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탐방]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일명 '성대골'이라 불리는 이 동네에 복작거리는 시장 골목 사이로 신대륙 같은 서점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파란 간판에 큼직하게 써있는 '대륙서점'이라는 네 글자 아래로 '각종 초·중·고 학습지 접수처'라는 글귀에 시선이 꽂힌다.
지금의 아늑한 독립서점으로 탈바꿈하기 이전, 그러니까 30년 전부터 이곳은 서점이었다. 사람들이 점차 책을 찾지 않게 되자 그 발길마저 그리워질 무렵부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서, 문제집 위주로 판매했다고 한다. 그마저도 운영이 여의치 않던 노부부가 서점을 정리한다는 소식을 듣고, 결혼 후 새로운 일을 고민하던 박일우, 오승희 부부가 다음 날 이곳을 인수하게 됐다.
마을 공동체의 건축하는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은 곧 책을 중심으로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의 공간이면서도 플리마켓, 다큐멘터리 상영회, 낭독회 등의 소소한 문화 행사들이 끊임없이 열리고 마을 공동체의 모임 공간이 되기도 한다. 촬영 당일 저녁에는 낭독회를 앞두고 있었다.
아담한 공간을 야무지게 나눈 각 책장에는 '젊은 작가들 시리즈', '나침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들', '대륙서점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해외소설 작가들'처럼 각각의 주제별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나뉘어져 있다. 특이점은 이곳의 모든 책에 비닐 커버가 덧씌어져 있다는 것. 독립서점의 특성상 재고가 많지 않아 진열된 책의 컨디션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책에는 손글씨가 빼곡한 메모지가 끼워져 있기도 했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직접 추천하고 싶은 책에 끼워둔 책갈피란다. 글씨체도 추천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황정은 작가의 <白의 그림자>에는 실연 후 위안을 받았다는 누군가의 사연이 끼워져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니 황경신 작가의 책을 모아둔 작은 공간이 나온다. 프리랜서 편집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오승희 씨와 우연히 맺게 된 인연이 이제는 꽤나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고 했다. 작가 황경신의 책을 사랑하는 부부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이곳엔 황경신 작가의 모든 책이 구비되어 있다.
시선과 발길을 더 오래 머물게 한 곳은 맞은 편 공간이다. 동네 주민들의 추천 책을 진열하는 공유 서가다. 영화를 사랑하는 민성맘, 성대골 네네치킨 사장님처럼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네네치킨 사장님의 서가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고전 문학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자신이 아는 동네 분들 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분이라고 오승희 씨가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치킨의 상관관계가 묘하게 다가왔다. 진정한 고수는 신분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운영 시간 및 휴무일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성대로 40. (상도동 256-41)
운영 시간 월요일 – 일요일 (오전 11시 – 밤 10시)
전화번호 02-821-8878
그외 https://www.facebook.com/drbooks
http://blog.naver.com/daeruk_books
https://www.instagram.com/daeruk_books
▼ 대륙서점 책방지기 박일우, 오승희 씨가 추천하는 책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 난다 / 2013년)
"이분의 트위터 글을 자주 보던 편이었는데요. 마침 KBS 'TV 책' 프로그램의 장소 섭외가 왔었어요.그날 촬영을 이분의 책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인연으로 이 책을 읽게 됐는데 정말 좋았어요. 참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에요. 사회적인 이슈부터 문학적 주제까지, 오랜 시간 작가님께서 여러 곳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것을 한 권에 엮은 책이에요. 읽다 보면 항상 내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알아채고 이야기해주시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저를 설득해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처음처럼> (신영복 / 돌베개 / 2016년)
"이 책을 너무 늦게 접했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참 좋았는데, 작고 소식을 듣게 됐어요. 이후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것을 보게되었는데 가슴에 많이 남는 이야기들이더라고요. 이 서점에는 책을 가끔씩만 접하는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그분들께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에요."
<생각이 나서> (황경신 / 소담 / 2010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짧은 글이기 때문에 머리 복잡할 때 아무 페이지에 펼쳐도 그때마다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어서 참 신기한 책이에요. 개인적으로 황경신 작가의 문장을 정말 좋아해요. <생각이 나서>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하셔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설의 책방지기 시바타 신의 마지막수업> (이시바시 다케후미 / 남해의 봄날 / 2016년)
<서점은 죽지 않는다> (이시바시 다케후미 / 시대의 창 / 2013년)
"이 책은 일본의 유명 책 거리인 '진보초'에 위치한 인문서점 '이와나미 북센터'를 40년 간 운영한 시바타 신에 대한 책이에요. 이분도 젊은 시절에는 전혀 다른 일을 하시다가 서점을 하게 되셨대요. 저희와는 분명 다르지만, 이분의 삶을 통해서 저희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이 책은 일본 기자분께서 쓴 책인데요. <서점은 죽지 않는다>라는 책을 썼던 분입니다. 서점이 왜 지속가능한지, 서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취재를 통해 기록하는 분이에요. 대륙서점에도 한 번 방문하신 적이 있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분의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는 남해의 봄날 대표님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읽게 되었는데, 대륙서점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상도동 그 가게>(상도동 주민 기자단 / 대륙서점 / 2016년)
"이 책은 대륙서점에서만 판매를 하고 있는 잡지인데요. 상도동을 주제로 한 시리즈예요. 올 여름에 발행된 두 번째 잡지에서는 '상도동 그가게'라는 주제로 이 동네의 아주 오래된 가게부터 새로 생긴 호텔 대표님을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매번 참여하는 기획자와 주민기자단은 달라져요. 이번 호의 기획자는 마을활동가, 건축한느 청년, 동네 토박이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인 청년, 그리고 제가 참여했습니다. 이곳에 모여서 네 번의 회의를 거쳐 완성된 잡지예요."
▼ 대륙서점 자세히 보기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