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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14. 2016

파격과 강렬함 사이, '문제작가' 김엄지를 발견하다



김엄지 작가를 만난 건 불현듯 추위가 찾아왔던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12월’, ‘추위’라는 단어에 ‘불현듯’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만큼 춥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단단히 여미고 길을 나섰다. 평일 한낮의 카페치고는 상당히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테이블은 비좁고 사람들은 많고, 인터뷰를 하기에 썩 좋은 장소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터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는 게 유일한 위로처럼 느껴지는 날이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 내심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신문기사나 인터넷에 올라온 김엄지 작가의 모습은 다소 무뚝뚝해 보이기도 했고, 낯가림이 심한 느낌도 들었다. 새침떼기 같은 인상이었다고나 할까.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반에서 한두 명쯤 말 섞기 어려운 친구가 있지 않았었나.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친구와 친해져본 성공담이 없었기에 더욱 초조했는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서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왔을 때, 그녀가 김엄지 작가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큰 눈망울에서는 별다른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차를 홀짝이며 안경을 쓸지 벗을지, 머리를 묶어야 할지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마주하고 있자니 당혹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머릿속 한가운데를 맴돌던 ‘무뚝뚝’, ‘낯가림’, ‘새침떼기’와 같은 단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약간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던지자 “어제 늦게까지 술을 좀 마셔서요”라며 해사한 웃음을 짓기까지. 늦게 일어난 탓에 머리를 막 감고 나왔다는 말은 또 어떻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데,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 스물여덟의 김엄지 작가는 한국 문단에서 ‘문제적 작가’로 주목받는 이다. 나이가 젊기도 하거니와 그녀가 발표해온 소설들이 ‘파격’ 혹은 ‘강렬’, ‘실험’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어느덧 등단 5년차를 넘어섰으니 이제 신인이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이런 그녀가 최근 자신의 첫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를 펴냈다.



주말, 출근, 산책, 주말, 출근... 무채색 삶의 속살을 들춰내다 

“큰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예전에 사무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단편으로 쓴 적이 있거든요. 그때도 인물들이 모두 A, B, C였는데 이걸 조금 더 길게 풀어서 써보고 싶었죠. 아무래도 장편이다 보니 물리적으로 길게 써야 해서 부담감도 있었고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써봤어요. 제목을 짓는데도 고민이 많았는데 ‘주말, 산책 : 어두움과 출근 비’라는 식으로 바꿔보기도 하고, 단어들의 순서가 고민되더라고요.”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에서는 특별한 사건 없이 인물들의 무채색 일상들이 나열된다. 문장 역시 별다른 장식이나 군더더기 없이 단조롭고 직설적이다.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무의미한 반복과 나열에 그쳐 보이는 소설 속 일상은 그래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준다.

평론가 김형중은 ‘김엄지식 지옥’이라는 말로 압축하여 표현하기도 했고, 이 책의 편집을 맡았던 평론가 박혜진은 복잡한 지식사회와 싸우는 방식이라고도 했다. 정보로 넘쳐나는 이 사회와 싸우기 위해 사건을 대폭 축소하고 인물의 정보를 숨겨 이른바 ‘모르는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소설인 만큼 독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엇갈린다.

개인적으로 ‘밋밋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스토리, 플롯, 인물 중에서 무엇 하나 도드라지는 점이 없다 보니 독자에 따라 낯선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애초부터 그런 ‘흥미’와 ‘재미’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것 말고도 할 이야기는 많다는 듯이, 아니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듯 말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지만, 그만큼 독자의 생각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제 소설을 읽으면서 ‘없음’이나 ‘무의미’로 많이들 이야기해요. 스토리가 강한 소설이 아니다 보니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받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읽고 난 뒤에 찝찝함 같은 느낌이 짙게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스토리가 강하고 마무리가 딱 돼 있으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물론 그것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앞으로 이렇게 쓰지는 않을 거예요. 이 소설은 사건도 최대한 줄이고 호흡도 짧게 밀고 나가본 건데, 지금은 여기서 조금 풀어진 형태로 쓰고 있어요.”      

평론가 박혜진의 비평과 달리,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사회와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 소설이라는 은신처에 숨어 있는 듯한, 다소 회피해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에 김엄지 작가는 “싸운다거나 회피한다는 태도를 취했다기보다는 그냥 제가 살고 있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느끼고 본 것 그대로 쓰자는 마음이었죠. 그래도 이 책 속의 주인공보다는 재미있게 살고 있는걸요.”라고 웃으며 대답을 건넸다.



독자의 통념을 적당히 배신할 줄 아는 영리한 작가, 김엄지

김엄지 작가는 소설가라는 짐짓 무거운 느낌보다는 20대 특유의 풋풋함이 더 어울리는 듯 보였다. 그녀는 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는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가도, 동네 친구들과 만나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바빠서 소홀했지만 평소에는 요가도 열심히 한다. 취미로 동네 미술학원에서 그림도 그린다. 평소 존경한다는 이승우 소설가의 얼굴을 연필로 소묘해놓은 작품을 보여주는 모습에서는 영락없이 소녀의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   

평소 노는 것을 즐기는가 싶다가도 등단 이후 지난 5년 동안의 작품들을 헤아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동안 밟아온 성실한 행보는 최근 연이어 발표한 단편집과 장편소설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다작을 하는 비결이 있을까 싶어 물었다.

“운이 좋게도 청탁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감사하죠. 그래서 시간이 없더라도 날을 새워서 쓰는 편이예요. 문학을 이끈다기보다는 오랫동안 잔류하고 싶어요. 어느 순간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서 못 쓰기도 하고, 스스로 지쳐서 포기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고 꾸준히 쓰는 작가가 되려고요. 소설을 써도 소설가로 불리지 않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글쓰는 것뿐이라서 힘들어도 좋아요. 글을 쓸 때 자유로운 느낌이 들거든요. 다만 경험의 폭이 넓지 않아서 앞으로는 여행도 가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면서 저만의 세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싶어요. 잘 쓰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쓰자는 마음이에요.”

“진짜 돈이 없어지면 저도 일을 해야죠.” 김엄지 작가는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현실의 고민도 안고 있다. 한창 돈이 없을 때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단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용돈을 받지는 않는다. 전업작가로 뛰어든 이상 돈 많은 건 남의 일이라 생각한다고.

김엄지 작가는 불현듯 찾아온 추위처럼 두 뺨을 얼얼하게 하는 작가다. 독자들의 통념을 적당히 뒤통수 치고 배신할 줄 아는 영리한 작가이기도 하다. 시종일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속내를 꾸밈없이 털어놓다가도, 소설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는 사뭇 진지한 태도를 보인 김엄지 작가. 지금보다 내일이, 오늘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가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취재: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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