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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05. 2016

르포작가 박영희, '겨울왕국'에서 안중근을 만나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총을 쏜 이는 안중근 의사, 총알에 박힌 자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 이 두 줄뿐이다. 안중근 의사가 누구와 함께 준비했는지, 어떻게 일을 감행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그 과정을 당시 공판 기록을 종합해 재구성한 책이 나왔다. <하얼빈 할빈 하르빈>, 역사책인가 싶지만 여행에세이다. <하얼빈 할빈 하르빈>은 아시아출판사에서 기획한 ‘아시아의 한 도시를 깊이 바라보면서 아시아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도시산책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그래서인지 유명 관광지를 훑는 보통의 여행서가 아닌 하얼빈 구석구석의 삶과 역사까지 돌아보는 깊이를 담았다.

저자는 시인이자 르포작가인 박영희. 그는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는 하얼빈은 “세팅이 잘된 도시”인 한편, 세계 3대 축제로 꼽히는 빙설제가 두 달간 열리는 하얼빈의 겨울은 “신나게도 춥다는 말이 시원한” 계절이라고 했다. 대구의 작업실에서 곧 나올 르포집의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는 작가와 이메일로 주고받은 이야기로 하얼빈의 겨울을 좀 더 깊이 느껴보자.

’동방의 모스크바’ 하얼빈...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빛 발하는 도시"

제목에 나타나 있듯 우리는 하얼빈으로만 아는 그 도시의 이름은 여러 개다. 부르는 지역에 따라 하얼빈, 할빈, 하르빈은 물론 하얼삔, 합이빈으로 불리기도 한다.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에서 하얼빈을 잇는 동청철도를 건설하면서 만주에 생겨난 국제도시이기 때문.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도시다. 

“시베리아 쪽에서는 하얼빈이 금성과 천사를 의미해요. 태양이 뜨기 전 주군의 출현을 알리는 샛별로 보는 거죠. 반면 만주어로는 ‘그물을 말리는 곳’이에요. 실제로 국제도시가 되기 전엔 자그마한 어촌이기도 했고요. 그 밖에 ‘평지’(몽골어), ‘명예’(여진어), ‘나루터’(퉁구스어) 등 적잖은 어원들이 떠돌아다니더군요. 만주에서 하얼빈만큼 낯설고 화려한 도시도 없죠. 상하이와 쌍두마차로 국제도시로 자리 잡았던 곳이니. ‘동방의 모스크바’라는 말은 곧 세팅이 잘된 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작가가 전하는 하얼빈의 여러 어원들에 머리가 복잡해졌나. 그렇다면 하얼빈의 겨울만 생각하자.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겨우내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인 하얼빈을 두고 그는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도시”라면서 “다른 계절에도 다 가봤지만 왠지 맛이 2퍼센트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책에도 매년 1월에서 2월 말까지 하얼빈의 태양도공원에서 열리는 빙설축제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체감온도가 영하 40도가 훌쩍 넘는데도 울릉도 면적의 절반쯤 되는 이곳에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찾아온단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그마치 7000명이 14일 동안 축제를 준비한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는 “하얼빈을 ‘겨울왕국’이라 부르는 게 그냥 생겨난 게 아니에요. 겨울에 하얼빈에 다녀온 사람이면 느꼈을 거예요. 신나게도 춥다는 말이 왜 시원하게 느껴지는지.”라며 하얼빈의 겨울여행을 ‘강추’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책 속에 담긴, 까만 밤에 형형색색 빛나는 얼음궁전 눈조각 사진이 자꾸 여행 본능을 자극한다.

<하얼빈 할빈 하르빈>은 박영희가 <만주를 가다>(2008)에 이어 두 번째로 쓴 여행에세이다. 그가 두 책의 다른 점을 밝혔다.

“<만주를 가다>에서는 만주 항일운동을 염두에 뒀다면, <하얼빈 할빈 하르빈>은 걸음을 좀 늦춰보려 했어요. 여행은 때로 낯선 공간에서 그들의 일상과 예기치 못한 눈물을 담아오기도 하는데, 일종의 모자란 공부를 경계 너머에서 채우는 방식이죠. 아름다운 풍경의 거리를 지나서 보면 너절한 골목들과 대면할 때가 더러 있잖습니까.”

이 말대로 작가는 하얼빈의 빛만 좇지 않았다. 거리에서 마주친 어둠도 함께 끌어안았다. 하얼빈역을 나와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마주친 맹인 악사의 얼후(二胡, 줄이 두 개인 중국 악기) 연주를 유일한 청중이 되어 들으면서. 관광객으로 들끓는 하얼빈의 중심 거리인 중앙대가(中央大街)에서 멀지 않은 다오와이구 베이산다오지에 속 폐허의 건물들 사이를 오가면서. 한족들이 ‘늙은 거리’라고 부르는 베이산다오지에는 하얼빈의 원주민인 한족들의 100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마을이다. 그 거리에서 작가는 이렇게 사색한다.

아! 나도 이곳에서 한 사흘쯤 지나면, 저렇듯 한 세기를 묵묵히 버텨온 폐허의 건물들과 함께 인생을 정리할 마지막 편지라도 한 통 써둬야 할 것 같다. 거리는 온통 늙은 것들 일색이다. 그렇지만 슬프지는 않다. 폐허의 건물들에서 안식을 앞둔, 마지막 숨소리가 들려온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저만큼에,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계단이 보였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 <하얼빈 할빈 하르빈> 119쪽



여행에세이에 소설·시·역사까지... 갓 잡아 끓인 ’해물찌개’ 맛의 책

여행에세이이면서도 역사에세이로 읽힐 정도로 이 책은 하얼빈 곳곳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읽는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 ‘암살’ 속 여주인공(안윤옥)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남자현이 최후를 맞은 곳이 하얼빈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효석은 1906년에 지어져 지금껏 건재한 중앙대가의 모던호텔을 배경으로 ‘하얼빈’이라는 작품을 썼다. 하얼빈은 그가 삶을 마치기 전 다녀온 마지막 여행지이기도 하다. 책에는 이효석과 비슷한 시기에 하얼빈에 다녀간 시인 유치환의 시도 실려 있다.

하얼빈에는 중국의 3대 음악가로 추앙받는 조선의 음악가 정율성의 음악 기념관도 있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과 정율성이 나눈 우정을 소개한 부분을 읽을 때는 웃음이 나다가 눈물이 핑 도는 안타까움도 느꼈다. 중국에서 1급 작곡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중국동포 동희철 선생의 말을 읽으면서 낯설던 정율성이란 이름을 가슴에 새겼다.

“나도 사람인지라 곡을 쓰는 것조차 싫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나를 붙들어주고 일으켜준 분이 바로 정율성 선생이었지 뭔가. ‘예술을 하려거든 먼저 어느 것 하나도 탓하지 마라. 예술은 전선에도 있고 고향에도 있고, 가냘픈 한 송이 꽃에도 있다.’ 글쎄 이걸 내 심장에다 화살처럼 박아주셨지 뭔가.” - <하얼빈 할빈 하르빈> 44쪽

책에는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이 군데군데 담겨 있어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즐거움도 있다. 꼭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만일을 대비해 조도순과 함께 차이자거우에 머물고 있던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눈 안중근과의 약속을 되새겨 보았다. 첫째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반드시 쏠 것. 둘째 이등박문을 쏜 다음 그 자리에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세 번 외칠 것. 셋째 되도록 생포되어 대한제국의 억울한 사정을 외국에 알릴 것. (줄임)

오매불망 이토가 온다는 소식에 우덕순은 안중근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겠는가?”
“가야지.”
“어디로 말인가?”
“할빈으로 가야지.” (줄임)
대합실 창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지흥차오 쪽에서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안중근은 한 번 더 속으로 다짐했다. 내 심장이 살아 있는, 마지막 기회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 - <하얼빈 할빈 하르빈> 162, 163, 188쪽

극적인 장면을 읽을 때에야 앞쪽에 나온, 하얼빈에 사는 작가의 동갑내기 친구 할라의 말 속에 담긴 여운을 느낄 수 있다.

“하얼빈에서 탕! 탕! 탕! 이 세 방이 없었다면 조선의 자존심은 물론이고 한국사마저 더욱 슬퍼지지 않았을까?” - <하얼빈 할빈 하르빈> 6쪽 

작가는 “운 좋게도 여행 중 뮤지컬 ‘영웅’을 하얼빈에서 관람할 수 있었어요. 안중근에게 하얼빈은 이토의 심장을 겨눈 역사의 현장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인지 공연장 분위기도 매우 뜨겁더군요. 조선족보다 한족들이 더 깊은 관심을 보였고요.”라며 하얼빈에서 접한 행운을 전했다. 물론 책에도 나온다. 뮤지컬 ‘영웅’의 일부 대사와 함께.

‘울창한 자작나무 숲 망국의 땅, 우리는 모였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거운 심장으로!’
‘귀 기울여 들어봐요, 이 소리를. 날 일으키는 이 바람, 얼어붙은 내 심장 녹인 이 뜨거운 바람!’
‘기적 소리가 우리의 심장 고동치게 하리니, 조국을 향한 그리운 마음 눈시울이 뜨겁다.’ - <하얼빈 할빈 하르빈> 176쪽

여행에세이를 읽으며 소설도 접하고, 시도 읊고, 뮤지컬 가사도 살피고, 역사적 의미까지 되살리다니. 잡탕 같은데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인, 산지에서 갓 잡아 끓인 해물찌개의 맛이 나는 책이다.



박영희에게 ’르포’란... "이 시대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입맞춤"

눈 밝은 독자라면 책 곳곳에서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때의 꿈이 승무원이었다는 것 등. 왜 승무원이 되고 싶었는지 물었다.

“사실은 아버지 때문이었죠.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좋은데 주사는 넌덜머리가 나더군요. 엄청난 고문이었죠. 그래서 어린 소년은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는 꿈을 꾸곤 했어요.”

언젠가 박영희 작가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수첩에 핵심단어들만 적어온 그는 소년에서 작가로 걸어온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울림은 컸다. 기억나는 대목만 간추리면 이러하다.

전남 무안 출신인 그는 정규교육은 초등학교까지만 받았다. 아버지가 중학교에 가는 걸 반대했기 때문.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낫으로 발등을 찍고 서울로 올라온 그의 앞엔 먹고살 길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공장에도 다니고 주유소 주유원, 신문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그가 책과 친해진 계기는 이번 책에도 잠깐 언급됐다.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작가가 또래들처럼 교복을 꼭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찾아간 학교(봉천고등공민학교)에서 만난 첫사랑 여학생 덕분이었다. 낮에는 남의 집 식모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던 그 여학생이 생전 먹어본 적 없는 샌드위치와 함께 책을 한 권씩을 건넸던 것이다. 그 친구 덕에 <제인 에어>가 비행기 이야기인줄 알았던 그가 <주홍글씨> <노인과 바다> 등 문학의 세계에 빠져든다.

여학생이 권한 소설책을 읽으면서 문학과 만나고 신문 배달을 하면서 읽은 신문으로 지식을 쌓았던 그에게 작가의 길을 열어준 이는 한 수녀님이었다.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할 때 수녀님과 꽤 오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서독으로 떠나시기 전 이 말을 남겼지요. ‘나중에 시인이 되면 좋겠다’고. 거칠게 살고 싶었던 소년을 한 수녀님이 잘 잡아주신 거죠.

작가의 파란만장한 10대 시절은 성장소설 <대통령이 죽었다> <운동장이 없는 학교>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청소년 소설이라지만 70·80년대 사회 배경을 아는 성인 독자들에겐 추억을 돌아보는 맛을 전한다.

박영희는 무엇보다 르포작가로 알려져 있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등 10여 편의 르포집을 냈다. 그가 르포문학으로 독자를 만나는 이유는 뭘까.

“소설과 달리 르포는 즐겁고 아름다운 장르는 아니죠. 방송으로 치면 생방송에 가깝고요.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육성 그대로를 세상에 알리는 작업이죠.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슬픔과 분노도 엄연히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본주의로 치달을수록 세상은 더욱 춥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저도 그중 한 사람임에 분명하고요. 그걸 전하는 거죠.”

이번 책에 나와 있듯 르포문학을 시작할 때 작가의 손을 잡아준 작가 조지 오웰은 이 말을 그에게 선물로 주었단다.

“애정 어린 입맞춤의 기억은 죽은 꽃의 향기처럼 가슴 속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오.” - <하얼빈 할빈 하르빈> 35쪽  

그의 르포엔 슬픔과 분노도 부둥켜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입맞춤이 담겨 있나 보다.

그동안 낸 30권에 가까운 책 중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던 책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작가는 <만주의 아이들>을 꼽았다. 부모님과 무려 10년 이상 떨어져 지내는 학생들이 수두룩한 중국동포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책을 마칠 때까지 함께 울고 웃었다고. 곧 나올 책은 이 중국동포 아이들을 가르치는 옌볜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만강 중학교>라고 하니 작가의 만주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올 겨울에도 배낭 하나 달랑 맨 박영희를 만주의 어느 거리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다.


사진 : 박영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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