 아닌데, <글쓰기의 최전선>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제가 요조한테서 발견한 동일시 감각을 많이 느꼈어요. 이 책은 말하자면 글쓰기 책인데, 은유라는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고, 글 쓰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이 글쓰기 수업을 통해 어떻게 바뀌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써놓은 책이에요. 저도 워낙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쓰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까 글 쓰는 일이 저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저는 30대 중반에 음악을 하는 음악가고, 은유 작가님은 결혼도 하시고, 아이도 있는 입장이니까 상황은 조금 달라요. 하지만 책에서도 회원들과 소리 내서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님도 나처럼 낭독이 좋다는 것을 아시는구나!’ 하면서 반가웠고, 은유 작가님에게서처럼 글쓰기가 절박하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공감을 많이 하면서 읽었던 책이었어요.


Q 앞으로 책방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독립출판물 제작 계획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현재는 녹화 날이 토요일이라 토요일엔 오픈을 못 하고, 12월에는 제동 오빠가 주말마다 토크 콘서트를 해서 녹화가 화요일로 변경될 예정이에요. 그래서 그때가 되면 화요일에 강제로 휴무하거나 아니면 그때 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하루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은 일정 유무에 따라 책방 오픈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그림 동화책으로 독립 출판물도 준비 중이에요. 그림 그리시는 작가님을 섭외해서, 제가 스토리를 쓰고 그분이 그림을 그리는 형식으로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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